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장소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새해의 첫 달인 1월보다 더 활기차고 긴장감 넘치는 시기다. 달리기 대회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은 올해 교실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3월은 항상 설렘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을 새 다이어리에 적어 보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다. 

매슬로우A.H.Maslow가 제시한 인간의 욕구 5단계
매슬로우A.H.Maslow가 제시한 인간의 욕구 5단계

잘 알려진 심리학자 매슬로우A.H.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의 피라미드형 구조로 설명한다. 하단부의 욕구가 채워지면 더 높은 단계로 계속 올라가면서 욕구도 상승한다는 이론이다. 맨 아래에 기초적인 생리적 욕구가 있고 마지막 정점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피라미드 욕구 이론에 의하면, ‘배부르고 등 따시면 최고’라는 말은 그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거나 상위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만든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표를 이룰 때 오는 질 높은 행복을 갈망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실제 성공에 이르는 사람은 왜 극소수에 불과할까?

성공의 당연한 비밀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라는 교육 심리학자가 있다. 그녀는 공립고등학교 교사로 수학을 가르치면서 성적이 좋은 학생과 나쁜 학생의 차이가 지능지수나 주변 환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성공의 비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그녀는 그 후 박사학위에 도전해 10년이 넘는 종단연구를 했고, 그 결과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열쇠를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그릿’이다. 그릿GRIT은 Growth(성장), Resilience(회복), Intrinsic motivation(내재적 동기), Tenacity(끈기)라는 단어의 앞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새로운 용어로서,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두뇌,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을 가리킨다.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 그녀가 쓴 책《그릿》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교육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lionessesofafrica)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 그녀가 쓴 책《그릿》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교육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lionessesofafrica)

실패와 역경, 슬럼프를 이겨내고 끝까지 해내는 마음의 힘, 목표를 향해 장기간의 계획으로 수 개월간, 수년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리는 근성을 뜻한다. 능력이 뛰어나도 그릿GRIT이 약하면 실패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재능이나 부모의 재력이 대단치 않더라도  그릿GRIT이 강하면 결과적으로 성공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그녀의 연구결과는 환경에 억눌려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2014년 TED에 올라온 6분짜리 강연은 순식간에 조회수 1천만 회를 넘어섰다. 그리고 2016년에 발간한 책《그릿》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크워스가 말한 ‘그릿’은 세상에 처음 나온,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에디슨의 명언집에도 나와 있다. “우리의 최대 약점은 포기다. 성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지 한 번 더 시도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많은 실패자들은 포기했을 때, 그들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이 왔는지 깨닫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 사람이 멈춘 곳에서 시작한다.”, “노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등 에디슨은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했고, 성공을 위해 사람들이 끝까지 한 번 더 시도해 볼 것을 끊임없이 주장했던 인물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해 본 최근의 사례를 찾아본다면 2022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룬 축구 대표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 축구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한민국의 성공 확률은 고작 9%였다.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얼굴을 다쳐 보호용 마스크를 쓴 상태라 100% 활약을 기대할 수 없었고, 우리의 마지막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 팀이었다.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박수 받을 상황이었다. 

2022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우리나라 축구팀. 성공의 열쇠는 그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 적혀 있었다. (사진 MBC뉴스)
2022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우리나라 축구팀. 성공의 열쇠는 그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 적혀 있었다. (사진 MBC뉴스)

그렇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지더라도’라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흥민 선수는 ‘앞만 보고 달려가자’라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그들은 주장의 마음을 받아 끝까지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달성해, 자신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까지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 짜릿한 성공의 열쇠는 그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 적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다시 ‘중꺽마’라는 밈Meme으로 청소년들에게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끈기 있게 노력한 결과가 우리 현실에서 결실로 나타나 많은 사람이 행복을 공감한 것이다.  

그렇다. 성공한 사람이 1%인 이유는 특별한 재능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1%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들이 1%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노력의 중요성은 이미 에디슨 이전부터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첫 마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1%에 불과하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성공은 특별한 1%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노력하면 된다는 사실의 증명이 아니라,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릿’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방법적인 문제이다. 그것이 성공의 진짜 비밀이다. 하지만 그릿 이론을 발표한 더크워스도 아직까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이것이다!’라고 내놓지 못했으며, 앞으로 끈기 있게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만 했다.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그릿, 그릿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필자의 견해에서 볼 때, ‘그릿’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꿈과 믿음의 마인드’를 갖는 것이다. 이 마인드는 현재 나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미래에 이루어질 꿈이 이미 실현되었다고 앞서 믿는 것이다. 즉,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점점 높게 쌓아가는 정산법이 아니라, 먼저 다 이루어진 상태를 마음속에 그린 후 거꾸로 내려오면서 실천하는 역산법이다. 외견상 결과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굉장히 다르다. 

정산법을 사용할 때는 ‘그릿’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 한 번, 두 번의 실패는 피드백을 받아 다시 도전해 볼 만하다. 하지만 열 번, 백 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같은 일에 다시 도전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감정이 없는 기계라면 가능하겠지만, 감정의 동물인 사람은 같은 일을 계속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일의 결과가 실패의 연속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더 나았을 듯한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반면에 역산법을 사용하면 마음에서 다 이룬 상태이므로 지금의 실패가 실패로만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포기라는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노력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노력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꿈이 나타나도록 입증하는 노력이므로 즐거움이 된다. 즐거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낮이나 밤이나 계속해서 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어려운 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한다. ‘그릿’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릿을 장착한 학생들

앞에서 언급한 매슬로우는 훗날 자신의 피라미드 욕구 이론을 스스로 평가하면서, 최고 정점인 ‘자아실현’ 위에 ‘자기초월’이라는 최상위 욕구가 존재한다고 수정했다. 즉, 최고의 행복은 자아실현 너머 자기를 초월할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자기초월’은 수평적인 범위로 볼 때 나만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이루어내는 꿈을 의미한다. 또한 자기초월을 수직적인 범위로 보면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영역 너머 꿈과 믿음의 마인드를 가질 때 오는 행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잘 알려진 조벽 교수는 청소년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출간한 교수법 전문가다. 그가 2016년에 쓴《인성이 실력이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물질적으로 빈곤한 시대에는 웰빙well-being이 필요하고, 정신적으로 빈곤한 시대에는 힐링healing이 요구되었으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빌리빙believing’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신념을 가지고 믿을 때 오는 강력한 마음의 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진 YES 24
사진 YES 24

그런데 앤절라 더크워스와 조벽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세상에 필요한 교육 결과들을 내놓기 이전에, 나는 이미 ‘그릿’을 실행하며 ‘빌리빙’의 세계를 사는 학생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수년간 해오면서 내게 풀리지 않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밝게 잘 지내던 학생들을 졸업 후 몇 개월이 지나 만나보면 대부분 생각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마음도 어두워져 있었다. 왜 그렇게 변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어 교사인 나 자신도 갈등을 겪었다. 

그 무렵, 중학교에 입학할 학생들을 위해 초등학교에서 어떤 연계 활동을 해주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참관하러 간 학교가 바로 대덕에 자리한 ‘링컨중고등학교’였다. 그 학교에 가보니,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세계 최고의 학생 000입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들의 품성에 타고난 기개가 있거나, 최고의 자질을 실제로 갖춰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헤아리는 기준점을 지금이 아닌, 장래에 최고가 된 모습에 두고 있었다. 미래의 꿈을 당겨서 현재의 마음속에 넣고 사실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도, 표정도 그렇게 당당했던 것이었다. 

필자가 ‘그릿’을 실행하며 ‘빌리빙’의 세계를 살고 있다고 소개한 학교의 중학생들. 사진 링컨중고등학교 홈페이지
필자가 ‘그릿’을 실행하며 ‘빌리빙’의 세계를 살고 있다고 소개한 학교의 중학생들. 사진 링컨중고등학교 홈페이지

진정한 성공의 비밀 

내가 더 놀랐던 것은, 그들이 말하는 ‘세계 최고’라는 말의 참된 의미였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목표를 달성할 때 얻는 세계 최고가 아니라, 자신의 주변도 함께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희생정신이 깔려 있었다. 그 학생들이 말하는 세계 최고는 결코 단순한 1등이 아니었다.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마음을 뜻했다. 

시험에서 1등을 해도 언제 2등으로 밀릴까 불안해하고, 어쩌다 등수가 바뀌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여느 학생들과 그들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함께 대화하고, 잘못된 것은 조언해 주면서 속도를 맞춰가는 그들은 ‘나뿐 아니라 너도 세계 최고’라는 빌리빙의 신념을 서로 불어넣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정말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어디서나 ‘세계 최고’라고 말하고 행동하고 도전하고 있으며, 실제로 불가능한 많은 일을 시도해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물론 그 학생들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마음에 분명한 꿈과 믿음을 넣어준 멘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우리의 자녀들과 학생들에게 전해줄 마음의 핵심은 바로 ‘꿈과 믿음의 마인드’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빌리빙 마인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꿈과 믿음의 마인드를 가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결코 과정 중에 오는 어려움과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장착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꿈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게 여기서 포기하고 말 것인가? 우리 주변에 꿈과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함께 더 큰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올해 27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2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춘천교도소 초청으로 2015년부터 재소자들에게 매달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상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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