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투머로우

상단여백
HOME People 피플 포토뉴스
가을의 시작을 은빛 억새밭에서 만나다
최지나 기자 | 승인 2022.10.20 16:54

성큼 다가온 가을이다. 추석이 지나자마자 코끝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차갑고, 하늘은 파랗고 높다. 이 계절이 오면 이상하게 산을 오르고 싶다. 평상시엔 산을 즐겨 찾지 않음에도 말이다. 예전엔 울긋불긋 단풍이 가을산의 대명사라고 여겼는데, 등산이 취미인 친구에게 물으니 지금은 은빛으로 물든 억새밭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억새군락지로 유명한 명성산을 직접 올라보기로 했다. 그 길에 20년 넘도록 등산을 해온 최재범 씨가 동행했다. 등산크루 ‘귤’의 모임장인 그와 등산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며 산행을 시작했다.

명성산
높이 922.6m인 명성산은 울음산이라고도 불린다.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여 철원을 도읍으로 정한 후 문란한 정치를 일삼다 왕건에게 쫓겨 이 산에 숨어 지냈다. 왕건과 최후 격전을 벌이다 패한 뒤 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하여 울음산이라 불렸고, 지금의 ‘명성鳴聲산’은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명성산은 서울에서 차로 2시간 이내에 있는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억새만 생각하고 오르기엔 조금 험한다. 산 전체가 대부분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길이 대체로 돌길이다. 다만 경사가 완만하니, 너무 겁먹진 않아도 된다. 기자는 산정호수 상동주차장(경기도 포천시)에 차를 주차하고, 비선폭포, 등룡폭포를 지나 팔각정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6km 3시간 이내) 억새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9월 20일 이후에서 10월 20일 경이다.

언제부터 등산을 하셨나요?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약수터에 물을 뜨러 다닌 게 첫 등산이었던 거 같아요. 아직 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죠. 그리고 등산화를 신고 본격적으로 산을 타러 다닌 건 20대 중반쯤이었어요. 학교 동문 모임에서 처음 산을 접하면서, 서울에 있는 북한산과 관악산을 자주 오르내렸어요. 그러다가 지리산을 한 번 갔는데, 그때 보았던 경치에 넋이 나간 것 같아요. 지리산이 쉬운 산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리산을 한번 더 오르기 위해 다른 산들을 다녔던 게, 지금의 기초가 되었어요.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긴 하죠.

그죠. 처음엔 그 경치 한 번 더 보려고 산을 올랐는데, 자주 오르다 보니 좋은 추억들이 많이 생겼어요. 기자님처럼 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오르기도 하고, 평상시엔 자주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더 힘든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요. 어찌 됐든 무사히 완주하고,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다 보니 그게 제 삶의 낙이 되었어요. 오늘처럼 사진을 찍으면서 웃는 모습을 보면 기억에 더 오래 남고요.

등산을 자주 하시는데,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

굉장히 건전한 운동이란 점이 가장 좋아요. 자연 안에 저를 놓아두는 거잖아요. 한번은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이겨내기도 하고요. 조금씩 타협하며 허락받는 기분도 들고요. 그 느낌이 좋아요. 한국의 산은 관리가 잘 되는 편이지만, 위험하기도 해요. 자주 찾던 산에서도 길을 헤매기도 하고요. 때때론 컨디션이 안좋아서 등산을 계속 하기에 무리가 될 때도 있어요. 그럴 때 ‘다음에 다시 오자.’ 하면서 돌아오는데,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 오늘이 아니라도 괜찮더라고요. 산을 찾기 위해 운동도 계속하다 보니 제 스스로도 튼튼해지는 것을 느껴요.

명성산의 초입에는 계곡이 있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그 주변에는 붉게 물들기를 기다리는 초록의 단풍나무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하며 산을 오르니, 금세 비선폭포를 지나 등룡폭포에 다다랐다. 등룡폭포 맞은 편에 보이는 책바위의 장엄함에 한바탕 입이 떡 벌어졌다. 대단한 경치에 놀라 잠깐 구경한 뒤 계속 산행을 이어나갔다.

많은 분들이 인생을 산에 비유할 때가 많잖아요. 산을 오르며 인생을 닮았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많이 느끼죠. 삶 자체가 산의 굴곡을 타는 것 같아요. 쉽지만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파르기만 하지도 않죠. 열심히 올라갔다가도 내려와야 하고, 중간에 쉬어가기도 하고, 함께 가는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요. 때론 비나 눈을 맞기도 하죠. 인생이 다양하듯 산행길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렇네요. 쉽지만도 않지만,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고요. 보통 산은 혼자 다니시나요?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다니시나요?

아무래도 같이 가는 비중이 높아요. 코로나가 시작된 해부터는 혼자 다니기도 했지만, 여전히 함께 다니는 게 좋더라고요. 혼자 가면 뭐랄까, 수행하는 느낌이 들어요.(하하) 제가 산을 많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산행 속도가 빠른 편인데, 함께 속도를 맞춰 거닐면 좀 더 많은 풍경을 보기도 하고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니 재밌어요. 그리고 여럿이서 찍은 사진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요. 혼자 가면 사진을 남기기도 힘든데, 같이 가면 사진도 예쁘게 남길 수 있잖아요.

맞네요. 사진 남기는 것도 중요하고요. 저는 오랜만에 등산을 하려니 신발이나 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2-3시간 이내의 산행이나, 흙이나 데크가 많은 곳은 등산화가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등산화를 신는 걸 권장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4시간 이상 산행을 할 경우에는 꼭 등산화를 신는 게 좋아요. 등산으로 발이 피로해져서 접질릴 위험이 많거든요. 발목을 감싸주는 등산화를 추천드려요.

등산화 외에도 땀흡수를 잘 하는 기능성 속옷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능성 티셔츠, 신발, 자켓은 많이 알고 입는데, 아무래도 가장 먼저 땀을 흡수하는 속옷도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산 브랜드 말고, 탑텐같은 스파 브랜드에서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무래도 가을 산은 오를 때는 덥지만, 땀이 식으면 금세 체온이 떨어지니 바람막이를 꼭 챙겨주세요.

산 중턱쯤에 도착하면 등룡폭포(오른쪽 아래 사진)가 나오고, 그 뒤로는 장엄한 책바위가 있다.(왼쪽), 정상 부근에 위치한 억새 바람길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 (오른쪽 위 사진)
명성산 억새밭에서는 어느 곳에서 찍어도 사진이 멋지게 나온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등산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더 알려주고 싶은 내용이 있으실까요?

저는 다음Daum 커뮤니티의 ‘매일 산악회’에서 산행 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예전에 비해서 2030분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어요. 다양한 연령대가 산을 즐기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쁜데요. 반면에 젊고 건강해서 그런지 자신의 체력보다 무리해서 산행을 감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단 시간에 많은 산을 오르다보면 무릎이 다치거나, 발목이 다칠 수 있어요. 평상시 낮은 산을 다니며 조금씩 산에 익숙해지고 체력도 기르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오랫동안 산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명성산 억새밭에 도착했다. 바람을 따라 은빛 물결을 이루며 출렁이는 억새밭의 풍경이 너무 멋져 다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바빴다. 다만 평일에 진행되는 군사훈련으로 명성산 정상까지 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정상 아래에 위치한 팔각정을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팔각정에서 명성산을 내려다본 뒤, 다시 억새밭으로 돌아와 챙겨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김밥, 김치전,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다 보니, 흘린 땀도 다 식었다. 뒷정리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다음엔 가족, 친구와 다시 와야겠다는 대화를 나눴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을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함께 산행을 했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지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