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살 그들의 선택_꿈#2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아르헨티나 지부에는 약 5만 평의 땅이 있다. 그곳에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위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풀과 나무만 무성해 마치 주인 없는 땅과 같았던 부지가 몇 년에 걸쳐 체육관, 학교, 집 등이 들어서며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장소에 많은 사람을 초청해 뜻깊은 행사를 갖고 기쁨과 행복을 나눠 주기도 했다. 나는 특별하고도 경이로운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물론 처음부터 신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봉사를 하러 아르헨티나에 와서 지금까지 내가 해본 적이 없는 일들, 예컨대 농장 관리나 캠프 프로그램 만들기 같은 일을 해보았는데 그중 건축이 가장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였다. 한국에 비해서 척박한 건축 환경과 습한 날씨 속에서 무거운 돌을 옮기다 보면 손발이 까이고 타박상을 입기 일쑤였기에 마음에 불평이 가득했다. 

이런 나와 달리 함께 봉사하며 건축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현지 사람들은 늘 밝고 행복해 보였다. 10년 동안 공사를 해왔다는 아저씨에게 그토록 즐거운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완공 후 이곳에 온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소망스럽지 않아? 이 땅을 밟고 걸어와 건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얻어 갈 거야.”

그는 앞으로 행복해질 사람들을 상상하며 지금 육체가 느끼는 고단함을 떨쳐내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현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들의 마음에 물든 것일까? 나도 모르게, 곧 완성될 건물과 그 안에서 행복해할 사람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건물에 와서 기뻤으면 좋겠다. 나처럼 학창 시절이 어두운 아이들이 와서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7살 때부터 12년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면서 굉장히 외롭고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기에 부모님은 단 한번도 새 옷을 사주시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도장으로 가서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운동해야 했고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주말에도 도장을 지켜야 했다. 

나는 그곳의 공립학교에 다녔는데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늘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공부도, 운동도, 사람도 싫었지만 힘들다는 말조차 쉽게 할 수가 없어 늘 외로움과 우울함에 빠져 살았다. 19살 때 한국에 올 수 있었지만 오랜 타지 생활 탓인지 한국에서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이가 되어 군대까지 다녀왔으나,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이 모든 문제가 남아공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 부모님 때문이라는 원망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12년간 배운 태권도. 그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과 끈기, 열정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12년간 배운 태권도. 그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과 끈기, 열정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태권도 아카데미를 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그때 아버지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을까? 아버지가 남아공에 태권도 아카데미를 운영하실 때 어떤 심정으로 태권도를 가르쳤을까? 풍속과 문화가 너무 다른 낯선 곳인데, 그곳에서 가족까지 부양해야 하는 아버지의 부담감은 얼마나 컸을까? 처음엔 언어도 안 통했을 텐데 어떻게 현지인을 지도하셨을까? 항상 강해야 했던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내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더듬어가자 조금씩 이해되었고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낯간지럽고 쑥스럽지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솔직한 내 마음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이곳에서 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 했고,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자, 무척 고마워하시며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말을 남기셨다. 아르헨티나라는 공간이, 이곳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들이, 나를 사고하게 만들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처럼 나와 같은 어두운 시절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외롭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밝은 사람으로 커 간다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축을 하면 할수록 신기한 것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가벼워지고 보람은 가득하다는 것이다. 서투르지만 연장을 가지고 뚝딱거리거나 무거운 자재를 옮기며 땀을 흘리는 일이 이제는 귀찮거나 힘겹지 않다. 오히려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내가 저기에 벽돌 한 장을 넣었구나! 저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지구에 나의 흔적을 남겼구나! 나를 통해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얻겠구나! 하는 일에 재미가 있으니 일하는 순간 순간이 즐겁고 그 자체가 삶의 기쁨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기대하며 잠들고, 눈 뜨면 현장으로 달려가 건물 세우는 일을 반복했다. 

건축봉사를 하며 힘들고 지쳤던 순간, 앞으로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건축봉사를 하며 힘들고 지쳤던 순간, 앞으로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나는 어느덧 행복을 짓는 건축가가 되어 있었다. 건축 봉사를 통해 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갈수록 건축 일에 흥미가 생기고 자세히 배우고 싶어졌다. 그 분야를 한국에서 제대로 배워 다시 아르헨티나로 가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 학교와 집을 세우고 기술도 가르쳐 주고 싶다. 

이 땅과 이 건물을 밟는 모든 사람이 희망과 행복을 얻는 그런 건축물을 짓는 것이 나의 꿈이다. 사랑과 꿈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 아르헨티나. 그곳에 새롭게 만들어질 공간과 그곳에 와서 변화될 사람들을 나는 오늘도 상상해 본다. 

글 이현준 아르헨티나 해와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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