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 살 그들의 선택_사랑#3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제까지의 내 삶에 행복은 없었다.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은 항상 전쟁터였고, 서로 의지하고 기대야 하는 가족들은 그렇질 못했다. 이 모든 원인이 아빠라고 생각해 나는 아빠를 지독히 미워하고 싫어했다. 매일 큰 소리가 오고가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났다. 해외봉사라는 멋진 명분으로.

우간다에서 지내는 것이 환경적으로 어렵긴 했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한국에서의 불행했던 내 삶을 점점 잊어가고 있을 때, 우연히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우간다 BTS 팬클럽 회장이었던 트레시는 ‘코리아 커넥트’라는 문화교류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 계속 우리와 인연이 이어져 우간다 굿뉴스코지부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함께 일할 때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트레시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어두워 보일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한 후,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사진 IYF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한 후,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사진 IYF

어느 날, 트레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가족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행복한 우간다에서의 생활에 잠시 잊고 있었던 악몽들이 다시 떠오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트레시가 덤덤하게 말했다. “우간다에서는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새엄마 새아빠랑 살거나, 부모님 없이 혼자 사는 아이들이 많아.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 새아빠 새엄마만 네 명이야. 게다가 지금은 친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친형제도 없어서 나에게 남아 있는 가족은 아무도 없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잠시 뒤 트레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잃기 전에는 그것이 소중한지 몰라. 혜민아, 너희 가족은 정말 소중한 가족이야.” 트레시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트레시,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고마워. 네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어. 그리고 트레시, 너에게도 가족이 있어. 이곳 지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널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거든. 앞으로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함께 살아보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난한 형편에서 우리 삼남매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을 텐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사셨겠구나.’

다음 날,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아빠를 미워하기만 했던 지난날들과 우간다에서 트레시와 이야기하며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까지 모두 종이에 꾹꾹 눌러 담았다.

편지를 받은 아빠로부터 영상전화가 걸려왔다. 아빠와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한 미소를 띠며 전화를 받았다. “혜민아, 편지 잘 받았어. 너의 마음을 표현해주고, 아빠를 이해해줘서 너무 고마워. 아빠가 한국 오면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다 와.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행복이란 게 이런 걸까?’ 나를 향한 아빠의 사랑, 가족들의 사랑을 발견한 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걸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다.

글 김혜민 우간다 해외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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