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2]. 기획하라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힘겨워하면서도 글을 쓰려고 한다.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모니터 속 A4용지를 바라보면 막막하고 두려우면서도 말이다. 글을 좀 쉽게 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수들은 많이 써보라고 한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글을 갈고 다듬어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전부일까? 거기에 뭔가 더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글쓰기’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길을 연재한다. 단언컨대 비법은 아니다. 하지만 따라 하면 글쓰기가 한결 더 친숙해지리라는 점은 자신한다.

“첫 문단을 쓰기 위해 13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은 적도 있다.”《강신주의 감정 수업》,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쓴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주영재, [한국의 파워라이터] 강신주, 경향신문, 2012년 1월 20일)
글쓰기의 고통과 감투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첫 문장, 첫 문단 쓰는 게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역설적으로 첫 문장, 첫 문단이 풀리면 일사천리로 내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문열 작가는 “저는 제목 짓고 첫 장 쓰면 절반 쓴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주희, 이문열 작가 "나라가 망하기 전에 말(言)이 먼저 망했다" 월간조선, 2020.6)

강신주 박사는 어쩌면 당시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라이터스 블록은 우리말로 ‘집필자장애’, ‘글길 막힘’으로 번역된다. 전문 작가들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위기감과 좌절을 느끼며 고통 받는 걸 말한다. 일시적으로 글을 쓰지 못하다가 오래 지속되면 작가 활동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소설《말테의 수기》를  탈고한 후, 한동안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도 41세의 짧은 생애 동안 여러 번 글쓰기 장애를 겪었다. (루츠 폰 베르더, 바바라 슐터 슈타이케 지음, 김동희 옮김, <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들녁, 2011년 9월, 254쪽)

보통 사람들은 어쩌면 늘 라이터스 블록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걸 이겨내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쉽게 풀어가려면 쓰기 전에 준비 작업을 제대로 해야 한다. 글은 누구에게, 무엇을, 왜, 어떻게 쓸지, 미리 정하고 써야 한다. 주제와 콘셉트, 타깃을 사전에 설정해야 한다. 글의 성격에 따라서는 해당 분야 글의 흐름도 살펴보는 게 좋다. 시대의 트렌드를 글에 담으려고 애써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글은 문화상품의 하나다. 독창적이어야 경쟁력이 있다. 특이할수록, 또 독자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하면 할수록 더 파워풀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대중성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글은 쓰기 전 준비 단계, 글을 쓰는 단계, 글을 쓴 후 마무리 단계, 이렇게 3단계를 거친다. 앞 단계가 제대로 이뤄지면 뒤에서 작업하기가 수월하다. 준비를 제대로 하면 글 쓰는 과정이 힘들지 않다. 글을 제대로 쓰면 마무리에 큰 노력이 들지 않는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쓰기 전 준비 단계’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글은 쓰기 전 준비 단계 즉 기획을 거쳐 그걸 토대로 집필하고 교정해서 완성한다. 

글쓰기 기획은 글을 쓰기에 앞서 전체 그림을 그려보는 작업이다. 흔히 구상이나 발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 단계에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숱한 생각 중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 결정한다. 이때 주제와 주제를 뒷받침할 소재들을 점검하고 논점을 확실히 하고 논리를 어떻게 전개할지도 미리 정리해야 한다. 기획을 통해 주제, 글감, 구성, 개요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 인용문, 예문을 포함한 자료 찾기를 한다. 기획의 후속 작업으로 시간 계획을 마련한다. 실제 글쓰기 작업, 즉 집필 행위는 시간 계획에 맞춰 진행한다. 

기획은 백지상태에서 어떤 결과물을 끌어내는 모든 일의 출발점이다. 어떤 일이든 기획을 거쳐 타당성을 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기획안을 수정 보완한 뒤 실제 제작에 들어간다. 검증을 통과한 아이디어만 결과물로 세상에 존재를 알릴 수 있다. 기획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전략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검증한다. 그 과정을 통과한 아이디어만 가공해 실제 ‘물건’을 만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 생각을 검증하고, 엉킨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실마리만 찾으면 글쓰기의 막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구 엉킨 실의 첫머리만 찾으면 꼬인 실 묶음을 풀어 정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실마리는 여기저기 잡아당긴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얽히고설킨 실 묶음을 차근차근 헤쳐 정리해가며 찾아야 한다. 

글을 쓸 때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생각을 일정한 기준으로 분류, 정리하면 글을 술술 풀어갈 수 있다. 글쓰기는 한마디로 ‘생각 쓰기’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헝클어진 생각부터 정리해야 한다. 마인드맵Mind Map, 로직트리Logic Tree, 만다라트Mandalart 등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인드맵은 어떤 문제의 원인이나 인과 관계를 확인하거나, 전체 집합의 부분 집합을 찾는 데 유용하다. 해결할 문제는 생선뼈 머리 부분에 써놓고, 그 문제의 직접 원인은 큰뼈에, 간접 원인은 잔뼈에 배치한다. 어골도Fishbone diagram로 생각을 정리하는 기법이다. 어골도는 말 그대로 ‘물고기 뼈’ 형상의 다이어그램이다. 

로직트리는 ‘논리 나무’다. 어떤 주제나 문제를 나뭇가지 형태로 세분화하고 정리할 때 쓴다.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된다. 

만다라트는 브레인스토밍, 마인드매핑과 같이 두뇌 활용을 극대화하는 사고-학습 기법의 하나다. 연꽃기법이라고도 한다. 아이디어를 연꽃 모양으로 전개한다고 해서, 또 불교의 만다라Mandala 형태와 유사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생각 정리는 글쓰기의 한 과정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해서 배열하고 표현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쓴다. 또 글을 읽고 생각을 형성하고 그 생각을 다시 글로 표현한다. 생각과 글은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과정에서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글쓰기를 장려하는 까닭이다. 

생각은 지식과 관찰, 경험으로 생성된다. 지식은 상당 부분 책에서 온다. 특정 부분에 대해 뭔가 알아야, 지식이 있어야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글에는 저자의 지식이 고스란히 담긴다. 지식과 관찰, 경험에서 비롯된 자기 생각을 담은 글이 좋은 글, 차별성 있는 글이다. 기생충학자인 단국대학교 서민 교수도《서민적 글쓰기》에서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가 화려한가’가 아니라, 글에 ‘자기 생각을 담고 있는가’이다.”라고 말했다. (서민, <서민적 글쓰기>, 생각정원, 2015년 8월, 139쪽)

글쓰기 기획에는 구성도 포함된다. 글을 어떤 논리로 전개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글감들을 배치하는 일이다. 다양한 글 구성 방식을 응용할 수 있다. 서론-본론-결론 또는 기-승-전-결 방식이나 두괄식, 미괄식, 양괄식을 쓸 수도 있다. 어떤 틀이 자신이 쓰려는 글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가를 살펴 선택하면 된다. 특정 구성 방식만 고집하면 글이 정형화되어서 독자들이 쉽게 싫증을 느낄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구성 방식을 고민해서 선택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줄 때 구사하는 이야기 구성이 가장 효율적인 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거듭 말씀드리는데, 글쓰기는 미리 다 짜놓고 해야 한다. 무작정 쓰기 시작하면 힘들고, 의도한 글을 쓰기도 어렵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도 사전 기획에 성패가 달렸다. 생각 정리부터 하시라! 

글쓴이 이건우 

책 쓰는 법을 연구하고 강연한다. 현재 일리출판사 대표이다. 조선일보 편집국 스포츠레저부, 수도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스포츠투데이 창간에 참여했으며, 편집국장으로서 신문을 만들었다. 서울 보성고,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엄마는 오늘도 책 쓰기를 꿈꾼다》,《직장인 최종병기 책 쓰기》,《누구나 책쓰기》가 있고,《모리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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