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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부산 여행
고은비 기자 | 승인 2022.08.08 09:57

한 사람의 역사는 100년 내외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사람 곁에 있던 나무, 그가 다니던 골목은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이어져 내려온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장소 혹은 물건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전한다. 바다와 낭만의 도시로 알려진 부산에는 바다와 화려한 빌딩뿐만 아니라 ‘과거의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많다. 해방 전후의 흔적들부터, 한국전쟁 당시의 절박함과 애환, 함께 살아갔던 정情이 골목 골목에 깃들어 있다. 삶의 흔적이 담긴 부산 곳곳의 장소를 따라, 여행을 떠나본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살고자 만들어진 동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파른 감천 고개를 넘어가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만날 수 있다. 경사진 길, 골목골목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 형형색색의 집,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동네 풍경들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담벼락에, 집의 주춧돌에, 계단에 박혀 있는 비석을 볼 수 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부산역 일대를 중심으로 피난촌을 꾸려나갔다. 수많은 인파로 거처는 물론, 잠시 앉아 있을 자리도 없던 시기. 사람들은 공간만 있다면 짚이든 깡통이든 뭐든 이어 집을 짓고 살았다. 아미동 산비탈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었다. 광복 후 묘지들이 방치되어 있던 이곳 또한 피난민의 움막으로 채워져 갔다.

마을 안심쉼터에 자리한 비석들. 축대 역할을 하고 있다.

묘지의 비석과 상석은 건물 축대와 계단을 만드는 건축자재가 되었다.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아이를 키우며 살았던 곳, 아미동 비석마을은 오롯이 살기 위해 일군 동네였다. 여전히 아미동 사람들은 명절이면 밥 한 그릇, 수저 한 벌을 더 놓고 무덤 주인을 위로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죽음과 슬픔의 장소로만 남지 않았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피란 생활 박물관에서 당시 집안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아미동 일대를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전망대가 있다. 또한, 전쟁 전후 부산의 모습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아낸 최민식 작가의 갤러리도 둘러볼 수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약도를 참고해보자. 오랜 세월 마을의 일부가 되어, 지나치기 쉬운 비석 찾기에 도움을 준다. ⓒ박다솜

주소 부산시 서구 아미로 일대(산19)
문의 051-240-4496(아미문화학습관)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이야기로 피어난 곳, 이바구길

‘이바구’란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를 뜻한다. 이바구길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 시절부터 해방 후 피난민의 생활터였던 1950~60년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 산업 부흥기였던 1970~80년대의 부산의 삶을 이야기로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거리다. 길이 1.5km에 달하는 이바구길은 부산역 건너편에 자리한 부산 최초 물류창고인 남선창고 터에서 출발해 옛 백제병원 건물, 초량초등학교 담장에 설치된 이바구 갤러리, 우물터, 168계단, 김민부 전망대, 당산, 망양로까지 이어진다.  그중 몇 가지를 뽑아 소개한다.

브라운핸즈 백제 카페

디자인 가구 회사인 브라운핸즈가 1922년에 지어진 구 백제병원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로, 옛 건물의 외벽과 골조가 그대로 보존되어 빈티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부산에 남아있는 근대건축물 중 지금까지 계속해서 용도변경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보존되어 온 몇 안 되는 장소이다. 이곳은 100년 전 부산 최초의 근대식 민간 종합병원으로 지은 백제병원 건물이었다. 하지만, 10년 뒤 중국인소유의 요리점으로 바뀌었고, 이후 일본 부대 장교 숙소로 쓰이다 광복 후엔 치안대 사무실, 중화민국 영사관, 임시 대사관으로 쓰였고 1852년에는 신세계 예식장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1972년도에 화재가 났는데, 현재 건물 곳곳에서 보이는 검은 얼룩이 그때의 흔적이라고 한다.

ⓒ브라운핸즈

주소 부산 동구 중앙대로209번길 16
문의  051-464-0332
이용시간 10:00 ~ 22:00

168계단

168계단은 경사지 맨 위쪽에 자리한 도로를 뜻하는 산복도로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로 통한다. 계단의 수가 168개이며, 지상 6층 높이에 해당한다. 과거, 계단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들은 머리에 양철 물동이를 이고 등에는 아이를 업은 채 이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곤 했다.

지금은 여행객들을 위한 모노레일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정상에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선 탁 트인 부산항 전망과 산복도로 풍경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이바구길 공식홈페이지

주소 부산 동구 영초길191번길 10-2
모노레일 이용시간  동절기 10월~5월 07:00~20:00 / 하절기 6월~9월 07:00~21:00

문화공감 수정

영화 촬영지 및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잘 알려진 ‘문화공감 수정’은 원래 일본인 소유였다가 해방 이후 문화재 제330호로 지정된 가옥이다. 문화재청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해 건물을 매입, 관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일본인 사업가가 지은 2층 주택으로, 해방 이후 미군정청 장교 기숙사로 쓰이다가 고급 음식점 ‘정란각’으로 바뀌기도 했다. 일본식 전통 주택의 형식을 철저히 따른 공간 구성과 내부장식이 특징이다.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현재는 시민들에게 개방된 문화 전시 공간으로, 누구든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토종 꽃차 체험 등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홍곡로 75
문의 051-441-0740
이용시간 월요일 휴무, 매일 10~17:00

근대수리조선업 1번지,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영도에 있는 대평동은 ‘깡깡이예술마을’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이자, 1970년대까지 수리조선업으로 사람들이 북적이던 동네다. ‘깡깡이’이라는 말은 녹슨 배의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2016년 마을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활기를 되찾았다. 이 마을의 역사와 삶, 특징이 예술과 결합해 수십 개의 예술작품이 생겨났다. 그중 조선소에서 일하던 깡깡이 아지매의 얼굴을 그린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대표작이다. 이외에도 국내외 미술가와 예술가들이 작업한 벽화와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깡깡이 마을박물관에서 마을의 역사와 산업 변천사에 귀를 기울이고, 선박 체험관 및 마을 공작소에서 부산의 해양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다.

깡깡이 유람선을 타고 부산 영도 대교가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1.국내 거리 미술가 정크하우스가 페인팅 한 건물 ‘수리가 있는 깡깡이마을’
2.깡깡이마을 공작소. 방문객들을 위한 제작 키트 조립 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3.예술 작품 ‘바람과 시간’. 맞물려 있는 기어는 열심히 살아가는 대평동 사람들의 일상을, 기어 틈새로 부는 바람은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상징한다
4. 독일 아티스트 헨드릭 바이키르히의 작품 ‘우리 모두의 어머니’. 대평동 대동대교맨션 벽면에 영도 깡깡이 아지매들의 강인하고 고된 삶을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렸다.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이 동네를 자유롭게 둘러봐도 좋지만, 마을에서 주말마다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제대로 이곳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대평동 마을 주민에게 직접 안내를 받으며 걷는 깡깡이마을은 또 다른 매력이다. 특히, 해상 투어체험을 신청하면, 깡깡이 유람선을 타고 해안선을 따라 자갈치 시장 일대를 포함해, 영도 대평동 수리조선사업 시설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선상에서 관람할 수 있다.

영도 대평동 마을에는 지난날  산업의 역군이자, 삶의 지탱자였던, 누군가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그곳에 남긴 흔적 하나하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며, 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는 고리가 된다.

“30년 전, 나도 먹고살기가 힘이 들어서 조선소에 깡깡이 일을 하러 갔다. 철공소 기계 소리, 조선소 깡깡이 소리, 참 힘들었지만 그때가 좋았다.”

박송엽의 에세이 <가족을 위해 남편과 헌신하며 대평동에서 살았던 세월> 중에서.

주소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 일대
문의 051-418-3336, kangkangee.com
투어 이용시간  매주 토,일요일 하루 3회 진행 (예약제)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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