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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에게 필요한 것은 적토마 아닌 마음의 브레이크
김성훈 | 승인 2022.05.20 16:47

왜 ‘삼국지’일까?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이나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심지어 책 자체를 멀리하는 사람도 ‘삼국지’가 책 이름인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네이버 책’에서 삼국지를 검색하면 2022년 4월 20일 기준 8,644종의 도서가 나올 정도다. ‘삼국지’는 그만큼 유명하고 오랫동안 널리 읽히며 연구되어 온 책이다.

사실 삼국지는 단지 책으로만 유명한 건 아니다. 문학평론가 권영민 씨는 ‘삼국지만큼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며, 삶의 의미를 더욱 영원하게 만든 이야기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삼국지’에 기반을 두고 제작된 영화, 드라마, 게임, 다큐멘터리, 연극 등의 콘텐츠는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적어도 동아시아권에서는 이 책만큼 꾸준히 사랑받고 지금까지도 인용 및 회자되는 고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삼국지연의> 삽화. 조조가 유비를 초대해 천하에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대화하는 장면.

읽으면 좋은 네 가지 이유

‘삼국지’는 어떻게 이토록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는 걸까? 그리고 숱한 학자들과 경영인, 정치인, 교육자들이 필독서로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창시절부터 ‘삼국지’를 스무 번 이상 읽어 본 애독자로서 그 이유는 대략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재밌다. ‘삼국지’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든 서기 184년을 시작으로, 중국 각지에서 일어난 영웅호걸들이 저마다 대업을 이루고자 싸움을 거듭하며 위·촉·오 등 세 나라가 정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영화 수십 편을 만들고도 남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둘째, ‘삼국지’는 훌륭한 독서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언제 어디서나 글, 음악, 사진, 영상 등의 콘텐츠를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영상 콘텐츠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그런 뇌에 활자 콘텐츠로 균형을 선사하고 싶다면, ‘삼국지’ 일독을 권한다. ‘삼국지’는 재미있지만, 한 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낯선 중국식 고유명사나 한자어 등이 자주 등장하고, 사상적으로는 오늘날 오롯이 받아들이기 힘든 유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분량도 방대하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삼국지’들은 대개 열 권 안팎이다. 하지만 서랍속 숨겨둔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먹듯,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다 보면 금방 ‘삼국지’, 나아가 책 읽기 자체에 맛을 들일 수 있다. 완독했을 때의 성취감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삼국지’를 읽으며 익숙해진 고대 중국의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은 다른 중국 고전을 거부감없이 접할 수 있게 돕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셋째, ‘삼국지’는 멋진 소통의 도구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 책은 동아시아권에서 독보적인 인지도를 갖춘 스테디셀러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 일본, 베트남 등에도 적잖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권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할 때 ‘삼국지’를 화제로 삼으면 쉽게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삼국지’는 상대방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돌직구처럼 던질 수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보고이다. 대화나 토론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계륵鷄肋, 삼고초려三顧草廬, 읍참마속 泣斬馬謖, 출사표出師表 등 이 책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를 사용한다면, 말하려는 논지를 더욱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삼국지’는 오늘날에도 되새겨봄직한 교훈들로 가득찬, ‘인생살이의 교과서’라고 말하고 싶다.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서기 184~280년은,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험악하기 그지없는 난세였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이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천하 제패의 꿈을 좇아 힘과 지혜를 겨룬 치열한 발자취가 ‘삼국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1%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돌파구를 모색했고,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갖은 모욕을 견뎌내는가 하면, 뛰어난 이가 있으면 나이와 신분을 따지지 않고 기꺼이 허리 숙이며 배움을 청한, 이른바 사고력·절제·교류의 자세를 실천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완벽무결했던 건 아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는가 하면, 교만해진 나머지 당연히 새겨들을 이야기에 귀를 닫기도 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배울 점이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이 ‘삼국지’ 속 영웅들이다. 그들의 흥망성쇠는 학업, 인간관계, 조직운영, 자기관리 등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승리를 거두는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최고 무장 여포의 두 얼굴

당시 최고 무장이었던 여포.

지난 2010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삼국지 사전>(선뿨진, 탄리앙샤오 공저)에 따르면, ‘삼국지’ 속 등장인물은 무려 1,300여 명에 이른다. 신분도 황제, 왕, 무장, 책사, 무희, 의사, 상인, 병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개중에는 유비·조조·손권 같은 주연급 인물도 있고, 이름만 잠깐 언급되었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급 인물도 있다.

그중에서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인물이 ‘여포’이다. 여포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강의 무장이었다. 무용武勇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관우와 장비가 함께 덤벼도 당해내지 못한 상대가 바로 여포였다. 심지어 조조군을 대표하는 무장 여섯을 혼자서 상대한 적도 있다.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방천극(창 옆에 초승달 모양의 낫을 단 무기)을 휘두르며 전쟁터를 짓밟으면, 순식간에 적병 수십 명이 ‘가을 바람에 낙엽처럼秋風落葉’ 나뒹굴며 쓰러지기 일쑤였다. 활솜씨도 일품이어서 150보(약 180m) 밖에 있는 끈을 화살로 정확히 맞혀 끊어 놓을 정도였다. 이처럼 대단한 실력을 지녔지만, 그는 ‘삼국지’에 나오는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살았다. 본인만 불행했던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여포에게는 꼬리표처럼 붙는 두 가지 수식어가 있다. 먼저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兎’이다. 이것은 사람 중에 여포의 실력이 단연 출중하며, 말 중에는 적토마가 으뜸’이라는 뜻이다. 적토마는 여포가 타고다닌 말 이름이다. 여기까지라면 좋았겠지만, 그에게는 별명이 하나 더 붙는다. ‘삼성가노三姓家奴’, 즉 ‘성 셋 가진 종놈’이라는 뜻이다. 유교적 질서를 중시하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치욕스런 이 별명은, 여포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잘 보여준다.

여포를 꿰어 정원을 죽이고 그를 양자 삼았으나, 결국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탁.

배신으로 얼룩진 삶, 배신으로 막을 내리다

여포는 지금의 내몽고 지역에서 태어난, 한족의 입장에서는 이민족 출신이었다.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한 그를 무장으로 발탁한 이가 형주자사 정원이었다. 기울어가는 한나라를 걱정한 충신이었던 정원은 여포를 양자로 삼는 등 크게 아꼈지만, 여포는 그에게 등을 돌린다. 조정 실권을 장악하고 폭정을 휘두르던 간신 동탁이 여포를 수하로 얻고 정원까지 제거할 요량으로 “적토마와 장군 벼슬을 줄 테니, 정원의 목을 베어 가져 오라”고 꾀었기 때문이다. 여포는 양아버지를 살해하고 동탁에게 붙어 다시 그의 양자가 되었다. ‘성 셋 가진 종놈’이란 오명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잇속을 탐해 맺은 부자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초선이라는 절세 미녀가 동탁과 여포 사이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둘은 연적戀敵이 되고, 급기야 여포는 ‘역적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동탁까지 죽였다. 그 뒤로도 여포는 계속해서 주위의 믿음을 헌신짝처럼 저버렸고, 결국 불의의 상징인 ‘만인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같은 편인 부하나 백성들도 그를 신뢰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한나라의 충신이었던 정원.여포를 양자로 들였으나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다.

배신으로 얼룩졌던 여포의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신으로 막을 내렸다. 여포군이 머물던 하비성下邳城이 조조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몰리자, 평소 여포에게 앙심을 품었던 부하들이 적토마를 훔치고 모사인 진궁을 잡아 조조에게 투항했다. 속수무책으로 항복한 여포가 자신의 이용가치를 강변하며 목숨을 구걸했지만, 그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만행들을 떠올린 조조는 가차없이 그를 처형했다. 당대 최강의 무장치고는 참으로 허망하고 비참한 최후였다.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스승’이 있다면

‘삼국지’ 영웅들 중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데 능했던 조조는 여포를 ‘도저히 길들일 수 없는 이리 새끼’라고 평한 바 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이다. 힘이 곧 정의요, 법칙인 난세에서 여포는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엄청난 무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힘을 과신한 여포는 매사에 힘을 앞세웠고, 나아가 그 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했다. 그렇게 차츰 그의 마음에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과 배신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길이 만들어졌다.

여포는 자신의 적토마를 유난히 아꼈다. 800근의 짐을 지고 하루에 천 리를 간다는 명마 적토마가 있었기에 여포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에 엔진의 힘을 이길 브레이크가 필요하듯, 여포에게 적토마보다 더 필요했던 건 자신의 힘을 올바른 데 쓰도록 통제해줄 지혜였다. 그가 욕망에 눈이 멀어 한 치 앞을 못 보고 달려갈 때, “여포야, 힘이 세다고 이기는 게 아니야. 네가 포부를 이루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해.”라고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마음을 단속해줄 스승이 있어야 했다. 실제로 여포 곁에는 양부 정원이나 모사 진궁 등 스승으로 삼을 인물이 여럿 있었지만, 여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모략가였던 조조.
<삼국지연의>의 한 페이지이다. 글과 삽화가 함께 들어가 있다.

대다수의 삼국지 게임에서는 여포의 무력 능력치를 100으로 설정하고 있다. 100은 완벽의 상징과도 같지만 ‘차라리 그의 무력이 90 정도만 되었어도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부족한 만큼 겸손과 경청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이민족으로 홀대받을 자신을 아들로 삼아준 정원에게 평생 고마워하며 그를 친아버지이자 스승처럼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다. 우리는 우리가 흔들릴 때 마음을 의지할, 인생을 믿고 맡길 만한 스승이 있는가? ‘스승’이라고 해서 굳이 거창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논어>에 ‘세 사람만 길을 가도 그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분야만큼은 내 스승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부족함이 우리보다 경험 많고 지혜로운 이를 스승으로 삼을 조건이 된다면, 그 부족함은 오히려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5월에 즈음하여 ‘삼국지’ 최고의 무장 여포의 삶을 되짚어보며 든 생각이다.

김성훈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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