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살 그들의 선택_꿈#1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말라위는 예고되지 않은 장면처럼, 한 번씩 그 아름다운 얼굴을 불쑥 드러낸다. 머리맡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구름과 어둠을 비집고 나오는 수많은 별들,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는 자연의 소리와 담 없이 이어진 형형색색의 지형지물까지 들여다볼수록 세상이 가진 경이와 다른 감동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 말라위에서 느낀 아주 커다란 감동 하나가 있다. 사람들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다. 어제만 해도 절망과 무기력을 친구 삼던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소망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나는 멀리 말라위에 가서 보았다.  

나는 특별할 것 없는, 그러면서도 조금은 모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쓸데없는 생각과 스트레스가 불면증의 원인이라는데, 내가 그런 이유로 잠을 설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때로는 새벽 4시까지 잠들지 못해 뜬 눈으로 어둔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때로는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내 머릿속은 아주 사소한 일들로 어지럽혀지곤 했다. 때문에 침울할 때가 많았고,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은 점점 초췌해졌다. 

가족들과의 대화가 줄어들고, 신경질은 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나조차도 내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어두운데도 애써 밝은 체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을 아는 사람인 양 흉내 내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말라위에서 얻은 영혼의 단짝, 마태. 1년 동안 서로를 통해 부족함을 채워가고 도전정신도 배웠다.
말라위에서 얻은 영혼의 단짝, 마태. 1년 동안 서로를 통해 부족함을 채워가고 도전정신도 배웠다.

그런 내가 말라위에서 마태라는 친구를 만났다. 차분한 성격을 지닌 그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였다. 낯을 가리는 수줍은 사람들은 흔하지만 말라위에서 차분한 성격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견에, 나는 그 친구가 유복한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외출을 할 때마다 나는 마태와 짝을 지어 다녔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만들어 나갔다. 

어느 날,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가정에 대해 묻게 되었다. 먼저 내가 얘기를 했고, “너는 어때?”라고 질문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태가 답변을 꺼려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안 해도 돼.”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마태는 괜찮다며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태의 실제 삶은 내 짐작과 너무 달랐다. 걸음을 떼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이 왜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홀로 살아온 것이다. 내가 마태에게 느꼈던 차분함은 오랜 시간의 외로움이 가르쳐준 묵묵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마태에 대해 가졌던 나의 환상이 박살나면서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나는 마태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굳이 입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네가 그런 시간을 홀로 견뎌내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마음 속 행복의 촛불이 켜져서 점점 밝아지는 사람들을 보며,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마음 속 행복의 촛불이 켜져서 점점 밝아지는 사람들을 보며,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말라위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없이 내가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힘들고 어렵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그들의 깊은 아픔에 견주면 아픔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사소함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시각에 갇혀 애써 불행을 탓할 조건만 찾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나니, 조금씩 내 입에서 감사, 기쁨, 행복과 같은 단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메마른 나의 가지에 새싹이 움트고 작은 열매들이 맺히는 것 같았다. 

‘너와 함께 다니는 동안 네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들을 들으며 삶을 힘차게 살아갈 소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 나도 너처럼 사람들에게 변화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언젠가 마태가 내게 했던 말이다. 말라위에 오기 전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헛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깨뜨리고 나왔다. ‘나 같은 사람이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주고, 타인의 인생을 절망에서 건져내는 일만큼 근사한 일이 또 있을까?’

현재 마태는 교육의 기회가 부족한 말라위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중이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나는 진정한 행복을 경험했다. 그 행복을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되찾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라위에서 일 년을 보내며,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을 빛으로 옮겨주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면 이런 꿈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새로운 변화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그 꿈을 품고 산다.     

글 김대한 말라위 해와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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