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3] 자료수집

자료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 힘들다. 자료수집을 철저히 하면 배열만 잘해도 좋은 글이 된다. 자료가 많으면 글 쓰는 사람은 마음이 푸근하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해 겨울나기가 두렵지 않은 농부의 마음과 같다. 좋은 글은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에서 나온다. 재료가 많으면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지 않은가. 요리를 즐긴다면 평소 냉장고에 삼겹살부터 청양고추까지, 육류와 채소류를 쟁여두어야 한다. 언제든 요리할 수 있게. 글쓰기도 자료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제든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다. 

《식객》,《타짜》,《각시탈》 등 수많은 화제작을 그린 허영만 화백은 취재와 자료수집에 열정적이다.《식객》을 그릴 때엔 경기도 파주로 취재를 가서 황복 알을 직접 먹어보기도 했다. 독성이 있는 복어 알은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기도 하지 않는가. 허 화백은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 먹었는데도 목덜미가 빳빳해지고 손끝이 짜릿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세 번째 찍어 먹자 요리사가 복어 알 접시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허 화백은 발로 뛰어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해서 만화를 그린다.《식객》을 연재할 때는 10년간 매달 두 번씩 전국을 돌며 취재했다. 그는 자료를 ‘총알’이라고 표현한다. 전쟁이 난 후에 총알을 만들려면 늦지 않은가.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항상 책과 자료를 사고, 모은다. 듣고 보는 모든 이야기를 메모하고 스케치한다.

그의 만화가 인기를 끌고 높은 평가를 받는 까닭은 취재와 자료수집을 통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렇게 만들어진 풍성한 스토리에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

허영만 화백은 1990년대 중반에 일본 만화들을 보다가 변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직접 취재해서 현장감이 느껴지고, 생생한 정보가 담긴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남은주, 허영만·이두호·장태산…환갑 넘은 거장들의 생존 비법, 한겨레신문, 2015년 5월 3일, 유성운, “내 만화가 TV 나오는데…” 허영만이 돌아서서 밥먹은 이유, 한겨레신문, 2021년 11월 22, 박소희, ‘여성시대’ 허영만 “‘식객’ 취재, 일부러 연락한 식당 가지 않았다”, 뉴스엔, 2019년 8월 16일, 고흥주, 공부하는 만화가 허영만, “‘식객’ 자료 수집에만 3년 투자”, 마이데일리, 2007년 11월 5일, 황호택, 만화가 허영만 “복어알 독毒 찍어먹고, 소 몇 마리 토막 내가며 ‘식객食客’그렸죠”, 신동아, 2005년 7월 29일)

이는 언론에 소개된 허영만 화백의 일하는 방식이다. 창작 활동을 머리가 아니라 발로 뛰며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와 자료보다 독창적이고 생명력 있는 건 없다.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모든 크리에이터에게 현장은 작품 활동의 출발점이다. 작가들은 현장의 울림을 가슴에 새기고, 정보를 머리에 담으려 애쓴다. 그걸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정여울 작가는《빈센트 나의 빈센트》를 10년 동안 준비해 썼다. 열정을 따라 그는 매년 각 나라의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냈다. 10년 동안이나? 그의 답은 “대상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빠지면 어떤 자료 조사도 지겹거나 힘들지 않거든요.”이다. (정여울,《끝까지 쓰는 용기》, 김영사, 2020년 8월, 45, 46, 47쪽)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는 삶의 근거지를 이탈리아로 옮기기까지 했다. 그는 “가보지 않은 땅에 대해서는 쓸 수 없다.”라고 말하는 현장주의자다. 그는 40여 년이나 독학하며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답사했다.《로마인 이야기》는 매년 1권씩 15년에 걸쳐 쓴 역작이다. 400자 원고지 1만 500장 분량을 손으로 썼다. (이한수, “정치가는 자기가 모르는 역사는 말하지 말아야”, 조선일보, 2006년 12월 18일)

소설가들도 상상의 나래만 펼치지는 않는다. 취재와 자료수집에 엄청난 정성을 들이고, 그걸 바탕으로 작품을 짓는다. 조정래 작가는《황홀한 글감옥》에서 ‘어느 작가든 실존하는 무대를 취재 없이 썼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것은 무성의와 무책임의 표본이고 철 덜 든 오만이며 독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조정래,《황홀한 글감옥》, 시사IN북, 2011년 5월, 320쪽)

그가 《정글만리》를 쓸 때에는 중국을 16번이나 다녀왔다. 한 달 이상 장기 출장과 일주일 이내 단기 출장이 각 여덟번씩이었다. 언론에서 수집한 자료만 수첩으로 90권이나 됐다. 책도 80권을 읽고 그중 20권에서 자료를 정리했다. 여기에 현장 취재한 민속, 풍습까지 찾아 확보했다.

전남 보성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에는 조정래 작가의 취재 수첩이 보관돼있다. 이 수첩에는 작품의 배경과 등장 인물, 그들의 관계, 에피소드 등이 '꺠알 글씨'로 적혀 있다. 그는 취재 수첩 왼쪽 면은 현장에서 급히 메모할 때 쓴다. 오른쪽 면에는 취재 내용을 정리해 정서해 둔다. 이런 취재 수첩이 400~500권이나 된다. (이해준, 조정래, 조정래를 넘어서다, 헤럴드경제, 2014년 1월 2일)

글쓰기를 위한 자료수집과 요리 재료 준비과정은 닮았다. 어떤 요리를 하려면 그에 맞는 최소한 또는 필수 재료가 있어야 한다. 김치찌개를 만들 때 신김치는 꼭 있어야 한다. 다른 재료들은 대체할 수 있다. 당면 대신 라면 사리를 넣을 수도 있다. 삼겹살보다 꽁치통조림을 넣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취향에 따라 원하는 재료를 넣을 수도, 뺄 수도, 바꿀 수도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주제에 따라선 개인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주장하는 바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는 성격의 글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다. 자료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쓰기 힘든 글이 된다. 자료수집을 철저히 하면 배열만 잘해도 좋은 글이 된다. 

자료가 많으면 글 쓰는 사람은 마음이 푸근하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해 겨울나기가 두렵지 않은 농부의 마음과 같다. 좋은 글은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에서 나온다. 재료가 많으면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많지 않은가.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평소 냉장고에 삼겹살부터 청양고추까지, 육류와 채소류를 쟁여두어야 한다. 언제든 요리할 수 있게 말이다. 

글쓰기도 자료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제든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다. 자료가 많으면 원하는 대로 가공해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를 준비할 때 자료는 필요량보다 많다 싶을 정도로 모아야 한다. 자료가 모자라면 글이 안 된다. 글은 머리를 쥐어짠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글쓰기를 위한 자료수집 대상은 책 쓰기에 필요한 모든 형태의 데이터다. 책, 각종 매체에 수록된 글, 영상, 음성 등 어떤 형태의 기록물이든, 글쓰기에 보탬이 되면 무엇이든 수집해야 한다. 검색으로도 얼마든지 유용한 자료를 모을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시대다. 번역 툴을 활용해서 외국어 자료도 찾을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책에서 자료를 찾을 때는 발췌독을 하는 게 현명하다. 읽고 밑줄 치기보다는 해당 부분을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 입력시켜 두는 게 좋다. 제목, 저자, 출판사, 발행 연도, 쪽수 등 출처를 밝히는 정보도 함께 기록해 두면 필요할 때 다시 찾지 않아도 된다. 

자료수집은 좁고 깊게 하는 게 좋다. 필요한 걸 다 찾을 수는 없다. 목표치의 80% 수준을 확보하면 쓰기 시작하고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찾는 게 효율적이다. 수집한 자료를 잘 활용하려면 분류를 잘해 두어야 한다. 인쇄물은 종류별로 노트에 붙이거나 묶어 두면 분실을 막고 찾기 쉽다. 디지털 데이터는 분야별로 폴더를 만들어 보관하면 찾기 쉽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자료를 모으는 수단으로 블로그, 포스트, 카페, 브런치 등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자료축적과 동시에 홍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메모 기능 앱을 활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특히 비문학적인 글은 자료로 쓴다. 양질의 자료를 수집해 정리만 잘해 두면 글쓰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글은 완전히 독창적이기는 힘들다. 자신만 간직한 생각을 세상의 자료로 증명한 결과물이 글이다. 글쓰기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바탕으로 엮어 내는 일이며, 쓰는 사람의 가치관과 시대의 요청에 따라 특정 자료들을 대비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작업이다. 자료에 따라 글의 품질이 결정된다. 이처럼 글쓰기를 ‘창조’가 아니라 ‘편집’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료수집의 중요성과 유용성이 이해된다. 

자료는 모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일상화하는 게 가장 좋다. 자료를 수집하려고 별도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평소 관심 분야에 관한 자료를 쉬엄쉬엄 모으는 게 가장 좋다. 많이 쌓아둘수록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쓰는 글의 목적, 목표를 충족하는 자료를 잘 챙기는 게 좋은 글을 쓰는 지름길이다.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누구나 책쓰기》가 있고,《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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