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는 법, 독서 모임 체험기

정신없이 살다가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계절이 왔다. 늘상 경로가 같은 퇴근길, 작은 책방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한 사람이 책을 들고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저자 초청 모임인 것 같았다. 독서 모임에 한 번쯤 참여해보고는 싶었지만,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라는 핑계로 신청서 한번 제출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는 미뤄둔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겨보기로 했다.

“어디에서 신청할 수 있지?”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독서 모임’ ‘북클럽’ ‘북토론’ 등의 키워드를 입력했다. 독서 모임 참석 후기는 많았지만, 정작 내가 참석할 수 있는 모임이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다. SNS에 접속해 같은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자 크고 작은 책방에서 열리는 독서 모임 포스터가 곳곳에서 보였다. 독서 모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중, 나의 눈에 띄었던 온라인 및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선정해 참여해보았다.

# 온라인 독서 모임 ‘김영하북클럽’

북클럽을 진행하는 김영하 작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화면 캡처.
북클럽을 진행하는 김영하 작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화면 캡처.

평소 비대면 모임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김영하북클럽’을 발견하곤 눈이 번쩍 뜨였다. 정기적인 독서 모임을 소설가가 직접 진행한다니!

가입 절차는 따로 없었다. 그달에 선정된 도서를 읽은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감상을 올리면서 #김영하북클럽 해시태그를 붙이면 된다. 월말에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면 라이브 방송 안내가 뜬다.

김영하북클럽에서 8월에 선정한 책은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였다. 더 없이 현실적인 인물들의 가족사를 통해 오늘날 인간의 갈등과 욕망, 자유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장편 소설이다. 나는 라이브 방송(8월 31일이었다.)까지 일주일을 앞두고 도서를 구매했다. 기간 안에 완독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책의 압도적인 두께를 보고 실패를 예감했다. 결국, 책의 3분의 2를 남긴 채 디데이를 맞았다. 방송에 접속해보니,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 두꺼운 책을 완독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처럼 다 읽지 못 한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줌도 아닌, 라이브 방송으로 심지어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참가하는 독서 모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확실한 기우였다. 많은 분이 진지한 태도로 책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정성스럽게 작성한 감상을 올려놓은 걸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라이브 방송에 입장해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방송이 시작되었다. “분량이 엄청났죠. 전체적인 총평을 들어볼까요?” 답변은 즉각적이었다. 댓글로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분량이 많아 읽기 어렵기도 했지만,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가가 질문을 던지면, 참가자들은 댓글로 의견을 표현하면서 쌍방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좋았다. 몇 가지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Q. 등장인물 중,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누구였나요? 이런 독법으로 읽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질문의 답이 나일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질문을 드립니다.

Q. 책을 읽으며 ‘왜 자유가 제목이지? 자유가 주제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목     은 주제에서 벗어나기도 해요. 제목을 다시 정해보죠. 자유 말고 적당한 제목 없었을까요?

Q. 우리는 왜 국가를 만드는 등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고, 다시 자유를 택하기도 하나요?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다 보면 ‘책을 이런 각도로도 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 사회를 더 들여다보기도 했다. 소설에 새로운 제목을 붙여보기도 하고,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더불어, 같은 책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댓글로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답변은 이러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 자유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닐까요?”

처음에는 이 책을 읽으며, 마약과 불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고 특수성이 강한 미국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여겼다. 하지만 다양한 질문에 답하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니까. 마무리로, 그가 9월호 책을 소개했다. 863페이지에 달하는 또 다른 벽돌 책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라는 소개가 붙었다. 다음 달 북클럽에도 도전해 보려 한다.

북클럽, 이곳은 어때요?

책 발전소 북클럽

한 달에 한 권, 직접 큐레이션 한 책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면 큐레이션 북과 함께 레터, 북클럽 가이드가 제공되고 온라인 북클럽 웨비나를 할인된 가격으로 받아볼 수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매달 큐레이터로 참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 @bookplant_bookclub

최인아책방 북클럽

최인아책방의 두 대표가 직접 고른 책을 편지와 함께 받아볼 수 있다. 매달 1회 토요일 오후, 다른 북클럽 회원들과 모여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책 모임이 열린다.

인스타그램 @inabooksbookclub

민음사, 문학동네, 마음산책, 시공사 북클럽  

출판사가 운영하는 연간 멤버십 제도로, 소정의 연회비를 내면 책 몇 권과 가입 선물(일명 굿즈)이 함께 배송되며 한 해 동안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북토크, 온라인 독서 모임 등에 참여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우리 동네 책방 찾기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동네 서점 지도’를 검색해보자. www.bookshopmap.com 전국에 위치한 내 취향의 독립 서점, 우리 집과 가까운 일반 서점 등 다양한 책방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외에도 집과 가까운 도서관의 홈페이지 공지사항도 확인해보자. 가을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니 주목!

# 오프라인 독서 모임 ‘선영씨 책방’ 낭독 모임

9월의 어느 날, 도서 낭독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도봉구에 위치한 작은 책방을 찾았다. 카페와 서점을 겸하는 ‘선영씨 책방’은 필사, 낭독, 독서 모임, 저자 북토크, 연주회 등 매주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중, 낭독 모임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주 1회씩 총 4회 열리고 있었다. 9월 선정 도서는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였다. 낭독 모임에 참석하기 전, 시간을 내어 책을 미리 읽었다. 그 속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지나온 집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책방에 들어서자 따듯한 우드톤 인테리어와 차분한 공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모임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먼저 인사를 나눴다. 책방 사장님, 선영씨 책방을 애정하는 지역 주민이자 작가인 윤정 씨, 책방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덕성여대 졸업생이자 책방 이웃 주민인 수경 씨, 그리고 나. 우리는 책을 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읽는 분량은 정해두지 않는다. 원하는 만큼 읽고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긴다. 그리고 한 챕터(비교적 짧은 편이었다.)를 모두 읽은 후에는 감상을 나눴다.

좋은 책과 따듯한 차가 있는 아늑한 공간, 선영씨 책방. 심리 상담 예약도 가능하다. 인스타그램 @sunyoungs_bookshop
좋은 책과 따듯한 차가 있는 아늑한 공간, 선영씨 책방. 심리 상담 예약도 가능하다. 인스타그램 @sunyoungs_bookshop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작가가 살았던 ‘좀처럼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집’에 대해 읽었을 때였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좁은 골목길 집을, 누군가는 대학 시절 잠시 머물렀던 바퀴벌레가 나오던 자취방을, 누군가는 현재 살고 있는 자취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들 또는 마주쳤던 이웃들에 대해 말했다.

‘집’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좁은 전셋집에 살았지만 가족의 따스한 추억이 남기도 했고, 넓은 집에 살아도 ‘내 집’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대화를 나누며 그 삶에 공감했고, 때론 위안을 얻었다.

대화의 방향은 다양했다. 하재영 작가가 고민했던 ‘진짜’ 작가의 길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그의 멋진 문체에 감탄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추석에 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는 문득 아쉬움이 가득 남았던 부산 여행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소수 정예 모임, 작은 책방 모임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낯선 이와의 접점을 발견하는 기쁨, 공감, 그리고 소중한 인연을 알게 된다는 것. 모임이 마친 후에도 아쉬움이 남아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네 책방에는 좋은 책이, 좋은 사람이 함께했다.

[Mini Interview] 

Q. 동네 책방 모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오프라인 모임과 온라인 모임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이에요. 특히 저는 저만의 온전한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그런 답답함과 갈증이 쌓일 때면 책방에 옵니다. 올해 초, 선영씨 책방을 발견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심사숙고해서 책을 한 권 구매할 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때,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충전이 됩니다. 특히 저는 작가이자, 주부이기 때문에 이런 공간이 좀 더 특별해요. 고마운 공간이고, 자주 찾게 되는 공간입니다.”_이윤정

“이곳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요. 지난달에는 임세원 작가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으로 낭독 모임을 했어요. 모임에 참여하면서 참가자들 한 명 한 명 삶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생의 간접 경험을 한 셈이에요. 또 다른 책 한 권을 읽는 기분이랄까요.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생기는 것 같아요.”_정수경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