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 차린 진수성찬도 간이 맞지 않으면 먹기가 어렵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 소금 만한 조미료는 없다. 다산 정약용의 글 모음집《여유당전서》 중 소금 정책을 논한 ‘염책鹽策’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무릇 소금은 백성들이 늘 먹어야 되는 것이다. 비록 오곡이 있어도 맨밥을 먹을 수 없고, 여러 가지 나물이 있어도 나물을 그냥 절일 수는 없다. 소금으로 초와 간장을 만들고 소금으로 육장을 담근다. 소금으로 나물을 무치고 소금으로 국의 간을 맞추고 소금으로 음식 재료간의 약성藥性을 조화시킨다. 날마다 먹는 음식 가운데 한 가지라도 소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말, 백성들의 식생활에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그래선지 우리말에 짠맛의 표현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닝닝하다’, ‘슴슴하다’, ‘삼삼하다’, ‘간간하다’, ‘간이 딱 맞다’, ‘짭조름하다’, ‘짭짤하다’ ‘소태 같다’ 등은 짠맛의 정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기준이 각기 자기 입맛이라서 요즘처럼 염도 몇 퍼센트라는 화학적 수치로 말하기엔 정확하지 않다. 따라서 삼삼한 것과 간간한 것, 짭조름한 것과 짭짤한 것의 미묘한 차이를 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역사 속의 소금

지금은 소금이 너무 흔해서 누구든 자유롭게 소금을 살 수 있지만, 소금이 황금처럼 귀한 시절이 있었다. 귀하다는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람을 뜻한다. 따라서 소금은 국가가 판매를 독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소금을 관할하는 사람이 자동적으로 부와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자에서 소금을 의미하는 ‘염鹽’자는 세 글자가 합쳐진 상형문자이다. 왼쪽 위는 ‘신하 신臣’,  오른쪽 위는 ‘소금밭 로鹵’, 아래는 ‘그릇 명皿’을 의미한다. 기원후 100년 중국 동한東漢의 허신許愼이 최초로 한자의 기원을 설명하며 편찬한 책《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소금은 ‘로鹵’이고, 사람이 염전을 만들어 생산된 소금은 ‘염鹽’으로 구분하고 있다.

소금을 얻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노예를 사고 팔 때 소금으로 값을 치렀는데, 노예가 게으르면 “소금 값어치가 없다.”라고 했다. 로마인들이 서쪽 해안 ‘오스티아 안티카’에서 소금을 대량 생산하면서, 소금을 거래하는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소금 수출이 늘어나자 로마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소금 교역을 위해 만든 ‘소금 길Via Salaria’과 관계가 있다. 당시 무거운 소금을 나르는 상인들에게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울퉁불퉁하고 높낮이가 다른 불편한 길과 도적들의 예기치 못한 공격이었다. 영주領主들은 소금 상인들이 자기 영토를 지나갈 때 길을 잘 닦아서 마차가 불편 없이 왕래하게 해주었고, 기사들을 동원해 안전을 지켜주었다. 그 대신에 ‘소금 길’ 세금을 받았다. 이 일로 영주와 도시들은 앉아서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소금으로 조리한 음식을 대접했고,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을 대비해 청어, 고등어, 연어, 농어, 대구 등을 염장해 오래도록 두고 먹었다. 유럽인들에겐 소금, 황금, 노예가 3대 무역품이었는데, 12세기에 모로코 남부 시질마사에서 생산한 소금이 가나에서는 금값과 같게 판매되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도 소금은 금보다 비싼 사치품이어서 ‘하얀 황금’으로 불렸다.

변함 없는 약속을 상징

문화사적으로 볼 때, 소금은 신성함과 맹세, 약속의 상징이었다. 소금은 음식의 부패를 방지해주었기 때문이다. 과거 유대인들은 예배 때 하나님께 소금을 바치기도 했고,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고기를 소금에 짜게 절였다. 성경의 ‘소금 언약’은 변함없는 약속을 상징했다. 아랍인들은 

소금을 함께 먹은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풍속이 있다. 그들은 소금을 함께 먹는 행위를 약속이나 계약의 신성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은 식탁 위에 접시와 빵과 음식들이 널려 있다.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은 유다의 작은 소금 그릇 하나가 엎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화가는 유다의 배신을 엎어진 소금 그릇으로 표현했다.

‘최후의 만찬’에 그린 엎어진 소금 그릇. 위 그림은 원작의 리프로덕션이다. 사진 myloveisrael
‘최후의 만찬’에 그린 엎어진 소금 그릇. 위 그림은 원작의 리프로덕션이다. 사진 myloveisrael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소금이 액귀를 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신생아에게 맨 먼저 소금을 먹이기도 하고, 신랑신부의 말안장과 가마 바닥에 소금을 깔았다. 새 출발을 해코지하려는 귀신들을 물리치려는 의미였다. 재수 없는 사람이나 물건, 불길한 조짐에 대해서도 우리 조상들은 소금을 무기 삼았다. 부정한 것을 보고 듣고 먹었을 때 소금 탄 물에 눈, 귀, 입을 씻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금은 사람을 해치는 부정不淨을 씻어내고 마음의 평온을 얻게 하는 한국 정신사의 결정체였다.

우리 몸에 소금이 없다면   

현대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 몸에 소금이 왜 필요하고, 몸 안에 들어온 소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자세히 밝혀졌다. 우리 몸에 흘러 다니는 물은 소금물이다. 그래서 피와 땀 눈물 모두가 짜다. 이런 분비물뿐만 아니라 뼈와 살, 혈액에도 소금이 들어 있다. 소금은 인체의 구성 성분이면서 조직과 조직, 혈액과 세포, 뇌와 신경을 두루 연결하는 데 쓰이는 필수 성분이다. 소금은 바닷물 중에 녹아 있는 여러 가지 무기물로, 인체가 요구하는 필수 영양소 미네랄의 총체이다. 

소금의 주요성분은 염화나트륨(77.5%)이지만, 그 외에 염화마그네슘(10.89%), 황산마그네슘(4.74%), 황산칼슘(3.6%), 황산칼륨(2.46%), 탄산칼슘(0.34%), 브롬화마그네슘(0.23%) 등이 들어 있다. 소금이 없으면 우리는 숨을 쉴 수도 없고, 근육을 움직일 수도 없으며, 영양분을 소화시킬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몸에 들어간 음식물의 노폐물을 제대로 배설할 수도 없게 된다. 소금이 없으면 호흡도 체온 조절도 안 되고 두뇌 활동도 불가능하다. 

반면에 소금을 충분히 섭취하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염증이 없어지고, 통증이 사라지며 피로가 풀리고 머리숱도 많아진다. 변비와 설사가 없어지고 속이 편안해지고 숙면을 취하게 되며 혈당이 조절되고 체력이 좋아진다. 소금은 신경전달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되고 소화와 흡수 배설에도 동원되며, 혈액의 ph를 조절하고 전해질과 항상성 유지에 쓰인다. 즉 혈액과 체액의 구성 성분이면서 삼투압 작용을 일으켜 피를 흐르도록 만들어준다. 

사진 태안천일염 홈페이지
사진 태안천일염 홈페이지

소금의 효능은 신체적 대사代謝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과 판단력, 기억력이 좋아져 학습 능력과 업무 능력이 향상된다. 또한 부정적이던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조급한 사람이 느긋하고 여유 있는 성격으로 바뀌는 등 정신적인 변화도 나타난다. 이쯤 되면 소금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소금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만병의 근원도 역시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하루에 필요한 소금 권장량을 5g으로 정해 두었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 먹는 짬뽕 한 그릇엔 10g의 소금이, 라면 국물에는 5g의 소금이 녹아 있고 인스턴트식품 첨가물에도 상당량의 나트륨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이 13.5g이라는 수치만 보더라도 짜게 먹는 편이라서, 우리는 건강을 위해 소금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의 저염식 정책이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고, 실제로 짜게 먹는 한국과 일본에 비만 인구가 적고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도 미국보다 낮다고 한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섭취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있어도, 소금을 아예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사람의 혈액이나 어머니 뱃속의 양수가 바닷물과 같은 0.9%의 염도이며, 병원에서 사용하는 생리식염수도 염도가 0.9%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소금 농도 0.9%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수치다. 

아플 때 수액을 주사하는 이유는, 수액 자체가 어떤 약리 작용을 해서라기보다 전해질과 나트륨 농도가 맞아 피가 돌면서 노폐물을 짜내고 독소가 배출되어 생기를 되찾는 원리다. 소금의 마그네슘 성분은 혈액순환을 도와 심장에서 삼투압현상으로 인하여 손끝, 발끝까지 순식간에 혈액이 순환되고, 소금은 인체의 체온을 늘 따뜻하게 높이고 유지하며 순환을 좋게 한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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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미네랄이 듬뿍, 천일염

소금은 종류가 다양하며 효능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바람과 햇빛으로 수분만 증발시킨 것으로, 칼슘, 마그네슘, 철 등 바닷물의 풍부한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다. 천일염에 포함된 염소와 나트륨은 세포 구조 유지, 수산염 용해 등 그 본래의 임무를 수행하고 각종 미네랄로 인하여 체외로 배설되기 때문에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프랑스의 게랑드Guérande 천일염보다 미네랄 함량이 3배나 더 높은, 세계 최고의 미네랄 함유율을 자랑한다. 김치는 대부분 천일염으로 담그는데, 질좋은 국산 천일염이나 죽염을 사용하면 김치의 맛과 신선도가 더 오래 보존된다. 

재제염은 천일염을 다시 정제수나 바닷물에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재결정화시킨 것이다. 결정체가 눈꽃처럼 생겨 ‘꽃소금’이라 불리는데 재제염은 천일염보다 하얗고 입자가 작으며 염도는 88%이다. 국이나 반찬 등의 요리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정제염에는 바닷물을 여과와 침전, 이온 교환막 통과 등의 과정을 거쳐 불순물과 중금속을 제거한 순백 자체의 소금이다. 염도가 99% 이상이라서 짠맛이 매우 강하다. 서구식 제염기술로 만들어진 정제염엔 미네랄이 거의 없어서, 염소와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못해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소금 제조과정에서 쓰이는 표백제와 습기방지제가 인체에 유해하다. 반면에 입자는 곱고,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모든 자연 산물은 균형 잡힌 영양소로 구성되어 있다. 천일염은 영양의 균형을 유지하지만, 하얀 정제염은 염분만 있는 불량식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각종 중금속과 유해물질에 바다가 오염되어 천일염에도 그 영향을 주어 있는 그대로 안전하게 먹을 수 없다.

소금, 화학공업의 주요 원료

소금은 우리 몸에만 유용한 게 아니다. 소금은 화학공업에서도 없어선 안 될 5대 원료의 하나이다. 화장품, 비누, 생리식염수, 접착제, 제설용 염화나트륨은 물론이고, 플라스틱병이나 자동차 제조에도 소금이 사용된다. 소금의 용도가 14,00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소금의 용도가 다양한 이유는 흡수력이 강하고, 물에 잘 녹으며,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소금물을 전기 분해할 때 생성되는 염소 기체가 처음에는 공정의 부산물로만 알았으나, 훌륭한 표백제이자 강력한 살균제임이 밝혀졌다. 상업적으로 염화나트륨을 전기 분해하는 이유는 수산화나트륨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염소를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염소는 살충제, 중합체, 의약품 같은 수많은 유기화학제품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소금이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소금을 사람과 동물이 먹는 식용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

자신을 녹여 다른 것의 가치를 높이고  

소금을 여러 측면에서 한번 훑어보았다. 소금은 긴 역사를 거쳐 왔고, 우리 몸 안에서 많은 일들을 수행한다. 지금 이 순간도 몸속을 흐르는 소금은 온몸을 돌고 돌아 영양분을 나르고 신경전달 신호를 보낸다. 쓰고 난 찌꺼기를 걸러내어 깨끗이 되돌려놓고, 필요 없는 것은 밖으로 내보내어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우리가 이런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금이 고맙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금은 사람뿐 아니라,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음식 재료에도 필요하다. 그대로 두면 썩어버릴 생선을 염장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그냥 두면 얼어서 먹지 못하게 될 무와 배추를 염장해서 김치와 짠지, 동치미로 만들면 추운 겨울을 난다.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 하몽을 만들고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를 만든다. 그리고 밭에서 나는 단백질인 콩과 바다의 소금이 만나면 된장과 간장이 탄생한다. 

또한 소금은 자신을 녹여 모든 음식의 맛과 향, 빛깔을 살려준다. 자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다른 것들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소금은 물을 품을 수 있게 하고 물을 흐르게 한다. 그래서 소금과 물이 몸 구석구석을 돌며 영양분을 공급하고 찌꺼기는 회수하여 밖으로 짜내 몸을 다시 깨끗하게 만든다. 

성경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라는 말씀이 있다. 소금이 변화하려고 노력하거나 짠맛을 내려고 애를 써야 그 맛이 나오는 게 아니다. 물과 접촉하고 물을 받아들이면 저절로 녹고 변화되면서 짠맛을 낸다. 자신이 녹아 사라질 때 소금은 다른 생명을 살린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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