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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수술이 필요한 아버지와 둘째 딸 경아
김주원 | 승인 2022.05.19 11:57

예전에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자기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들이 각자 어디서 생활하든지 서로 그리워하고 연락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다. 휴대전화기가 없던 시절, 귀가하는 길에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항상 동전을 갖고 다녔다. 자식은 부모님의 삶의 목적이고, 부모님의 평안은 자식에게 편안한 사회생활을 영위케 하는 힘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경아는 마음이 참 따뜻한 여학생이다. 선교사이신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아프리카 베냉에서 자랐다. 또 경아에게는 네 살 많은 언니와 터울이 일곱 살, 열 살이 차이 나는 두 남동생이 있다. 

경아는 5살 때, 언니에게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아야, 사실 엄마는…, 우리 진짜 엄마가 아니야.”

“진짜 엄마가 아니야? 그럼 진짜 엄마는 누군데?”

“우리 진짜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셔.”

“하늘나라에?”

“네가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날 거야.”

“그래?”

놀라지 않을까 했던 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 경아는 무덤덤하게 듣고는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놀았다. 그런 경아를 보고 언니는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실 경아는 ‘새엄마’라도 지금의 어머니가 좋았다. 지금의 어머니는 항상 맛있는 밥도 챙겨주지만, 얼마 전 아팠을 때, 자고 있던 자신을 다정하게 깨워 약도 챙겨주고, 죽도 끓여줬다. 또 저녁이면 테라스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한국말도 가르쳐 줬다. 경아는 친어머니의 여부보다 현재 자신을 따뜻하게 챙겨주는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넓고 따뜻한 아버지의 등

경아의 가정은 재혼하신 부모님과 언니, 재혼 이후 태어난 이복형제 둘, 이렇게 여섯 식구가 한 가족이다. 경아의 기억에 아버지는 항상 가족을 세심하게 챙기는 분이었다. 아프리카는 모기가 극성이다. 모기장을 쳐놔도 모기가 뚫고 들어와 물었다. 경아 아버지는 항상 밤마다 자는 가족들의 잠자리를 살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모기장에 모기가 붙어있는지 살펴보고 잡으신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경아는 잠결인데도 따듯한 아버지의 자취를 느꼈다.

경아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와 보니 장대비가 내렸고, 학교 입구는 우산을 들고 온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느라 부산했다. ‘나는 누가 데리러 왔을까?’

경아도 목을 빼고 자기를 데리러 와준 누군가를 찾았다. 사람들 사이로 아버지가 보이자 경아는 기분이 좋았다. 경아의 손에 우산을 쥐어준 아버지는 뒤돌아 경아를 등에 업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쓰레기가 섞인 흙탕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아버지는 더러운 쓰레기가 떠다니는 물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빠, 발 괜찮아? 병 걸리면 어떡해?”

“집에 가서 깨끗이 씻으면 괜찮아.”

걱정해 주는 둘째 딸을 안심시키는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띄었다.

‘으, 아빠가 안 왔으면 장화도 없이 저 길을 걸을 뻔했네.’

경아는 아버지의 등에서 전해오는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아버지에게 업히면 어느 곳이라도 안전할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경아 아버지는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달고 지냈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말을 가족들 앞에서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2010년 7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제야 아버지에게 간경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로 인해 식도 정맥류라는 합병증이 생긴 것이었는데,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에 잘 걸리는 이유도 간경화가 원인이었다. 그날 이후로 여러 증상의 합병증이 발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아 아버지는 항상 바쁘게 지냈고, 경아조차 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한 번씩 그려보는 아버지의 빈자리

2018년, 경아 아버지는 다시 심하게 아팠다. 아프리카에는 더 이상 아버지의 병을 늦춰줄 약이 없었다. 의사들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 해에 경아의 가족은 평생 살며 뼈를 묻을 거라 생각했던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병세는 급속하게 나빠졌고 말기 환자에게 나타나는 합병증이 더해졌다.

아버지는 전혀 먹지 못하고, 전혀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 때문에 뇌에 문제가 생기는 간성혼수와 섬망이라는 합병증까지 생겼다. 섬망에 걸리면 불안정하고 환각과 인지 장애가 일어난다.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고, 말도 어눌해지고, 거동조차 어려워진다. 경아 아버지가 섬망 증상을 보이면 경아 어머니는 자식들이나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주삿바늘을 빼버리는 발작 증상 때문에 아버지는 온몸이 묶인 채 치료받아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제 좀 어렵겠다’라고 하신 적이 없었던 아버지였기에 조금 아프다가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수십 번 응급실을 드나들었지만, 이번만큼은 경아 어머니도 ‘간이식을 하지 못하면 이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아 아버지는 기약 없이 기증자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보였다.

‘잠시면 되겠지’ 했던 병마와의 싸움은 10여 년이란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경아는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 정도면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몹시 아프고부터 가정이 아주 어두웠다. 어머니의 얼굴엔 근심이 자리를 잡았고 다른 가족들은 서로에게 말을 아꼈다. 경아는 가끔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려보았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나는 독립을 해야 하나? 엄마와는 같이 살 수 있을까? 재혼하셔야 하겠지? 그럼 동생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

아버지가 없는 집, 남은 가족의 삶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볏짚을 엮는 이엉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경아는 간 이식에 대하여 의학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복잡한 의학 용어와 이식 사례로 가득한 정보를 한참 읽어가던 경아의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별거 아니네 뭐….”

경아는 간 이식 수술이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 별거 아니네. 수술만 잘하면 되네.’

간 이식은 수혜자나 기증자 모두에게 위험도가 높은 수술에 속한다. 부작용 또한 아버지나 경아에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경아의 생각처럼 별거 아닌 수술이 아니다. 그럼에도 경아는 수술의 위험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경아에게는 아버지의 존재와 가족의 영위가 정말 큰 가치여서, ‘그것을 위해서는 해볼 만하다’고 느낀 것이다. 아버지가 있어서 함께 하는 가족, 그것이 행복의 원천이었다.

경아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며칠 후, 경아는 마음을 정하고 아버지를 만났다.

“아빠, 이번 학기 마치고 바로 여름 방학 시작할 때 수술하면 좋겠어요.”

“어?”

경아의 말에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이번 학기 마치고 방학이 되면 간 검사 한번 받아 볼게. 가능하면 바로 수술해요.”

“경아야,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니…”

경아가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가녀린 스물두 살의 경아가 내린 결정에 감동한 사람들이 수술비를 지원하며 나섰다.

아버지는 경아와 혈액형이 맞지 않아서 혈장 교환 시술을 해야 했다. 또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하면서 주밀하게 지켜봐야 해서 3주 먼저 입원하였다. 경아는 수술을 앞두고 담당 의사를 만났다. 자신의 간에서 70퍼센트를 떼어 아버지에게 이식할 것이며, 담낭이 제거되고 배에 9센티 정도의 흉터가 남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하는 날, 아버지와 경아는 한 병실에서 수술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경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째 딸 경아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버지는 큰 수술을 앞둔 경아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수술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경아를 안심시켰다. 

“경아야, 잠시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다.”

경아는 아버지에게 ‘아빠, 사고를 당해도 수술하고, 갑자기 수술하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데…. 그냥 좋은 경험하는 거라 생각 할래’ 하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경아는 수술이 무섭지도 않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다.

다시 회복하는 것들

아버지와 경아는 8시간의 긴 수술 시간을 견뎌냈다. 오랫동안 괴롭혀 오던 굳은 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는 건강한 간을 이식했다. 아버지에게는 새롭게 이식된 간이 적응할 기간이 필요하고, 경아에게는 간이 다시 자라날 기간이 필요하다. 이제 경아는 경아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회복해 나가는 시간만 남았다.

아버지의 건강은 회복될 것이고, 경아의 가정도 새롭게 달라질 것이다.

“회복이 참 빠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간이 새로 자라는 속도가 아주 빨라요. 얼마 후면 거의 회복될 것 같습니다. 참 잘했어요.”

경아가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의사의 이야기에 아버지는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의 적응기는 다소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경아의 빠른 회복 때문인지 아버지도 고비를 잘 넘기며 회복하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니 경아의 얼굴색도 볼그스름히 좋아졌다. 힘든 수술을 지나면서 경아의 마음은 훨씬 성숙해지고 단단해졌다. 아버지는 다시 선교를 나가도 될 만큼 건강을 되찾았는데, 그것만으로도 경아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랫동안 어둡고 가라앉아 있던 가족들의 마음에 밝고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은 후로 경아는 부모님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경아는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곧 프랑스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지금도 주요한 행사에서 프랑스어를 통역하는 일을 하는 경아는 앞으로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외교관계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꿈이다. 몇 년 후, 경아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행복을 전하는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김주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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