전 CJ 대표 이관훈

독자의 이해를 위해, 이관훈 대표와 가족들 소개부터 하고 인터뷰에 들어간다.

아버지 이관훈 1983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 후 CJ제일제당 인사팀과 마케팅기획팀 등을 거쳐 CJ 계열사에서 두루 경력을 쌓았다. 2000년 1월 임원이 되면서 드림라인, CJ오쇼핑을 거쳤고, 2003년 CJ헬로비전 대표이사가 되면서 최고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후 CJ제일제당, CJENM을 거쳐 2011년에 CJ그룹 지주회사인 CJ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굵직한 경력만 고른 것인데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대단한 스펙들로 이어져,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을지 가늠이 된다. 그는 그룹 계열사간 업무 조율과 미래 성장 동력을 구축하는 데 중요 역할을 했고, 전문 경영인으로서 공채 입사한 샐러리맨들에게 늘 선망의 롤 모델이었다. 그랬던 그가 가족을 이끄는 가장의 자리에서 살겠다며 35년이나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다. 현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지 이제 6년, 그가 그동안 가장으로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본다.

어머니 강명순 대구에서 학교 교사로 있다가 중매결혼으로 낯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타고난 정이 많고, 남을 헤아리는 용량도 매머드급이다. 남편이 대기업 임원이면 어깨에 힘줄 만도 한데, 지하철 타고 동대문시장 가는 즐거움을 내려놓지 않는다. “남편이 태어날 때부터 대기업 대표는 아니었잖아요. 열심히 해서 잘 올라갔으니 잘 내려와야죠.” 늘 말석에 먼저 앉고, 자녀 교육에 힘쓰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아는 그녀는 2남 2녀를 신앙 안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

초등학생 창윤, 왕윤, 선현이를 데리고 가족여행 중 페루 마추픽추에서 찍었다. (사진제공 이관훈)
초등학생 창윤, 왕윤, 선현이를 데리고 가족여행 중 페루 마추픽추에서 찍었다. (사진제공 이관훈)

첫째 맏딸 경희(36)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잘 다니다가 뜻한 바가 있어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갔다. ‘비건Vegan 식품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건강에 좋은 천연 발효 빵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주 3일만 문을 여는 전문 베이커리 ‘도우도우’를 운영하면서 나머지 시간엔 또 다른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N잡러’이다. 중학생 때 오빠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충격과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줄줄이 들어오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그는 사춘기 투정도 제대로 못해 보고 어른이 되었다. 동생 셋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안 분위기로 보아, 정작 입양아는 자신이 아닌가 생각했을 법하다.

둘째 창윤(22) 생후 4개월에 와서 가족이 되었다. 현재 미국 퍼듀대학교 전자공학과 재학 중. 필요한 물건을 사라고 돈을 주면 한 푼도 못 쓰고 그대로 가져오는 순둥이다.

셋째 왕윤(20) 미국 대학 입학 허가서를 기다리고 있는 고3이다. 생후 6개월에 왔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엄마 등에서 떨어지지 않아 매일 업고 다녀야 했다.

넷째 선현(19) 손위 오빠 왕윤이와 9개월 터울인 막내딸. 자아가 확고해진 23개월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화학 과목을 좋아하는데 미술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전공 선택을 놓고 지금 고민 중이다.

한 자녀도 쩔쩔매는 세상에 네 자녀를 둔 이관훈, 강명순 부부. 아이들이 커가면서 반려견 ‘대복’이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사진 박종도 기자)
한 자녀도 쩔쩔매는 세상에 네 자녀를 둔 이관훈, 강명순 부부. 아이들이 커가면서 반려견 ‘대복’이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사진 박종도 기자)

단란한 입양 가족이라고 들었습니다.

맏딸은 말고, 세 아이를 마음으로 낳았습니다. 입양 부모들은 이렇게 시인처럼 말합니다.(하하) 저는 봉사정신이라곤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필연처럼 입양을 시작했어요. 북경에서 국제고를 다니고 있던 도윤이가 2002년 8월 말에 지방 여행을 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어요. 뇌사 상태라는 연락을 받고 제가 가면서 그랬어요. “아빠가 도착하면 눈 뜰 거야.” 가망이 없다고 해서, 에어 앰뷸런스로 데려와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기다렸어요. 결국 깨어나지 못했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며칠 뒤에 집사람이 입양이란 단어를 꺼냈어요. 집에서 아들을 떠올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뭐라고 할 수 없어서 “그래, 그런데 지금 당장은 너무 이르지 않아?”라고 말했어요.

그러네요. 아들 보내고 바로 입양이라니…

아내가 일주일 뒤에 목도 못 가누는 어린 창윤이를 안고 왔어요. 울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았죠. 지금도 우린 아이들한테 우스갯소리를 해요. “너희들이 창윤이처럼 순한 줄 알고 입양했는데 속았다.”고요. 그 당시 우리 집은 슬픔이 극에 달해 있던 최악의 상태였는데, 아이는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었어요. 아들 잃고 잠까지 잃은 우리는 새벽 서너 시까지 넋 놓고 앉아 있곤 했는데, 그런 우리에게 아이는 방긋 웃어줘서 천사가 온 줄 알았어요. 창윤이가 우리 부부에게 주는 기쁨이 너무 커서 이듬해에 왕윤이를 입양했고. 그 이듬해에 선현이를 입양했어요. 그리고 계산해 보니, 선현이 스무 살 때 제 나이 칠십이었어요. 더 욕심내면 안 되겠다 싶었죠.

모처럼 가족 완전체가 됐다. 왼쪽부터 경희, 창윤, 우리 부부, 왕윤, 선현이다.(사진제공 이관훈) 
모처럼 가족 완전체가 됐다. 왼쪽부터 경희, 창윤, 우리 부부, 왕윤, 선현이다.(사진제공 이관훈) 

초등학생 자녀들을 키우려면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텐데 회사를 그만두셨어요. 창업이나 다른 계획이 있으셨나요?

저는 대기업 전문 경영인이었어요. 자격증이나 특수 기술을 가진 게 아니에요. 제 경영 능력은 탄탄한 회사 조직과 뛰어난 인적 자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예요. 그러니 창업할 생각은 아예 안했죠. 집사람은 “이제 적게 먹고 살자.”고 하더라고요. 도윤이의 죽음 앞에서 내가 아들과 하루도 놀아준 적이 없는 아빠였다는 사실이 한이 되었어요. 경희에게도 미안한 건 마찬가지고요. 회사일에 바쁜 나는 가족들이 보면 늘 ‘부재중’인 존재였죠. 어쩌다 일요일에 좀 쉬려고 하면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 게 귀찮았어요. 나는 잠이 필요한데 말이죠. 그랬기에 회사를 그만두면 경제력은 잃어도 가족은 얻겠다 싶었어요.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할 전환점이기도 했어요.

가족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같이 생활하는 법부터 배웠어요. 지금은 알지만, 처음엔 현금지급기에서 돈 인출하는 것도 지하철 환승법도 몰랐어요. 제가 경상도 사람이라서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구분을 정확히 하고 살았죠.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고3처럼, 저는 가정과 무관하게 회사일만 했다니까요.

(아내를 보며) 그런 남편이 어떠셨나요?

본인 말로는 하산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머쓱하겠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빨리, 잘 내려오길 바랐어요. 남편이 직장생활은 참 잘했지요. 지금은 가정생활을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하나 했어요. 퇴직금 받으면 조금만 달라고요. 왜냐고요? 돈 쓸 일은 점점 많아질 테니 점점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남편이 그동안 내조하느라 고생했다며 제 통장을 만들어 주었어요. 저는 그 돈으로 가족여행을 다니자고 했지요.

여행의 시작이 궁금하네요.

처음엔 여행사 단체 관광으로 동유럽과 서유럽 코스를 두 번 다녀왔어요. 정해진 일정을 따라다니는데, 아이들은 어른과 원하는 게 달랐어요. 박물관엔 관심이 없고 어디 가면 있는 맛집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유여행으로 바꿨죠.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한 달 일정을 짜서 다니는데 여행가방이 이삿짐 같았어요. 헌 가방에 헌옷을 넣어가 입고 버리면서 짐을 줄여갔어요. 우리가 밥도 해먹고 빨래도 해가며 다니니까 좋기는 한데, 여행을 온 건지 유목민이 이동을 하는 건지 모호할 때도 있었어요.

입양부모들과 만나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사진 박종도 기자 )
입양부모들과 만나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사진 박종도 기자 )

그런 여행을 5년간이나 하셨다고요?

창윤이 초6학년 때 시작해서 고2 때까지, 1년에 70일씩 결석하니까 학교에서 대학 갈 준비를 하자며 체험학습을 그만하라고 했어요.(하하)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아이들이 점점 단단해졌어요.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여행을 생각했어요. 가는 도시마다 아이들의 순번을 정해 직접 가이드를 하게 했죠. 우리는 아이들이 설명하는 대로 따라가겠다고요. 여행 잡지를 펴고 맡은 도시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더라고요. 발표 준비를 제대로 못 했으면 책을 들고 읽으면서 설명을 하고요. 제 성에 찰 리가 없지만 기다렸어요. 점점 아이들에게 노하우가 생기고 내용도 알차고 흥미로워지는 거예요. 셋 중에 제일 잘한 가이드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심사 결과는 항상 공동 1위였죠.(하하)

중요한 것은 부모가 주도권을 몽땅 갖지 않는 거죠. 애들이 핫초코 맛있는 집이 있다면 우리는 따라갔어요. 아이들이 아니면 우리가 그런 데에 가보기나 하겠어요? 지금 창윤이가 미국에서 혼자 유학하는데 제법 잘 헤쳐가요. 공부가 힘들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적응을 해가요. 아이들이 1년에 2달씩 5년간 해외 연수를 다녀온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 친구들 부모는 나보다 스무 살 정도 젊어요. 경제적 여유가 안 될 때라서 매년 해외여행을 가기는 힘들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나이든 부모를 만났지만, 덕분에 여행을 많이 다녔죠. 여행을 통해 살아갈 자생력을 배우고 또 자기네끼리 서로 챙겨주고 가르쳐주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걸 보면서, 저는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여행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코로나 시기에 (사)한국입양홍보회 회장직을 맡아 일했다. (사진 박종도 기자)
그는 코로나 시기에 (사)한국입양홍보회 회장직을 맡아 일했다. (사진 박종도 기자)

아이들과 여행을 하며 직접 느끼고 얻은 것도 많으시죠.

그럼요. 제게 여행은 큰 스승과 같습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내 위주로만 살았는지 알았어요. 아이들 교육은 집사람 몫이고 나는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사람이 자녀 넷을 혼자 키웠으니 (이때 아내가 당신까지 합해 5명이라며 손가락을 펴 보인다.) 미안하고 고맙죠. 제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게 뭔지 가르쳐준 적도 배운 적도

없어요. 여행을 하면서 아버지의 진짜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고, 자식의 멘토가 되고, 자식의 롤 모델인 아버지,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가요?(하하)

우리 애들은 저한데 꼭 ‘대디’라고 불러요. 대디는 우리 집에서 최고라는 의미로 통하죠. 여행하면서 5년을 아이들과 마냥 뒹굴었으니, 아이들과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였어요. 가족여행은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우리에게 귀한 경험이었어요.

딸 경희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잠봉뵈르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 대표 부부와 아주 오래,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에서 벗어난 곁길 이야기도 있었으나 낳은 자식과 데려온 자식에 차이를 느끼냐는 우문은 던지지 않았다. 내가 낳은 자식들도 모두 다 같지 않은데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도 같지 않은 자식들을 대하는 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평소에 이들 부부는 아이의 친부모와 가족에 대해, 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숨기지 않고 말해준다. 남녀가 혼인신고를 해야 법적으로 완벽한 부부가 되듯이, 이들도 법적으로 완벽한 가족임을 누구에게나 설명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출생에 매이지 않고 밝게 자랄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라고 하는데, 이 대표 부부가 그랬다.

2남 2녀의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는 부부를 보면서 ‘교사무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교사敎思는 가르치고 이끌어줌에 있어 마음을 깊게 쓰는 것을 뜻하고, 무궁無窮은 한계가 없이 받아들여 이끌라는 뜻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받아들일 때 한계를 먼저 정하지 말고 품어주고 가르치라는 본연의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창윤이가 화상 통화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친형제들 찾아주는 사이트에 들어가 메모를 남겼는데, 한국에 나와야 수소문이 가능하다고 답이 왔어요. 내가 이번에 입대하러 갈 때 한번 형제들을 찾아봐도 될까요?” “그래.”라고 답했지만, 형들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단다. 아이를 거둔다는 것은 먹이고 씻기고 학교 보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배 아파 낳았든, 마음으로 낳았든 자식과의 관계는 눈 감을 때까지 이어진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찬란한 봄을 안겨준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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