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람을 보시는 눈이 그리 없습니까?

전해져 내려오는 옛 이야기입니다. 나라에서 존경받는 어느 정승이 자식이 없어 늘 적적하게 지내다가 뒤늦게 부인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 소식이 궁궐에도 알려져 임금님이 정승 부인을 위해 특별히 보약까지 하사해 주었습니다. 정승 부인은 늙은 나이에 어렵게 아들을 낳았고, 정승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뭔가 모자란 듯했습니다. 밖에 나가면 늘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들어왔습니다. 열일곱 살이 되어 장가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철없이 굴었습니다. 정승이 깊이 생각하다가, 하루는 유명한 건달을 불렀습니다. 나쁜 짓을 일삼던 건달은 정승이 부르자 떨면서 정승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정승이 잘 차린 밥상을 내오게 하더니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건달이 너무 황공해서 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먹게.”

“소인이 황공해서….”

“내가 특별히 부탁이 있어서 자네를 불렀네.”

“대감마님! 저 같은 놈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만 부탁을 내리시면 생명을 걸고라도 하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하나 있는 내 아들이 나이가 저리 들도록 나라 구경을 못했네. 더 늦기 전에 아들에게 나라 곳곳을 구경시켜주고 싶네. 여비를 줄 테니 자네가 내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전국을 두루 구경시켜주고 오면 좋겠네.”

건달에게는 정말 고마운 이야기였습니다.

“예, 분부대로 행하겠나이다!”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일러스트 안경훈 기자

정승이 아들을 말에 태운 뒤 건달에게 고삐를 잡게 하고 여행을 보냈습니다. 건달이 말 고삐를 잡고 걸어가다 보니 다리가 아파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련님은 다리가 튼튼해 보이네요.”

“어, 내 다리 튼튼해.”

“저는 다리가 약해서….”

“그래? 그럼 내가 말고삐를 잡을 테니 네가 탈래?”

“아이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괜찮아. 나는 다리가 튼튼해.”

건달이 말을 타고 정승 아들은 말고삐를 잡고 걸었습니다. 건달이 칭찬해 주니까 처음에는 좋아서 말고삐를 잡고 걸었지만, 십 리 이십 리 걷다 보니 정승 아들도 다리가 아파서 말을 타고 싶었습니다.

“이제 내가 말을 탈게.”

“아이고, 도련님은 워낙 건강하고 튼튼해서 백 리를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으실 걸요.”

말을 타고 싶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금방 기분이 붕 떴습니다.

“어, 나 다리 안 아파.”

정승 아들이 건달에게 자꾸 당했습니다. 그래도 건달이 부추겨 주니까 좋기는 하지만 다리가 아프니까 슬슬 화가 났습니다.

“야! 나 다리 튼튼하지만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파. 이제 내가 타야겠어!”

“아이고, 도련님은 건강하잖아요.”

“어, 건강해. 그래도 이제는 내가 타야겠어!”

“도련님, 저는 몸이 약해서 걸으면….”

“그래도 안 돼! 내가 타야 해!”

정승 아들이 다리가 너무 아프니까 건달하고 싸웠습니다. 건달을 조금씩 잡아 나갔습니다.

“너, 자꾸 머리 굴려서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하지?”

나라를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올 때쯤 되자 정승 아들이 많이 야물어졌습니다.

“너, 날 바보 취급했지? 이제 곧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한테 네가 한 행동들을 이야기하면 너 어떻게 되는지 알아?”

이제는 건달이 쩔쩔맸습니다.

“아이고,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드디어 여행을 마치고 정승 아들과 건달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재미는 있었느냐?”

“예, 아버지.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아버지는 사람을 보시는 눈이 그리 없습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저런 인간을 딸려서 보냈습니까? 그런 아버지와 일하시는 임금님이 불쌍합니다.”

아들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습니다. 어리숙한 바보였는데 많이 야물어져서 돌아온 것입니다.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승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 아들이 지혜가 있었는데 내가 너무 감싸 키워서 그것들을 사용할 줄 몰랐구나.’ 정승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 후로 정승 아들은 나날이 총명해져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건달처럼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일들을 겪을 때

살다 보면, 정승 아들과 동행한 건달처럼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일들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얼른 벗어나고 싶은 괴롭고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정승 아들이 건달과 싸우면서 변해간 것처럼 어려움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바탕이 됩니다. 전에 없던 눈이 뜨이면 우리 삶이 밝고 행복해집니다.

사람은 대부분 정승 아들처럼 모자란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승 아들이 그냥 사는 것처럼 그 사실을 모른 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나거나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모자랍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마음에 맞는 말만 골라서 듣고, 거만하게 행동해서 주변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끊으려고 각오해도 안 되고, 옆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자란 정승 아들처럼 힘이 모자라서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이나 컴퓨터 게임에 끌려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우울한 생각이나 불안한 생각이나 어두운 생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냥 그 상태로 삽니다. 늘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고, 변덕이 심한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닫고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자라기 때문에 부담스런 일을 싫어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정승 아들과 동행한 건달처럼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얼른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괴로움을 겪어야만 하고, 그것은 우리 안에서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냅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 겸손하고 진지하고 성실해집니다. 그렇게 마음이 낮아지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람 있게 살게 됩니다.

사람이 정승 아들처럼 어리석게 살다가 지혜로워지면, 자신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물론 어려움을 겪어도 피하려고만 하면 새로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내 인생에서도 희망이 다 사라진 뒤에

저는 열아홉 살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기술하사관에 지원했습니다. 하사관이 되면 야간에 공부할 수 있어서 받은 월급으로 야간 대학에 다니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앞니가 조금 깨졌다고 불합격했습니다.

희망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되는데 나는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것도 힘들지만 미래에 대한 소망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성경을 읽으면서 내 생각과 다른 성경 말씀이 마음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사실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내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머리가 허옇게 되었습니다. 새벽 4시경에 교회에 와서 밤 10시경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교회에 있는 제 집무실에서 어려움이 있어서 찾아오는 성도들과 상담도 하고, 처음 온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저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는 한번씩 지난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속 좁고 못나고 악하고 형편없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행복하게 살았고,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찹니다. 2층 사무실에서 창밖을 보면 나무들이 하나 둘 물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려울 때 우리 삶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마음에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개발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메커니즘을 찾아내, 이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신기한 마음여행>, <마인드교육 원론> 등 자기계발 및 마인드교육 서적 16권, 신앙서적 64권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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