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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고은비 기자 | 승인 2022.09.26 22:46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에는 유독 ‘모험’이나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많았다. 가령, 토끼가 곰 친구를 찾아 멀리 떠나는 이야기는 세계 만국 어린이들 모두에게 통하는 스토리였다.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훌쩍 떠나는 모험기. 현실에서 실현이 어렵긴 하지만, 동화책에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올해 여름, 치솟은 항공료와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뚫고 한국으로 모험을 떠나온 이들이 있었다. ‘한국 문화’를 연결고리로 온라인에서 사귄 한국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가다, 바라켓, 찬드니, 빠룰, 모린’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보낸 여름은 어땠을까?

드디어 그들을 만나던 날 “만나서 반가워요! 오는 길에 덥지 않았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자, 다들 기자의 한국말을 이해했는지 누군가는 미소 짓고, 누군가는 “괜찮았어요.”라고 한국말로 답을 했다. 이집트에서 온 가다는 자신이 여기에서 막내라고 소개했다. 바라켓은 나이지리아 대학생, 찬드니와 모리는 케냐에서 온 대학생이었다. 인도에서 온 빠룰은 대학 졸업 후, 먼 유학길을 앞두고 있었다. 유창한 한국말 실력에 놀랐다고 하니, 코로나 시기에 한국 대학생 민간외교단체 ‘코리아 커넥트’에서 진행했던 온라인 한국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몇 개월간 한국어를 익혀왔다며 웃어 보였다.

9월호 표지 인물은 올여름 한국을 찾은 외국인 5인방이다. 왼쪽부터 가다,버라켓,찬드니,빠룰,모린. 국적도 나이도 언어도 모두 다르지만, ‘코리아 커넥트 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인연으로 한국에 지내며 소중한 친구가, 가족이 되었다. 사진 배효지 기자

한국 문화,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모린: 우선 K-드라마, K- 팝 등으로 접근하기가 쉬워요. 저도 처음엔 친구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같이 보기 시작했는데, 한국어가 흥미로웠어요. 제가 쓰는 언어인 영어랑 어순이나 문법이 전혀 달라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더 잘하고 싶고, 관심이 생기더군요.(웃음) 특히, 코로나 시기에 학교도 가지 못했을 때 코리아 커넥트 캠프에 참여하면서, 온라인으로 한국어 공부를 했는데요.

찬드니: 저는 2016년도에 ‘아리랑’을 처음 들었어요. 지금껏 제가 들었던 노래와는 다른, 낯선 노래였는데 그 속에 깊은 메시지가 느껴졌어요. 한국에서는 그걸 ‘한’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부터 한국 문화가 좋아서 한국어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케냐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아카데미를 찾아다녔죠. 온라인으로 진행된 코리아 커넥트 캠프도 놓칠 수 없었어요!

코리아 커넥트 캠프란? 대학생 민간외교단체 ‘코리아 커넥트’의 대표 활동 프로그램. 2020년 11월에 시작되어 2022년 상반기까지 총 세 번의 시즌으로 나뉘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K-팝, 댄스 등 통통 튀는 미디어 공연과 한국 문화 온라인 체험 활동, 한국어 수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창기 참가자 10명으로 시작된 코리아 커넥트 캠프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SNS을 통해 입소문을 탔고 추후 81개국 9,000여 명이 참가하는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다. 1. 서울시 양천구의회를 둘러보고, 구청장님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다름’에 매력을 느낀 거네요. 실제로 한국에 오니 어떤가요?

찬드니: 다른 문화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너무 달라 힘든 것도 있었어요.(하하) 저 같은 경우는 음식이 그랬어요. 저는 육류를 먹지 못하는데 한식에는 많든 적든 ‘고기’가 등장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늘 ‘여기에 뭐 들어 있어요?’ ‘이거 무슨 음식이에요?’ 하고 물어봐요. 그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오히려 옆에서 먼저 제 음식을 챙겨주고, 배려해주려는 분들에게 고마웠습니다.

버라켓: 여기서 정말 많은 걸 경험하고 있어요. 복잡한 도심도 가보았지만, 한적한 농지나 소나무 공원에도 가보았어요. 산에도 올라봤고요. 전통 시장에도 가보고, 전쟁 기념관에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어요. 이곳에 와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국’을 제대로 알았고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하루하루 꼭 꿈을 꾸는 기분입니다.

가다: 제게는 무엇보다 온라인으로 5주간 만났던 선생님과 친구들을 한국에서 직접 만난 게 가장 큰 기쁨이었어요. 저는 성격이 무척 소심해서 표현이 서툴러요. 그런데 코리아 커넥트 캠프에 참석하면서, 같은 팀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틀리든 맞든 한국어로 제 이야기를 조금씩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했어요. 한국에 와서 고마운 분들을 실제로 보니 더 친근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빠룰: 맞아요. 저는 이렇게 혼자 다른 나라로 떠나온 게 처음이라 떨렸는데요. 한국에 도착한 첫날 그 걱정이 바로 사라져버렸어요. 공항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저희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더라고요. 그때 저희를 바라보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여행을 떠나온 저보다, 저를 발견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표정이 더 행복해 보였거든요. 이런 사람들을 만났다는 게 신기했고, 따듯했어요. 다음날도 저희 전체를 위한 깜짝 환영 파티를 준비해주었어요.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2. 프로그램 포스터. 행사 기획부터, 촬영, 홍보 등 모든 과정을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진행했다.

이렇게 다섯 사람이 한국에서 처음 만났나요?

모린: 저랑 찬드니는 케냐에서부터 알던 사이였고, ‘버라켓’,‘가다’,‘빠룰’은 한국에서 처음 만났어요. 프로그램 참석자 중에 저희 다섯을 포함해 총 열두 명이 한국에 왔어요. 벌써 2주 정도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요. 서로 다른 국적, 언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토록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나중에 헤어질 때 무척 섭섭할 것 같아요.

바라켓: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말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종종 그런 생각도 들었죠. ‘이 시간,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때론 부족함도 품어주며, 한국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그걸 나누며 지내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3.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 친구들을 따라 해본다. 사진 촬영할 땐 브이 포즈를 만들고, 어른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하며 고개 숙여 인사도 해본다. 사진 제공 코리아 커넥트

그들의 여행 기간은 약 한 달 정도. 각자 입국, 출국하는 일정은 조금씩 다르다. 지난 7월에는 세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최된 캠프에 다 같이 참석했고, 그리고 나서는 서울 근교 여행을 했다. 다음 주는 지방 투어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을 초대한 한국 선생님들, 친구들은 한국 구석구석 가장 좋은 장소를, 다양한 문화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여행의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데요. 여러분에게 이번 여행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나요?

가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여행으로 한국에 왔어요. 올 때,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한국에서 환경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내면적으로도 깊은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미래를 계획할 때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갖춰지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에 갇히곤 하는데 이곳에서 많은 선생님, 어른들, 사람들을 만나며 ‘삶은 그게 다가 아니구나. 내 삶에 진짜 행복을 주는 게 뭐지?’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어요. 오늘처럼 아무것도 없지만, 서로가 따듯한 마음을 나누고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이잖아요. 제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이곳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이 큰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찬드니: 저는 최근에 고민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아프셨고, 함께 한국에 오기로 약속했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제 전공이 심리학이었는데, 회의감이 크게 들었어요. ‘내 마음도 어려운데, 이 일을 어떻게 할까?’ 공부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죠. 그때 저를 잘 아는 선생님께서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한국에 다녀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온 한국에서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만났고, 이 시대의 청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리더의 강연을 들을 기회도 얻었어요.

안산 대부도의 한 포도밭에서 농사 체험 활동을 했다. 땀을 흘려도, 즐거운 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제공 코리아 커넥트

하루는 ‘나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하여 생각했고 어떤 날은 누구나 부정적인 생각에 홀로 고립될 수 있지만, 서로 들어주고 끌어주고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어느새 제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이젠, 학교를 잘 졸업하고 의사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과 같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웃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느꼈네요. 이 순간이 두고두고 그리워지겠어요.

모린: 맞아요. 이곳에서 보고 느꼈던 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제겐 크게 다가왔어요. 한국 친구들이 한국어를 한 단어 한 단어 차근히 알려줬던 모습,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주셨던 고마운 이모들… 다 그리울 것 같아요. 특히, 캠프에서 들었던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친구여’라는 가곡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케냐에서 찬드니와 한국에 함께 오려 했던 그 친구 생각이 많이 나서 울었거든요. 이제는 제 마음을 슬픔 속에 가두지 않으려고요. 그 친구를 편안하게 보내주려 합니다.

빠룰: 여행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저도 여행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기도 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그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기에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 와서 낯선 문화에 당황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서로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어요. 또, 한국 친구들에게 푸근한 정을 느꼈고요. 이곳에서 얻은 따듯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제 마음이 한결 더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삶을 대하는 제 마음은 예전과 달라져 있을 거예요.

바라켓: 저는 저부터 챙기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번 여행은 저희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저희가 함께 모여 웃는 시간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종종 이렇게 한국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는 시간이 아쉬워, 어디서든 이야기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 남기기에 열중이었다. 사진 배효지 기자

처음에는 일종의 모험을 떠나온 이들의 비범함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그들의 여행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또 다른 인물들이 궁금해졌다. 이들 외국인 다섯 명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는 사람들,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보여주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누군가는 여행의 8할은 ‘날씨’라고 말하고, ‘숙소’라고도 하며, ‘음식’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행지에서 함께하는 ‘사람’을 넘을 순 없을 것 같다.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낯선 환경도 색다른 음식과 문화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한국’을 생각할 때마다,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바라던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곤 ‘한국이 참 따듯한 곳이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그런 기분 좋은 상상으로, 인터뷰의 끝을 맺었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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