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변두리에서 들과 산으로 뛰어놀던 촌놈이었다. 학교에 가면 도시에서 온 아이들 때문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자신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나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가져주셨던 분이 권희숙 국어 선생님이셨다. 수업 시간에 교실로 들어오실 때면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앞문 입구에 앉아 있는 나의 머리를 자주 쓰다듬어 주셨다. 한번은 명찰의 이름을 보시고 “문택아, 넌 어디에 사니?”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매번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다. 

커가면서 불행히도 난 선생님의 관심과 상관없이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절정에 달했다. 하여튼 나는 ‘못하는 것’ 빼고는 잘 하는 게 없었다.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던 부모님께 훌륭한 아들이 되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나 같은 사람은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으려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학교를 그만두거나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며칠 견딜 정도의 여비를 마련한 나는 해운대 역전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영등포역으로 가기 위해서다. 나는 아침에 집을 나올 때 ‘아버지, 어머니, 저는 학교를 그만 다니고, 서울 가서 검정고시를 치고 돈을 벌어서 내려가겠습니다.’라는 쪽지 한 장만 남겼다. 나도 내가 갈 곳을 몰랐기 때문에 어딜 가는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pixabay
@pixabay

밤늦게 도착해서 본 영등포역 주변은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 먼저 서울로 간 친구 하나가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할 거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 친구를 찾아보았지만, 영등포에 식당이나 카페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숙소를 잡았고,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나는 조조 영화를 보려고 역 근방에 있는 극장에 들어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장르가 공포영화인데 이날은 봐도 끄떡없을 것 같아서 죽음의 키스(아니면 나이트메어)를 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끝까지 참고 볼 수가 없어서 중간에 영화관을 뛰쳐나왔다. 온갖 용감한 모습을 흉내 냈던 내 입에서 ‘아, 무섭다. 빨리 집에 가야겠다.’라는 겁쟁이 소리가 나왔는데, 돌이켜보면 이때 겁을 먹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있을 곳, 돌아가야 할 곳은 여기 서울 영등포가 아니라 내가 그토록 떠나야 한다고 여겼던 집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것 계산하지 않고, 바로 숙소로 가서 가방을 챙겨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부산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녹슬고 틀이 비틀어져 제대로 닫히지 않는 대문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환영해주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슬레이트 단층집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해 보였다. “엄마?”하면서 삐끗대는 현관 샤시문을 열자, 안에 계셨던 부모님이 나를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아버지는 얼마 있지 않아 등을 돌려 반대편을 보며 앉으셨지만, 나는 짧은 순간에 아버지의 눈에서 ‘드디어 이 녀석이 왔구나’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신 후 “밥 먹어야지”라고 하시면서 나를 와락 끌어안으셨다. 부모님은 나에게 야단을 치셨지만, 다그치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훌륭한 아들을 바라신 게 아니었고, 공부를 잘 하는 아들을 바라셨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사랑스러운 아들이라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었고, 다른 부모들보다 못 해주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셨던 것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진 않았지만, 이때부터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선생님의 손, 나를 보시고 돌아앉으셔서 나에게 보여주신 아버지의 등, 나를 끌어안은 어머니의 품이 나에게는 모두 사랑이었다.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와 다른 것은 나의 정신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사랑이 있어서 가능했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나를 옥죄는 논리에서 벗어났고,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와 반대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식의 틀에서 빠져나왔다. 논리가 나를 이길 수는 있었겠지만, 나를 바꿔주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논리를 좋아하고 그 논리를 아무 데나 써먹으려고 한다. 논리로 사람을 공격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써먹은 논리가 덫이 되어 돌아오고, 논리만 늘어놓는 습관이 행동에 배어 있는 사람은 마음과 사랑까지도 논리로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마음도 아니며 사랑도 아닌데, 혼자서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라고 고집한다.

크기, 형태 그리고 성질이 약간씩 다르겠지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그리고 친구와 친구 사이에 사랑이 있다. 논리를 잠시 내려놓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랑 밖에서 만들어진 논리는 사람을 단죄하는 데 사용되지만, 사랑 안에서 자라난 논리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천천히 바꾸어 간다. 

글 박문택 변호사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