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벨라루스 대사 안드레이 체르네츠키

지난 3월 19일 열린 서울 마라톤 대회.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하는 10km 코스 대열에 주한 벨라루스 대사가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리고 있었다. 날씨는 청명해도 미세먼지가 심해서 아쉬 웠다며 그는 풀 코스 도전을 다음으로 기약했다. 마라톤뿐 아니라 템플 스테이도 해보고,지난해에는 제10회 코리아챌린지페스티벌에서 국제교류 공로상도 받았다. 한국에 부임한 지 이제 1년 반인데,한국 문화를 체험하면서 한국인처럼 지내는 체르네츠키 대사의 적극적인 마인드에 대해 듣고 싶어서 한남동 주택가에 자리한 대사관저를 방문했다.

안드레이 체르네츠키 대사 Ph.D Ambassador  Andrew Chernesky 1968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태어났다. 물리학을 좋아한 그는 1992년 벨라루스 국립 기술대학교 전기시스템학과를 졸업했다. 전기공학 박사 취득 후 1997년까지 모교의 교수로 강단에 섰고. 국가보안위원회로 옮겨 2021년까지 근무했다. 2021년 10월에 주한 벨라 루스 대사로 임명 받아 한국으로 부임했다. 비즈니스를 전공한 아내와의 사이에 17살, 12살 딸과 아들을 두었다.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에 능통하다. 사진은 그의 집무실에서 촬영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만든 ‘태양계 모빌’이라고 설명하는 그의 얼굴이 행복 그 자체였다. (사진 박종도 기자)

안녕하세요. 대사님은 마라톤 대회에서 스포츠 베테랑 같았습니다.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네, 운동을 매일 하니까 좋아하는 것이겠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왔습니다. 시작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친구들이 통통하게 살쪘다고 저를 놀려댔거든요. 그래서 살을 빼려고 운동을 했고,18살 때엔 제가 원하는 몸을 만들었습니다. 저를 닮아 통통한 아들을 데리고 요즘은 아침에 조깅을 합니다.

제가 비만을 이겨낸 것은 반드시 몸매 관리만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이 쪄서 놀림감이 된다는 사실이 제겐 약점이었고 친구들과도 싸움의 원인이 되었죠. 자격지심을 느끼게 했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비만은 저를 날씬하게 만들어준 ‘장점’이었습니다. 비만 때문에 어려서부터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다이어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생활할 수 있었으니까요.

10살 무렵 제 주위엔 날씬한 또래 친구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 친구들은 “난 날씬하니까 다 이어트는 필요 없어.” 하며 운동과 음식 조절에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유로웠습니다. 그 또래 친구들과 제가 올해 54세가 되었는데, 지금 만나면 그들은 비만 상태이고 저는 아직까지 몸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식장 위에 진열된 각종 기념패와 메달들. 그는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동해, 서해 곳곳을 다니는데 얼마 전 통도사에서의 템플 스테이는 생소한 체험이었다고 한다. (사진 박종도 기자)

체력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멘탈의 중요성에서 끝나네요. 대사님의 어린 시절은 어떴는지요?

저는 구소련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밖에서 뛰놀고 다양 한 놀이와 게임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가면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영화를 보았어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 전달하기가 더 수월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나 소통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자연 속에서 보냈습니다. 숲에서 하이킹을 하고, 호수에서 낚시를 하며 놀았어요. 기술이 크게 발달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자연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하고 서로 교류하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 꿈은 지금 보면 아주 단순했어요. 20분짜리 TV만화 영화를 하루 종일 방영되도록 하는 것이었죠.

순수의 시대에 유년기를 보내셨네요. 지금은 4차 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차 혁명 이후 미래의 모습은,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우리 인류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모호한 환경 속에서 챗GPT에 대한 나의 태도는 명확합니다. 모든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대체해주는 것 이 아니며 사람을 돕는 보조적인 것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챗GPT를 활용해 대학 과제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은 사고하는 방법을 잊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걷지 않고 유모차만 탄다면 결국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만듭니다. 인공지능이 주는 편리함으로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자질들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합니다. 놀이를 통해서 개구쟁이 같은 방법으로라도 말이죠. 그것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하듯이, 생각하는 능력을 유지하려면 계속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뇌에도 이런 운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울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10km 코스를 완주한 체르네스키 대사. 다음에는 풀 코스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사진제공 주한 벨라루스 대사관)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어떤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미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고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생물학과 물리학 또는 화학과 물리학 또는 유전학과 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청소년들에게 필요합니다. 2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 ‘자동화’가 성공의 열쇠였고, ‘전문화’도 매우 유용한 능력이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서로 다른 것들을 통합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더 요구됩니다.

대학교수로 강단에 설 때 어떤 점을 학생들에게 강조하셨나요?

저는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살펴보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제가 과학자인데 외교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묻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실제로 외교관들 중에 과학 관련 학위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공부한 전기공학의 기초는 수학과 물리학입니다. 두 학문은 ‘정확한 과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수학과 물리학에 적용되는 문제 해결의 원리는 ‘논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런 특징은 외교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외교의 기본은 ‘소통과 협상’이고,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 능력이죠. 이때 ‘논리’가 필요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장 취약한 점을 찾는다면 무엇일까요?

인내심 부족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정말 참을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내하는 것이 삶에 너무도 중요합니다. 스포츠를 예로 들어볼게요. 경기를 하면 승자가 될 수도 있고 패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기에서 지면 일단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내가 어느 부분이 부족했는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승리보다 패배가 더 중요합니다. 승리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월감에 취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해서 우리를 가르치고 실수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물론 패배는 우리 마음에 좌절을 불러오지만, 좌절에 빠져들지 말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집중하면 됩니다. 제 아이가 숙제가 많다고 힘들어할 때 위로의 말보다는, ‘좌절하지 말고 극복해 나갈 방법을 생각해보자.’ 라고 조언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제는 패배했지만 내일이나 멀지 않은 미래에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참여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마라톤에 우승하려고 출전하는 게 아닙니다. 제 자신을 위해 뛰는 겁니다. 나의 최대 적은 저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최고의 시합은 또 없습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자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내 감정과 행동을 콘트롤할 수 있다면 훨씬 쉬워집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모두에게 아침이 똑같이 옵니다.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다가 느지막하게 일어나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몸을 일으켜 조깅을 시작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 뛰는 겁니다. 내 감정과 욕구를 제어할 수 있어야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한복 차림의 체르네츠키 대사가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나의 행복은 자녀의 행복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매우 가정적인 가장이다. (사진 주한 벨라루스 대사관)
한복 차림의 체르네츠키 대사가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나의 행복은 자녀의 행복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매우 가정적인 가장이다. (사진 주한 벨라루스 대사관)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셨네요. 마지막으로 벨라루스 국가에 대해 독자들에게 짧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벨라루스가 수교한 지 31년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수도 민스크까지 거리는 7,268km이며 비행기로 10시간이 걸립니다. 한국에 비해 땅은 2배 이상 넓지만 인구는 980만 명밖에 안 됩니다. 대부분 숲으로 덮여 있고 강과 호수가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허파’라고 합니다. 평야 지대에서는 감자 농사를 짓고, 낙농업이 발달해 요거트와 치즈 같은 제품도 유명합니다.

한국에 비해 땅은 2배나 넓지만 인구는 980만 명 정도인 벨라루스. 숲이 대부분이고 강과 호수가 많아서 ‘유럽의 허파’ 라고 불린다. 위 사진들은 벨라루스 관광청에서 여행 스팟으로 소개하는 곳들이다. (사진 www.belarus.travel)
한국에 비해 땅은 2배나 넓지만 인구는 980만 명 정도인 벨라루스. 숲이 대부분이고 강과 호수가 많아서 ‘유럽의 허파’ 라고 불린다. 위 사진들은 벨라루스 관광청에서 여행 스팟으로 소개하는 곳들이다. (사진 www.belarus.travel)

벨라루스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할 것들이 많습니다. 봄에는 다양한 색상의 꽃,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겨울에는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여름은 그렇게 덥지 않고, 1년 내내 공기가 깨끗합니다. 벨라루스를 방문해서 건축, 자연, 문화 전반을 돌아본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양국 간에는 비즈니스의 잠재력도 큽니다. 저렴한 원자재와 에너지 자원 등 벨라루스에는 중소기업 발전에 유용한 조건과 환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벨라루스에 여행 와서 자연과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맘껏 누려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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