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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에세이 '우리의 추석나기'
고은비 기자 | 승인 2022.09.07 19:22

사람마다 마음에 그리는 ‘추석’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만날 날을 생각하며 설레고, 누군가는 보고 싶은 이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추억에 잠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는 추석은 어떤 모습인가요?

부자가 된 기분이에요! 

8살, 정지운

추석이 되면, 고흥에 사시는 할머니 집에 간다. 사촌 동생 지은이, 민우 형도 만날 수 있고, 삼촌, 이모 등 모든 가족이 모인다. 그러면 꼭 부자가 된 것 같아 신이 난다.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게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재미있게 놀다 보면 밤이 된다. 저녁에는 하늘에 정말 큰 달이 뜬다. 이전에 친구들에게 달을 보고 조용히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는 엄마에게 소원을 말해서 그런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엄마 몰래 조용히 달에게 소원을 빌 거다.

보고싶다, 친구야! 

26살, 대학생 이민한

중학생 시절, 나는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사촌, 친척들이 모여 신나게 노는 것도 즐거웠지만, 연휴 마지막 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유독 마음이 두근거렸다. 차 안에서 친척 어른들이 한푼 두푼 주신 명절 용돈이 가방에 잘 있는지 여러 차례 확인하며 나는 즐거운 상상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놀이터로 향했다. 우리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축구를 하며 뛰어놀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사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없는데, 그날만큼은 새가 된 듯 무척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친구들과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처럼 타지로 대학에 가거나, 유학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 친구들을 꼭 만나고 싶다. 어떻게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응원해주고, 위로를 주고받고 싶다.

올해도 만날 수 있을까? 

35살, 직장인 문민정 

우리 가족은 추석이 되면 큰아버지 댁에 모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냈다. 고모, 큰어머니, 이모와 안부를 주고받고, 사촌 언니와 실컷 수다를 떨며 놀았다. 어릴 적엔 그 일과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만 해도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다 같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혼한 후부터는 멀리 떨어진 고향에 내려가도 친척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추석에 운 좋게 친척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식구들의 얼굴이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나는 철없던 아이로 돌아가 장난치며 웃고 또 웃었다. 소중한 건 잃어봐야 그 가치를 안다더니 그게 나인가보다. 올해도 다시 함께 만날 수 있을까?

추석에 유독 그리운 사람 

55살, 한향심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추석이 되면 시장에서 양말을 사 오셨다. 우리 사남매를 부르시곤 “여기, 이거 신어봐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셨다. 새 옷은 못 사줘도 새 양말은 사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 신나서 그 양말을 신고 또 신었다. 결국, 명절이 끝날 즈음이 되면 새 양말은 어느새 헌 양말이 되어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무척 성실하신 분이었다. 추석에도 좀처럼 쉬질 않으셨다. 아침에 어머니 아버지 손 잡고 할머니 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곧바로 논에 나가 일하시곤 했다. 운이 안 좋은 날에는 우리 남매도 덩달아 나가 일해야 했다. 툴툴거리면서 말이다.

내가 도시로 나가 살던 스무 살에는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가, 동생들이 그리워 명절이 되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대여섯 시간을 서서 가야 하는 날도 있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러면 아버지는 도시살이 고단했을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나이 차이가 제법 났던 막냇동생은 반갑다고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도시로 오셔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추석이 와도 시골로 내려가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그 시절이, 아버지가 유독 그리워진다.

지금, 송편이 생각나는 이유 

30살, 최해린

추석이 되면 이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추억 한 편 있다. 우리 할머니집은 넓은 툇마루가 있는 기와집이었는데, 명절이 되면 길다란 툇마루에서 전을 부치기도 하고, 올망졸망 앉아 송편을 빚기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그곳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었다.

특히 추석 당일이 되면 아침부터 분주했다. 어머니는 “오늘 송편을 빚을 테니, 애들은 저기 소나무에 가서 솔잎을 좀 따와야 해. 알았지?”라고 말씀하셨다. 명절이라고 할머니 집에 모인 아이들은 나를 포함해 7명 쯤 됐다. 우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 동네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동산을 향해 뛰어갔다.

그곳에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푹신한 잔디가 넓게 있을 뿐더러 산딸기도 제법 있었다. 솔잎을 따 오라는 말에 동산으로 갔지만, 한참을 거기서 솔방울을 던지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잔디밭에 데구르르 구르며 놀기도 하고, 산딸기를 따먹으며 “맛있다!”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집에서 솔잎이 오기만을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우리가 있는 동산을 향해 크게 외치셨다. “애들아, 솔잎 다 땄으면 가지고 와~~”

그 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우리는 급하게 솔잎을 따고, 집어던지며 놀던 솔방울을 호주머니에 두둑히 넣어서 집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놀다 들어온 우리는 손을 씻고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준비해놓은 떡반죽에 소를 넣어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누가 누가 더 잘 빚나 대결을 하기도 했지만, 우린 누가 더 특별하게 송편을 빚는지 대결을 했던 기억이 난다. 별모양, 사각형, 동그라미 모양으로 빚어낸 송편을, 어머니는 솔잎이 깔린 찜통에 넣어 먹기 좋게 익혀 주셨다.

우린 또 툇마루에 둘러앉아 접시에 놓인 송편을 보며 누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거 내가 만든거야!” 하면서 냉큼 집어들었다. 솔향이 가득 밴 송편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이윽고 배가 부른 우리는 그대로 툇마루에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아직은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말이다. 

어린 시절 7명의 꼬마들은 이제 다 어른이 되어, 시간 맞춰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렵다.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서 만나자.”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다. 어쩌다 운이 좋아 같이 명절을 보낼 때면 어김없이 어린시절 추억을 나누곤 한다. “우리 저 동산에서 엄청 뛰어다녔는데, 지금보니까 크지도 않다, 그치?” 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솔잎 따다 무릎이 깨져 울었던 이야기, 솔방울에 맞아 싸움이 났던 이야기, 누가누가 집에 더 빨리 도착하나 내기하던 때를 떠올리며 한참을 웃곤 한다.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겐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고 즐겁다. 지금은 그때처럼 뛰어놀 순 없지만, 이런 추억이 있기에 고향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추석이 젤로 크지요”

84살, 이점순

명절이 돌아올 즈음이 되면, 사랑하는 아들과 손주들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가까운 데 살면 자주 볼 터인데 집이 멀어서 일 년에 두어 번밖에 못 보니 얼마나 그립고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추석 전인 5월에 내 생일이 있는데 아들, 며느리는 그때마다 잊지 않고 집에 찾아온다. 물론, 추석에도 오고 말이다. 아들이, 며느리가 정말 고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이 내게 안부 전화를 걸어온다.

“운동하냐?”

“예, 운동합니다”

“야야, 밥 많이 먹어라.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예, 밥 잘 먹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는 소리가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이었다.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하며 학교를 다닌 아들이 대견스럽고, 삶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좋은 스승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아들을 보면 ‘감사’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자식들이, 자식을 이끌어준 고마운 스승이, 함께 일하는 사람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그러다 추석이 다가오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손자가 꽃게탕을 좋아하니 저 시장에 가서 꽃게 좋은 것을 사고, 또 돼지갈비 좋아하니까 그것도 좀 사고. 잘 먹는 조기도 사서 튀겨 주고….” 오늘 달력을 보니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쯤에는 버스 타고 중앙시장에 한번 가보려 한다. 추석 주간에 닥쳐서 장을 보면 가격도 비싸고 물건이 안 좋은데 20일 정도 미리 가면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다. 옛날엔 몰라도 요즘에는 냉동고가 다 있으니 좋은 거 사놔서 냉동실에 딱 넣어놓으면 된다.

이번 추석에는 홍어를 썰어서 새콤달콤 매운 소스로 버무려 홍어 무침도 만들고, 꽃게탕도 하고, 돼지갈비도 하고, 목포 먹갈치도 좀 사야겠다. 먹갈치를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찌개 한번 해줘야지. 우리 아들은 전을 좋아한다. 명태전 만들 생선을 사러 큰 마트에도 가 봐야겠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만두도 직접 빚어서 줬는데 요즘은 힘이 들어서 만두는 하지 않고 있다. 오늘 몸이 괜찮다가도 내일 언제 또 아플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올해는 만두 한번 해볼까?’ 하며 고민 중이다.

그런데 명절에 자식들이 오면 짧게 지내다 떠나니 시간이 없어서 준비한 음식을 다 못 먹고 갈 때도 있다. 뭐라도 더 먹이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 아쉽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명절 중 추석이 제일 크다. 설보다 음식이나 재료 등이 더 골고루 있고 풍성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러지 않았나. 아무튼, 나 같은 노인들은 추석에는 온 정성을 들여서 음식을 준비한다. 꼼꼼하게 따져가며 좋은 재료를 사 와서, 미리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생각하면서 추석을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즐거운 추석이 성큼 다가온다. 자식들 오면, 같은 상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으며 웃는 것, 그게 가장 좋다. 자식들이 명절마다 집에 오니 고맙고, 좋다. 나는 그렇게 산다. 올해는 추석이 토요일이던데. 언제 왔다가 언제 갈랑가 모르겠다.

독일에서 보내는 두 번째 추석 

22살, 우소정

나는 ‘추석’이라는 말만 들어도 들뜨곤 한다. 그건 가을밤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올라서일 것이다. 우리 외가 근처에는 큰 밤나무 산이 있다. 추석이면 가족들과 자루를 매고 산에 올라가 밤을 잔뜩 주웠다. 나는 가시에 찔릴까 잔뜩 겁을 집어먹고 조심조심 밤을 주웠던 반면, 친척 동생은 산에서 뛰어다니다 넘어지기도 했다. 가족들끼리 밤 줍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는데 아빠는 까지 않은 밤송이 채로 자루에 넣곤 1등이라며 장난을 쳤다. 엄마는 알밤을 까며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밤나무 산을 걷다 보면, 외할아버지 산소가 나온다. 나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꼭 외할아버지가 옆에 함께 계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종일 밤을 따다 보면 어느새 자루가 밤송이로 가득 찼는데 그때가 가장 흐뭇한 순간이었다. 해가 저물면 우리는 둘러앉아 수확해온 밤을 나눴다. 가장 알찬고 잘 생긴 밤은 외할머니께서 시내에 나가 장사를 할 때 쓰셨고, 나머지는 큰 솥에 놓고 쪄서 같이 먹었다.

추석이 좋은 것은 오랜만에 핑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촌들을 만날 핑계, 놀 핑계, 그리고 밤새 잠을 자지 않아도 될 핑계…등. 우리는 또 하나의 핑계를 만들었다. 할머니 집 마당 앞에 있는 들판에서 할머니가 농사지으셨던 밤, 콩, 감자, 고구마를 구워 먹겠다고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모아서 아궁이를 만들었다. 어른들은 편한 주방을 두고 굳이 마당 밭에서 불을 피우려고 애쓰는 우리를 말리려고도 하셨지만, 결국 포기하셨다. 그날 저녁 밤하늘이 예뻐서였는지,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아서였는지 그때 함께 나눠 먹던 음식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8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모든 이야기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친척들은 할머니의 집에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밤을 따거나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빈집, 논, 밭, 산… 모든 것은 할머니의 빈 자리를 느끼게 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별의 슬픔을 직시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들렀던 할머니 집에는 온기가 사라진 듯했다. 물론, 외삼촌이 자주 가셔서 집 안팎을 관리하셨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그 구수한 향기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쉬웠다.

지난 해, 나는 독일에서 유학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송편도 없고, 함께 밤새워 놀 가족도 없지만 나는 추석이 다가오면 어린 시절 가을밤의 추억을 떠올린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때론 응원을 주고받고, 때론 슬픔을 함께 나눴던 그날들을. 군밤 하나에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말이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는 걸 느낀다.

아쉽지만 이번 추석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영상 통화하며 마음을 전해보려 한다. “엄마 아빠, 저는 독일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제 마음은 항상 가족과 함께 있답니다. 부모님 덕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사랑합니다!”

올해도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보름달이 뜨겠지? 나는 추석이 주는 이 느낌을 사랑한다.

올해는, 마음으로 두 분을 만나러 갑니다 

57살, 조순화

무더운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쯤이면 어느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떨어져 살던 가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절은 늘 반갑다. 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분들이 있다. 가족만큼이나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셨던 고마운 분들. 여고 동창 선경이의 부모님이다.

전라도 화순에서 살던 나는,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했다. 그때 선경이네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는데, 선경이네 부모님이 나를 예뻐해 주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씩씩하게 사는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얼마나 잘 챙겨주시던지 그 집에 아들이 하나, 딸이 넷이었는데 나중엔 나까지 딸 다섯을 키우시는 것 같았다. 한번은 편도선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두 분은 퇴원한 나를 당신의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도와주셨다. 또 통원치료까지 받게 해주셨다. 당시 우리 엄마는 나이가 너무 많으셨고, 농사일로 광주까지 오실 형편이 못 된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분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다.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한 나는 곧바로 취업했는데 첫 월급을 받은 날, 꽃무늬 내복 한 벌과 황토색 내복 한 벌을 사 들고 선경이 부모님께 갔다. 그러자 두 분은 활짝 웃으시며 “찾아와줘서, 이렇게 잘 자라줘서,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 그 후 명절이 다가오면, 두 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결혼을 하면서 광주를 떠나 서울로 와서 거리가 멀어지고, 아이가 생긴 후에는 더 자주 뵐 수 없었지만 고향에 내려갈 때면 두 분을 찾아갔다. 뵈러 가지 못할 때면 전화를 드리거나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드리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다. 그럴 때면 어머님은 “선물 보내지 않아도 네 마음 잘 안다. 너만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약 40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중년이 되었고, 두 분도 나이가 드셨다. 어머님과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작년에 고향 친구 자녀 결혼식 참석차 광주에 갔을 때였다.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 계셨던 어머님을 먼발치에서 얼굴만 뵐 수 있었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듯했다. 다행히 아버님은 건강하셔서 만나 뵙고 인사드렸더니 두 손을 꼭 잡으시며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날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올해 초,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얼마 후 정정하셨던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추석은 어김없이 다가오는데 올해는 감사의 인사를 전할 두 분이 계시지 않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산책길에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그리고 고마운 그 두 분이 생각이 나서 일부러 인사를 건네고 마음이 어떠신지 물었다. 그리곤 종종 ‘내게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등의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외출하는 길에 옷장 속에 있던 스카프를 하나 발견했다. 딸아이 친구 지현이가 내게 고맙다고 선물한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는 사정을 알게 되면서부터, 내 딸처럼 마음이 가던 아이였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딸아이의 소꿉친구 민정이가 추석이라고 보내온 떡이 보였다. 물론 그 시절 나를 챙겨주시던 두 분의 마음만큼은 못하겠지만, 돌아보니 ‘내가 받은 사랑이 있었기에 나 또한 누군가를 품으며, 따뜻하게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가 퇴근해 집에 오더니, 지현이도 민정이도 직장 생활 잘하며 열심히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이야기가 왜 그리 반가운지. 오래 전 어머님, 아버님이 내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는 말씀을 하셨던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올해 추석은, 마음으로 두 분을 만나 뵌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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