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멕시코 사람이다. 여기에 온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평소 외교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1년 전 여행차 왔던 한국의 매력에 빠졌고, 멕시코와 유독 교류가 많은 나라인 한국에서 유학을 결심했다. 조금 늦더라도, 내가 꿈꿨던 일을 해보고 싶었다. 부모님은 나를 만류하셨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올해 초, 고집스러운 딸에게 화를 내시는 엄마와, 조용히 눈물을 닦으시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나는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살이 첫째 관문은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감사하게도 한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알맞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방이 여러 개였는데, 집주인의 배려로 룸메이트를 구해 살며 월세를 감당하기로 했다. 합격한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바로 ‘외로움’. 한국 사람들은 낯선 사람인 나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멕시코 친구에게 연락하려 해도, 시차가 문제였다. 처음엔 룸메이트도 없었기에, 집에 돌아오면 빈집이 나를 맞았다. 나는 대가족 틈에서 자랐고, 독립한 후에도 친구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 때문에 오랜 적막을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혼자 잘할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도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여기 온 게 정말 잘한 선택일까?’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 내 삶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치과에서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는 그 친구는 작은 ‘음악 밴드’도 만들어 이끌고 있었다. 나에게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지만 삶의 변화가 필요했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연습은 일주일에 무려 세 번! 일곱 명 남짓한 멤버가 모이면 연습도 했지만, 함께 식사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그때 알았다. 그 시간이 무척 소중했다. 약 한 시간 반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그 여정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루는, 밴드부 멤버의 소개로 유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캠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 명소를 다니며 한국 문화도 경험하고, 강연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한 강사분이 늘 원망스럽게만 생각했던 아버지의 진짜 사랑을 느꼈던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부모님 생각이 났다. 타국 생활이 힘이 들어도 말씀드리기가 죄송해서, 때론 내 삶이 바빠서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쉬는 시간, 아버지에게 영상전화를 걸었다. 

지난 1월, 한국어 캠프에 참석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이다. 사진 멜리사 제공
지난 1월, 한국어 캠프에 참석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이다. 사진 멜리사 제공

“멜리사, 웬일이야? 잘 지내고 있어?” “네! 아빠, 제가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순간 엄마의 얼굴도 함께 영상에 보였다. 두 분은 보고 싶었던 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그러곤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등을 물어보셨다. 밴드 활동을 한다고 하니, 밴드 공연은 언제 하는지, 실시간 영상을 공개한다면 내 모습을 볼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셨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을 닫고 지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는 이 고집스러운 딸도 언제나 그랬듯 사랑하고 계셨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멕시코에서 지낼 때보다 부모님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부모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요즘, 나는 아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밴드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아, 좋은 룸메이트도 얻었다! 예전에는 저녁이 되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먼저 날 찾아왔는데, 지금은 눕자마자 거의 잠에 빠져들고 있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행복하다. 

앞으로도 살다 보면, 자취생활의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누군가와 ‘연결’될 때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점이다. 독립은 고립을 뜻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도 누군가와 마음이 연결되고 힘을 얻을 때 공부도, 청소도, 자기 계발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마음의 문틈을 활짝 열어두려 한다! 

글  카렌 멜리사 구즈만 마따(연세대 어학당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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