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 스무살 그들의 선택_사랑#1

1년 전, 코로나로 온 세계가 멈춰 있을 때 남다른 선택을 한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166명의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이 그들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돌아온 단원들이 그곳에서 받아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았더군요. 떠올리기만 해도 벅차오르는 추억과 경험을 여러분께 전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조엘! 네가 내 로션이랑 치약 마음대로 썼지?!”

“무슨 소리야, 나 안 썼었어.”

“거짓말 하지 마. 네가 썼잖아.”

나보다 8살 어린 동생 조엘과 싸움이 시작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며칠 전부터 내 화장품과 치약이 점점 줄어들었다. 코트디부아르에서의 생활은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사용했던 것들인데 갑자기 양이 줄어드니 주변 사람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한 가장 유력한 범인은 나와 방을 같이 쓰는 조엘이었다. 

“조엘, 정말 네가 안 썼어?” 

“나 정말 안 썼다니까.” 

너무나도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로 억울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조엘의 말을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줄어드는 내 물건들을 보며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도둑고양이처럼 말도 없이 내 물건을 함부로 쓰는 거야.’ 

오늘은 미끼를 던져 범행 현장을 확실하게 잡으리라 다짐했다. 평소 창가에 두고 쓰던 내 물건들을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방문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조엘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방문 틈으로 살짝 방 안을 들여다보니 조엘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치약을 짜서 양치를 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날 저녁 조엘에게 물었다. “너 내 치약 썼지?” “아니야, 나 안 썼어.” “거짓말 하지마. 네가 내 치약 쓰는 거 다 봤거든?” 그 순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아니라고 말했던 조엘의 얼굴이 한 순간에 굳어지더니 “그래 맞아, 내가 썼어.”라고 말했다.

알 수 없는 그 뻔뻔함에 화가 나 “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모진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조엘도 화가 나 소리를 질렀고, 또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둘 다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 하나 먼저 사과하지 않았고, 그날 밤은 서로 등을 돌린 채 조엘은 왼쪽 벽에 붙어서, 나는 오른쪽 벽에 붙어서 잠을 잤다. 

쌀쌀한 새벽공기에 추워서 잠깐 잠이 깼는데 조엘이 발 밑에 팽개쳐진 내 이불을 끌어다 목 끝까지 덮어주고 있었다. 평소 모기에 잘 물리던 나에게 “잘 때 이불 좀 잘 덮고 자.”라고 잔소리를 하던 조엘이었는데 내가 깰까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준 조엘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음 날 아침, 조엘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 어제는 모기 하나도 안 물렸다?” 

“다행이네. 너 어제 이불 잘 덮고 자더라.” “네가 덮어준 건 아니고?” 순간 당황해하며 조엘이 물었다. “너 내가 이불 덮어주는 거 봤어?” “응 봤어. 그때 잠깐 깼었거든. 미안해 조엘, 어제는 내가 말이 너무 심했지?” 조엘은 쑥스러운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 그날 조엘과 마주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조엘의 부모님은 조엘이 어렸을 때 이혼하셨다. 조엘은 엄마와 언니, 여동생과 같이 살았고,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다 국제청소년연합을 만나 달로아Daloa 지부에서 학교를 다니며 살게 되었다. 엄마가 가끔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지부에 찾아오지만 거동이 불편해 자주 오시지는 못했다. 이곳 현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물건을 잘 나눠 쓰기 때문에 조엘도 내 물건을 자연스럽게 쓴 것이었다. 게다가 모두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이니 더 눈길이 갔을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조엘(사진 오른쪽)과 함께.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조엘(사진 오른쪽)과 함께.

그 후로도 조엘과 싸우고 화해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어느 날은 방에서 싸우다가 화가 나서 거실로 나가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 엄청 큰 바퀴벌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자존심은 온데간데없고 바로 조엘에게 가서 말했다. “조엘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저 바퀴벌레 좀 잡아줘.” 조엘은 아무렇지 않게 바퀴벌레의 긴 더듬이를 손으로 잡더니 “너는 이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라며 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날은 바퀴벌레 덕분에(?) 가장 빨리 화해한 날이었다.

또 어느 날은 밤에 조엘과 크게 싸우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조엘은 벌써 학교에 가고 없었다. 오전내내 신경이 쓰였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나?’ ‘아니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조엘도 자기 잘못을 알아야 돼.’ ‘그래도 내가 먼저 사과를 할까?’

오후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조엘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서더니 교복 치마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하게 뭉쳐진 종이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지?’ 하고 쳐다보고 있으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며 뭉쳐진 종이를 내 손에 쥐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종이를 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또’(기름에 튀긴 빵)가 하나 들어 있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도 괜히 퉁명스럽게 조엘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돈도 없으면서 이런 걸 뭐하러 사왔어.” 조엘이 주고 간 가또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날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생각이 나서 가또를 하나 샀다고 했다. 원래 집에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그날은 다른 사람들이랑 마주치면 가또 냄새를 맡고 서로 나눠먹자고 할까봐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나에게만 준 것이라고 했다. 

가또 냄새를 맡으면서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자기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런데 날 위해서 얼마 있지도 않은 돈으로 가또를 사온 조엘이 너무 고마웠다. 조엘과 크고 작은 일로 티격태격하며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보낸 1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두 달 동안 조엘과 달로아 지부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항상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던 조엘의 따뜻한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도 조엘이 참 보고 싶다.

글 정미희 코트디부아르 해외봉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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