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살 그들의 선택_변화#2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끝없는 과제, 시험, 복잡한 인간관계…. 해외봉사를 떠나오기 전,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엇이든 열심이었던 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공부도 과제도 사람도 모든 것이 나에게 부담 그 자체가 되었다. 새로운 일은 가능하면 미루고,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런 ‘한계 상황’이 나를 데려다준 곳이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기니’였다. 그곳에서 잠시라도 한국에서의 모든 고민을 잊고 싶었다. 

기니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청소년들을 위한 캠프가 열렸다. 지부장님은 내게 한 팀을 관리하는 캠프 교사로 활동해보라고 하셨다. 선뜻 “네”라는 대답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불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데, 교사가 된다면 민폐가 아닐까?’ 끈질기게 할 수 없는 이유, 변명을 늘어놓자 지부장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혜진아, 너는 잘하는 것만 해서 칭찬 받고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만 해.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처음 해보는 일도 해보고, 못하는 것도 해봐. 성질 못됐다는 소리도 들어보고. 그때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어.”

머리가 ‘띵’ 했다. 정곡을 찔렸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부족한 사람으로 드러날까 봐 늘 전전긍긍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해보자!” 그날을 시작으로, 내가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것’ ‘자신 없는 것’ ‘처음 해보는 일’이 내게 몰려왔다. 솔직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식사 준비를 돕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도 그랬다. 나와 성격이 반대였던 동료 단원과 잘 지내지 못했다. 기니에서 늘 삐걱거리기만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얼마 후,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는데, 학생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의 생일 축하합니다!” 나도 잊고 있던 내 생일을 기억하고, 서툰 한국말로 노래를 불러주는 학생들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학생들은 내가 실수하든 하지 않든,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돌아보니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웃음에, 긍정적인 마음에 내가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있었는데 나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그걸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봉사지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실수투성이에 혼나는 나이지만 지부장님도 현지 봉사자분들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우리를 가장 먼저 챙겨주셨고, 늘 좋은 것만 주려고 하셨는데 늘 잘한 것, 못한 것만 따지며 살아왔던 내가 바보 같았다. 

마음을 바꿔보았다. 잘하는 윤혜진으로 살려고 했다면, 나는 캠프도 아카데미도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부족하긴 해도 종종 혼이 나긴 해도 그걸 통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에게 받았던 사랑,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이 컸다. 그걸 마음껏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도망자의 삶’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못해도 괜찮아. 그래도 해보자! 거기서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글 윤혜진 기니 해외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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