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사회면 뉴스를 훑다가 훈훈한 기사를 보았다. 한 연예인이 길을 가다가 사고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즉시 달려가 군대에서 배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연예인은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 장면을 보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사를 본 사람들이 그의 답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시간이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골든타임Golden Time’은 치명적 손상을 입은 후, 1시간 안에 결정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학용어 ‘골든아워Golden Hour’에서 나온 말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결코 이전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이 된다. 

조기교육 열풍은 사그러들지 않아서, 부모들은 고가의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교육의 ‘결정적 시기’ 면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교육의 골든타임이 절실히 필요한 영역은 인성 부문이다.
조기교육 열풍은 사그러들지 않아서, 부모들은 고가의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교육의 ‘결정적 시기’ 면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교육의 골든타임이 절실히 필요한 영역은 인성 부문이다.

생명처럼, 교육도 일정 시기 안에 배워야 

교육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용어가 있다. 인간에게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특정 시기가 있어서 이때에 적절한 언어학습을 받지 못하면, 그 후에는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하기 어렵다. 1967년 미국의 언어심리학자 렌네버그 교수가 <언어의 생물학적 기초>라는 책에서 이 개념을 처음 언급했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사례들도 있다.

우리에게 ‘늑대소년’으로 잘 알려진 빅토르Victor는 1800년 경 프랑스 남부 숲에서 발견되었다. 그때 소년의 나이는 12세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유능한 교사를 만나 언어를 몇 년간 배웠다. 하지만 40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겨우 두서너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한편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다락방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채 살다가 1937년에 발견된 7살의 이자벨Isabelle은 그때부터 교육을 받은 결과, 정상인 수준의 언어 구사가 가능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온 14세 소녀 지니Genie가 있다. 그는 1970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발견된 뒤 언어를 배웠으나 이미 선천적인 언어습득력이 두뇌에서 사라진 후였기에 7년간 교육을 받았어도 나와 너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언어를 배우는 데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렌네버그 교수의 이론을 결정적으로 확증해주는 사례가 되었다. 

특별한 사례들을 접어두고라도,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자주 펼쳐진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 가족의 경우, 사춘기 전의 자녀들은 새로운 언어를 쉽게 배우지만 부모 세대들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도 효과를 얻지 못해서 여전히 외국어의 이방인으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제력을 배우지 못해 지식으로 가득한 ‘괴물’이 된다면?  

언어심리학 전문가들은 학습의 결정적 시기를 좁게는 6~10세 경, 넓게는 사춘기 이전까지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뇌에서 사고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특정 부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때와 일치한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스폰지처럼 그대로 흡수하고 무엇이든지 빨리 배우며, 그 효력도 오래간다. 그래서 부모들은 외국어뿐 아니라 악기나 운동, 학과 공부 등의 조기교육에 무리할 만큼 쏟아붓는다.  

하지만 수십년 간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나는 교육의 골든타임이 언어, 수학, 예체능 영역이 아닌 인성 영역에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성 부문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은 ‘자제력’이다. 왜냐하면, 조기교육을 받아서 우수한 재능을 갖췄다고 해도 사춘기를 지나며 수많은 마음의 욕구와 유혹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문제 학생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대단한 걸 요구하지 않고, 부모들도 아이의 그런 소소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기뻐서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아이가 성장하면 욕구가 점차 다양해지고 수위도 높아져 언젠가는 부모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들은 처음엔 완강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아직 어려서 그래. 아이가 크면 달라질 거야.’라고 하면서 ‘결정적 시기’를 그냥 넘겨 버린다. 이렇게 자제력을 제때 배우지 못하고 사춘기를 맞은 자녀는, 기하급수적으로 밀려오는 주변의 유혹과 내면의 욕구들을 처리할 길이 없어 결국 원치 않는 즉흥적 행동을 하게 된다. 

힘들게 갈고닦은 재능을 활용도 못하고 엉뚱한 곳에 빠져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나는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다. 자제력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면 지식으로 가득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탁월한 능력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도 자제력이 모자라서 순식간에 파경을 맞을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자제력이 부족하면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물의를 일으키고 위기 상황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자제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첫 추수감사절 광경. 제니 어거스타 브라운스컴의 1914년 작품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첫 추수감사절 광경. 제니 어거스타 브라운스컴의 1914년 작품이다.

청교도 육아법과 정반대에 선 열린교육       

삶 속에서 자제력을 잘 실천했던 대표적인 경우가 18세기 말 영국의 청교도인들이다. 그들은 종교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욕구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았다.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짓고, 마지막에 자기가 살 집을 지었다. 자녀 양육도 엄격해서,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자제할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에만 젖을 먹였다. 그 덕분에 미국은 단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교도 육아법에 반기를 드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다. 1946년, 벤자민 스파크 박사는 <Baby and Child Care>라는 책에서 아이가 울면 젖을 물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욕구를 제어하면 아이들이 더 거칠어지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다양한 욕구를 잘 살펴서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책은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수많은 부모들이 그의 새로운 육아법을 따랐다. 그 결과 육아에서 자제력은  퇴색되었고, 그로부터 20년 후  미국 사회는 마약중독, 범죄, 병역기피 등 각종 청소년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스파크 박사의 육아법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를 ‘방종의 아버지’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과격한 표현 같지만, 자제력을 잘 배우지 못하면 소통과 교류에 어려움이 생기고, 배려하는 마음도 부족해 갈등과 문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자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책에 쓴 스파크 박사의 주장은 부모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년 뒤 나타난 결과는 참혹했다.
자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책에 쓴 스파크 박사의 주장은 부모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년 뒤 나타난 결과는 참혹했다.

내가 대학에서 교사의 꿈을 준비하고 있을 때도 벤자민 스파크 박사의 교육사상을 계승한 ‘열린교육Open Education’이 대세였다. ‘아동의 내면에 있는 흥미와 욕구를 억제하지 말고, 계발하고 존중해서 밖으로 실현되도록 이끌어 주라.’ ‘야단치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라.’ ‘아동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위급한 일이 아니면 지시나 통제는 최대한 지양하라.’ 이런 원칙들이 당시의 젊은 나에겐 매우 매력적이고 신선해 보였다. 나는 열린교육 사상에 푹 빠져들었고, 첫 부임한 학교에서 그 이론을 접목한 교수 방법으로 연구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린교육은 한계를 지닌 실패한 교육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 채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내면에 쌓였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주변을 살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내심이 별로 강하지 않다.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조근조근 설명해주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치에 맞지 않고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지만, 막무가내로 받아들이라고 종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해가 안된다고 싸우거나 손놓고 있다면 우리는 원하는 삶을 이뤄갈 수 없다. 아이들은 아직 냉정한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도, 앞서 인생을 살아온 부모들은 분명히 경험했고 사회의 속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욕구를 들어주기만 할 게 아니라 자제력을 훈련시켜서 마음의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열린교육을 신봉했던 내가 뒤늦게 자제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둘째 아이의 약점 덕분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보이는 둘째 아이로 인해서 교육 관련 책들을 찾아보고 심리를 연구하던 중, 치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책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 세 아이들이 ‘결정적 시기’를 지나기 전에 자제력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나와 가족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 책은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박옥수 목사의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였고, 그 중에서 아래 문단은 내게 중요한 깨우침을 주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관이라도, 대통령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높은 지위에 있다가 한순간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사람을 신문에서 자주 봅니다. 어려서부터 절제하는 훈련이 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이건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자제해야지.’하고 마음에서 선을 정확히 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데 조건은 안될 때, 그 사람은 절제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하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범죄자가 되곤 합니다.’

물질 세계보다 마음 세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이다. 그 덕분에 세 자녀에게 ‘결정적 시기’에 자제력을 잘 가르칠 수 있었다.
물질 세계보다 마음 세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이다. 그 덕분에 세 자녀에게 ‘결정적 시기’에 자제력을 잘 가르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자제력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자제력을 배우지 않으면 성장해서 부모와 부딪쳤을 때 곧바로 등을 돌리고 나간다. 집을 떠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아이에게 부모의 말은 더 이상 소용 가치가 없어진다.  
이후에 나의 교육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처럼,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면서도 감사하다. 처음에는 특수 상황인 둘째 아이의 고집을 꺾어주기 위해 자제력을 사용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까 위 아래의 첫째, 셋째가 더 큰 혜택을 본 것 같다. 둘째와의 마음의 싸움을 지켜보고 또 직접 당하면서, 왜 엄마가 하기 싫은 걸 시키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지 그 아이들도 체득이 된 것이다. 그래선지 세 아이 모두 자제력이 강한 편이다. 

뉴스에서 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원인은 기성 세대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도 크다.
뉴스에서 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원인은 기성 세대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도 크다.

몇 년 전, 중고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모 브랜드의 패딩 점퍼가 있었다. 어느 날, 이모가 우리 첫째 아이에게 그 점퍼를 사주겠다며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 “이모, 나는 그 옷 안입어도 행복해요. 그게 있어야 행복할 것 같으면 사달라고 했을 거예요. 지금 입은 점퍼로도 행복하니까 사주지 않으셔도 돼요.” 라고 해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자랑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어렸을 때 자제력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설명하고 다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열린교육 시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부담스런 일을 시키면 ‘학대’라고 하고, 야단을 치면 ‘언어폭력’으로 단정지어, 아이들을 이끌고 지도할 방법이 모두 막혀 있다. 그래서 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진심은 통하는 것이기에, 나는 자제력의 필요성과 결정적 시기에 대해 자주, 꿋꿋하게 어디서든 피력한다. 아이에게 적금 통장이나 주식을 주는 것보다 자제력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에 부모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제력을 배워서 좀 더 행복하게 살도록, 건강한 사회가 구현될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들이 함께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을 전공한 올해 26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2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춘천교도소의 초청을 받아 2015년부터 매달 재소자들에게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과 상담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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