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미, 행복의 꽃씨 마음에 뿌리다

우연히 본지의 교육 칼럼니스트 노순미 님의 프로필 사진들을 보다가 어느 시점에서 물음표가 생겼다. 코스프레 가발은 아닐 텐데… 머리카락이 있고 없고에 따라 똑같은 가발도 쓴 모습이 달라진다. 전화로 원고 청탁을 하다가 그 사진에 대해 물었다. 한때 심한 탈모로 가발을 썼는데, 그 덕분에 평생지기 언니가 생겼고 인생의 짐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탈모와 행복의 관계가 더 궁금해졌다. 어려운 일, 고통스런 상황을 감사와 행복으로만 기억하는 그를 직접 만나고 싶었다. 

지금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십니다. 탈모가 생긴 특별한 원인이 있었나요?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어 아픈 게 뭔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4년 전 쯤, 병원에서도 탈모의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지 못했고요. 당시 저는 초등학생 두 아이와 중학생 자녀까지 셋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이었어요. 퇴근해서 곧바로 집에 오면 7시가 돼요. 쉴 틈도 없이 음식해서 아이들 밥 먹이고 숙제 점검한 뒤 다음 날 학교 보낼 준비를 하려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늘 아이들을 다그쳐야 했어요. 10시가 넘으면 아이들 눈이 슬슬 감기니까 목소리가 커지지 않을 수 없었죠. 

이런 저한테 남편은 자녀교육 책을 좀 보라고 했어요. 저는 “이론이랑 현실은 다르다고요!”라며 톡 쏘아붙였죠. 직장 일도 완벽하게 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친정에선 맏딸, 시댁엔 똘똘한 며느리 노릇하면서 자기계발도 열심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뭐든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스트레스가 되어 원형탈모증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마음의 스트레스를 내려놓으라고 몸이 경고를 보낸 셈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그 경고 사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탈모증이 점점 심해지니까 머리카락이 맥없이 쑥쑥 빠졌어요. 넓은 헤어밴드로 가리고 다니는 것에도 한계가 왔죠. 그래도 저는 ‘괜찮아, 가발로 가리면 돼.’라고 하면서 씩씩한 척어요. 그 즈음, 친구가 좋은 자녀교육 특강이 있다면서 들으러 가자고 했어요. 

고등학교 회의실에서 열렸는데, 제 또래 엄마들 열댓 명과 같이 들었어요. 마인드교육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내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할지 몰라 혼란과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었거든요. 강의를 들으며 ‘아이들 안에 이런 마음이 있네.’ ‘마음부터 다스려주지 않으면 공부를 잘해도 나중에 소용이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린 항상 남보다 잘해야 한다고 배워왔잖아요. 공부도 운동도 친구관계도 다 잘해야 되는데, 강사님은 실패는 좋은 거라면서 마음을 먼저 바꾸어 보면 어떤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어요. 완전히 다른 마음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공부가 먼저가 아니고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아는 지혜가 먼저라고 알려주셨어요. 결국 내가 문제였어요. 내 마음부터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그날 했어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주최로 열린 학부모 자녀교육 특강. 사진 맨 오른쪽 앞에 숏커트 모습으로 앉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주최로 열린 학부모 자녀교육 특강. 사진 맨 오른쪽 앞에 숏커트 모습으로 앉았다.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던 자녀교육의 해결책을 얻었나요? 

사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말썽을 부리는 게 아니었고, 더 잘하기를 바라는 제 욕심이 문제였어요. 강의를 듣고 나서 저는 닦달하는 습관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죠. 욕심이 지나친 엄마만 생각을 바꾼다면 해결될 문제였죠. 

그리고 눈을 돌려보니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이 생각났어요. 이런 좋은 강의를 많은 학부모들도 들었으면 좋겠더군요. 우리 대학에서도 스타강사나 유명 박사님을 어렵사리 모셔다가 특강을 열어요. 가서 들어 보면 강의 자료가 훌륭하고 감동적인데, 들은 내용이 기대만큼 깊이 남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마인드교육은 달랐어요. 

마음에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죠. ‘지식보다 마음이 먼저 바뀌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오네.’ 우리 대학도 지식 교육에 자신의 마음을 알고 제대로 사용하는 법도 알려주면 학생들에게 더 유익하겠다 싶었어요. 이런 교육 과정을 대학에 적용해 보면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다음에 어떤 일들이 이어졌는지 궁금하네요. 

먼저 교육 프로그램 제안서를 작성하기 전에, 제가 두어 달 동안 혼자서 마인드교육에 관해 공부를 했어요. 제가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국립대학으로 공익실현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 있어요. 저는 지역사회에 협력하고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교육열 높은 노원구와 도봉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마인드교육 특강을 하자는 제안을 사회교육개발원에 했어요. 

원장님과 관계자 분들이 제 기획안을 다 들으시고 해보라고 하셨어요.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홍보 계획을 짜면서 제 마음이 희망으로 부풀었고, 새싹 돋듯 머리에도 가느다란 모발이 나기 시작했어요. 2019년 5월과 6월로 기억하는데요. 저희 학교의 가장 큰 강의실에서 특강을 했어요.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자녀교육, 진로 꿈 프로젝트’ 두 가지였는데 참석자도 많았어요.  

듣고 있자니 고진감래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좋은 것은 주변에 알리시는 편인가봐요.

제가 손이 좀 커요. 주어진 일을 더 키우는 편이라 동료들은 피곤하다고 할지도 몰라요.(하하) 특강 후 수강생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어요. 그때 저는 가발을 벗을 만큼 머리가 자라서 숏커트 모습으로 참석했죠. 

강사님 곁에서 특강 준비를 처음부터 도와준 분이 있었는데 연배는 저보다 많아 보여도 추진력과 에너지는 탱크처럼 대단하셨어요. 저는 맏딸이라 그런 언니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그분과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죠. 어느 날, 탱크 언니가 마인드교육 전문강사를 양성하는 코스가 시작되는데 수강하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좋은 기회겠다 싶어 신청을 했어요. 

저는 일 년 동안 그 언니와 수업을 같이 듣고 과제도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어요. 머리도 예전 스타일이 되었고 모든 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죠. 머리를 찰랑대며 다니던 그 즈음에 코로나가 불쑥 찾아왔어요. 동시에 제 머리카락도 다시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둘째 초원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하며 2021년 1월에 찍은 가족사진.
둘째 초원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하며 2021년 1월에 찍은 가족사진.

원치 않은 일이 두 번씩이나 생기다니, 두려웠을 것 같아요.  

다 나은 줄 알고 시름을 놓았던 머리가 또 빠지니까 정말 두려움 자체였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렇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우울증까지 왔어요.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남편이 바리캉으로 밀어주었어요. 영화에서 나오는 골룸처럼 흉측했는데 막상 깎고 나니까 왠지 처량해서 참던 눈물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재명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재발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지 못했고, 이러저런 약을 먹다가 부작용도 생겼어요. 

관절이 너무 아파서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려면 부축이 필요할 정도였죠. 신체적 고통도 힘들지만 지친 마음이 더 힘들게 느껴졌어요.  

그때는 집에 오면 문 앞에서 숨부터 가다듬었어요. ‘문 열면 나는 가정으로 다시 출근을 하는 거야.’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서 표정을 밝게 바꾼 뒤에 들어갔어요.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전달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 있겠어요?

그렇죠. 똑같은 병을 두 번 앓으면서 저는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안 하던 저도 막다른 골목에 오니까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탱크 언니가 병원에 갈 때 동행해준 날이 있었는데, 그때 언니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어요. 언니도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나으려면 약 잘 먹고 치료도 잘 받아야지.’ 라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상상도 못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다 나았네. 너는 나한테 이미 긴 머리 소녀야.”

‘난 지금 빡빡머리인데 무슨 소리야?’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긴 머리 소녀’라는 말이 마음에서 계속 울렸어요. 다음 날, 내가 진짜 ‘긴 머리 소녀’가 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수없이 생각했어요. 언니는 지금 내 모습이 아닌, 건강해진 모습을 이미 믿고 말한 거죠. 신기하게 저도 그 말이 믿어졌어요. 거울 속의 모습은 여전히 흉하지만, 예전보다 더 예쁜 나를 마음에서 발견하게 해준 희망의 그 말이 나를 우울의 바다에서 건져주었죠.

제 생일에 언니는《리디아의 정원》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면서 ‘우리 함께 행복의 꽃씨를 많이 뿌리자!’라고 했어요. 웃음을 잃은 외삼촌과 살면서 폐허가 된 옥상을 꽃밭으로 꾸며 웃음을 되찾아준 주인공 리디아처럼, 언니 말을 따라 가니까 제 마음에서도 행복의 꽃씨들이 발아하기 시작했어요.

동화처럼 아름답고 뭉클한 사연이네요. ‘긴 머리 소녀’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겠죠? 

네, 머리카락이 다시 났고요. 이젠 잡아당겨도 빠지지 않아요.(하하) 내가 받은 행복의 꽃씨를 다른 곳에 뿌리고 싶다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어요. 언니가 마인드 힐링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같이 하자고 했어요. 어떻게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을 극복하고 소통하는 대화가 가능한지에 대한 커리큘럼이었는데, 지자체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6개월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이 일로 제가 노원구에서 평생학습 증진 유공자 표창을 받았으니, 그런 기쁜 날이 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요? 요즘은 별내동에서 ‘시월에 독서모임’ 리더로 자원봉사를 해요. 그 사이에 아이들은 고등학생, 중학생으로 쑥쑥 자랐고요.

인터뷰 피날레에 기자는 긴 머리 소녀를 향해서 박수를 쳤다. 어떤 문제도 감사로 치환하는 그의 마음 구조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헬렌 켈러와 셜리번 선생이 떠올랐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일곱 살 소녀 헬렌을 셜리번은 어떻게 이끌었는가. 

셜리번을 만난 헬렌에게 선천적 장애가 문제되지 않았듯이, 탱크 언니를 만난 그에게도 까까머리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언니는 그를 긴 머리 소녀로 받아들였고  그에게 처음 보는 꽃들이 만발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지식을 보태서 자신만의 방법을 빚어낸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열심히 노력해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 방법을 써봐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모색하라는 사인으로 해석하자.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볕 좋은 날 빨래 널 듯, 밝은 곳을 향해 내 마음을 힘껏 열어젖히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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