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존경 받는 정치인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지만 정작 어른 노릇하기란 쉽지 않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밀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모습이 어른의 진정한 멋일 텐데, 100세 시대에 노인은 많아도 어른다운 어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상원의원은 50년 정치 이력과 덕망을 갖춘 원로 정치인이다. 자국의 경제 발전과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늘 고민하는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존경 받는’ 어른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의 마인드교육에 관심을 가진 그가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을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 인터뷰 요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왜,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는 걸까.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적고, 국토도 좁아서 사람을 키우는 일에 더 관심을 모아왔다. 다른 사람보다 더 머리를 쓰고, 더 마음들이지 않고는 먹고 살기 쉽지 않아서였다. 부모의 꿈은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뭐라도 가르치려 했다. 교육열이 대단하지만, 교육 정책이나 제도가 잘 정비된 것은 아니었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의무교육은 초중학교 과정 9년만 해당되었고, 최근에 고등학교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학벌 중심의 지식교육에 전력을 다해오던 학부모들 중에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마음과 정신의 성장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실력과 인성이 함께 키워지는 교육을 바란다. 그러나 두 가지를 갖춘 인재가 말처럼 쉽게 만들어지는가.

이런 고민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흡사하다. 이미 100년 전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 의무교육을 법제화한 이 나라는 중남미를 통틀어 교육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져 있고 문맹률은 3%에 불과하다. 앞선 의무교육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최근 한국의 인성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Q. 안녕하십니까? 상원의원님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이 6.25전쟁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오고 있어 늘 관심이 갑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IMF 외환위기를 겪은 일도 있어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사는 한국 분들도 만나고, 한국을 직접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갈 일이 생겼는데 갑자기 다른 일정으로 못 갔어요. 다녀온 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왔다고 좋아했습니다.

Q. 최근에 새로운 교육에도 관심이 있으신데, 교육 제도로 보면 아르헨티나가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의 지혜로운 선조 덕분입니다. 스페인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 주권을 가진 1850년대에 이미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육 정책을 만들었고, 의무교육을 실시해 모든 청소년들이 학교에 다니게 했습니다. 당시 의무교육은 유치원 1년, 초등학교 7년, 중고등학교 5년으로 총 13년으로 정해져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학비는 전국의 공립학교 경우 전액 무료입니다. 대학도 국립대학은 학비를 국가가 담당해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다. 대학의 경우,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좀 어렵습니다.

Q. 일찍이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한 점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교육에서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의무교육의 범위와 기간을 늘리는 교육행정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AI시대에는 교육의 질이 관건입니다. 예전에 아르헨티나는 경제, 교육, 문화 여러 면에서 정말 뛰어났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가졌던 정책이 오늘날의 아르헨티나를 만든 건데요. 그 교육 정책은 더 이상 청소년들이 21세기를 준비하도록 이끌어주지 못합니다. 이미 끝난 겁니다. 최근에 올라온 교육평가 데이터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교육정책 실패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어요. 학생들 중에 37%가 아주 기본적인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초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소리겠죠. 제가 생각할 때, 지금 새로운 것이 들어와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Q. 이번에 남미를 순방한 박옥수 목사 일행을 만나 교육 논의를 한 것도 그 일환입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사고력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그 내용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바로 저거야!’ 싶었어요. 마인드 교육이 다시 우리 젊은이들을 일으킬 에너지라는 기대와 희망이 생겼어요. 깊이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며 사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한 덕목을 다 알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사고력 하나만 배워도 삶이 달라질 겁니다.

Q. 사고력의 중요성에 특히 공감하시는 이유는요?

아르헨티나는 1917년 세계 최초로 장편 애니메이션 ‘엘 아포스톨 El apostol’을 제작한 나라입니다. 미국 디즈니보다 20년 먼저 만들었죠. 그 당시 사고력이나 상상력이 매우 남달랐던 거죠. 그런데 설명회에서 우리의 사고력을 가장 떨어뜨리는 주범이 영상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가면 다시 읽기도 하고, 감동적인 글귀를 보면 책을 내려놓고 잠시 글의 뜻에 잠기기도 하잖아요. 반면에 영상물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끌고 갑니다. 그게 젊은이들의 사고력을 다 정지시킵니다. 그래서 사고력을 바탕으로 한 마인드교육이 아르헨티나에 꼭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Q. 국가의 미래를 위해, 청소년 교육을 위해, 이렇게 간절히 애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른으로서 제가 해야 할 본분이기 때문이죠. 개인의 부족한 능력, 척박한 사회 환경도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극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례 중에서 유전도 없이 원유를 사다가 고품질로 정유해서 되파는 사업을 하거나, 고장 없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멜론을 키우는 시골의 농부 이야기 모두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지혜들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좋은 걸 알고도 어떻게 못 본 척하겠습니까? 끌어다가 후손들에게 알려줘야죠.

Q. 산루이스주는 의원님의 고향입니다.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우리 가족은 대대로 산루이스에 살아왔고 저도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모두 주지사를 지내셨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저를 보고 “이 아이는 산루이스 주지사가 될 거야.”라고 하셨답니다. 저야 기억을 못하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의 그 말씀이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는 주지사로서의 삶을 마주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언젠가 주지사가 되리라는 불변의 믿음을 가지고요.

Q. 성장 과정을 듣고 보니, 25세 나이에 정치입문을 하신 게 수긍이 가네요. 2001년에는 제49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그러나 7일 동안 재임하고 사퇴하셨는데, 그  일주일을 어떻게 회상하십니까? 

저는 나라를 사랑합니다. 짧은 7일이지만, 하루를 일 년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디폴트를 선언해야 할 만큼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위기였습니다. 사퇴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의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슬하에 8명의 자녀를 두셨습니다. 어떻게 키우셨는지요?

아버지가 제게 하셨던 그대로 저도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저는 5남매 중 맏이였고, 우린 기족은 화목하고 가족애가 끈끈했어요. 아버지는 어린 저와 대화를 할 때에도 어른과 하듯이 신중하셨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셨어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은 살면서 제게 든든한 힘이 되었죠.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나도 자녀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첫째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제 마음을 가득 차지하죠.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을 때도 제 마음은 그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찹니다. 셋째, 넷째… 이러면서 제가 여덟 명의 아버지가 되었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아이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게 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요리가 취미인데, 큼직한 쇠갈비에 소금을 뿌려 굽는 ‘아사도’를 자주 만들어 먹였어요. 온 가족을 위해서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비밀을 아세요? 기술도 필요하지만 진짜 맛있게 하려면 사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음식이든, 정치든, 그 시작점이 사랑인 것을 경험한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상원의원은 교육도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세계 최고로 만들어주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어떻게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그는 마인드교육 설명회 끝에 이런 말을 전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참지 못하며, 남과 어울릴 줄도 모르는 요즘 청소년들을 그가 마인드교육으로 보듬고 바꿔갈 것이다. 시범교육을 해볼 요량에 그는 아홉 번째 아이를 가슴에 품은 듯이 들뜨고 기쁘다. 아르헨티나 청소년들이 그의 사랑 덕분에 또 한 번 ‘레벨 업’의 기회를 가질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 때 제대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진짜 어른을 만나면 곁에서 배울 것도 많다. 그는 이 시대 어른의 초상肖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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