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Thinking

‘그것은 완벽하게 작동한다. 더 이상 필요 없어. 2013년에 발매된다. 용량은 1일 10L. 관심 있으면 받아도 돼. 나는 차가 있어, 너의 주소에서도 배달할 수 있어, 여기로 연락해.’

어떤 외국인이 제습기를 팔려고 당근마켓에 올린 글이다. 한국인이라면 이 문장이 뭔가 어색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번역기가 문맥을 연결시키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직역해서 생긴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다행히도 그 제습기는 누군가에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번역기가 발달해서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번역을 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전문 통번역가의 실력엔 미치지 못한다. 똑같은 단어를 똑같은 의미로 번역하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번역 오류가 생기는 여러 요인들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번역을 하면서 몇 가지 사고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 번역기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을 순서에 맞게 배열할 뿐이지만, 제대로 된 번역을 하려면 우선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단어의 뜻을 아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또,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말하는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배경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계가 이런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파악해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어도 이 말을 전달받는 사람들은 또 다른 문화권에 살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문화권에 맞추어 문장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 통번역가들은 보통 자신이 번역해야 하는 두 언어권의 문화를 모두 공부한다. 그리고 보다 정확하고 더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서 위와 같은 사고의 과정을 당연히 거친다. 그래서 듣거나 읽는 사람들은 기계보다 통번역가의 결과가 훨씬 이해하기 수월하다.

클래식 연주자는 ‘음악’을 통번역하는 직업

나도 통번역하는 일을 한다. 내가 번역하는 언어는 ‘음악’이다. 음악이 왜 언어냐고 누군가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언어를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음악도 작곡가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언어인 것이다.

작곡가는 자신의 의도를 음표라는 기호 체계 안에 담는다. 그리고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작곡가가 사용한 음악 언어인 ‘기호’들을 연주가는 ‘소리’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주자는 각 기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외우고 공부해야 한다. 마치 영어를 배울 때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듯 말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직역만 했다간 번역기의 결과물로 나오기 십상이다. 좋은 연주자와 그렇지 못한 연주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좋은 연주자는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토대로 작곡가의 마음을 읽어내 그것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 같은 곡을 수년간 수만 번을 연습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하는 것이다. 전문 통번역가들처럼, 좋은 연주자가 되고자 하면 자연히 신중히 사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작곡가의 입장이 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좋은 연주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이렇다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민을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작곡가의 마음을 잘 읽어낼 수 있을까’였다. 나와 작곡가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얇은 종이에 빼곡히 적힌 상징적인 기호들뿐이다. 이를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스스로 작곡가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작곡가의 입장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공부하거나, 당시의 일기나 편지글을 읽는 것은 좋은 접근법이 될 것이다. 전기문傳記文이나  다방면의 기록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내가 아예 작곡가가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작곡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내 마음을 종이에 기록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작곡가들의 마음에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악보는 엄청난 사고의 과정을 거쳐 나온 산물

확실히 작곡가가 되어보니 내가 연주해야 할 곡들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작곡을 배우기 전까지는 작곡가의 결과물만을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작품’의 제작 과정 속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세계적인 음악제에서 수상한 작곡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는데, 그분이 첫 만남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당위성’이었다. 단 한 개의 음표도 이유 없이 적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든 곡, 종이 위에 적은 모든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준비해야만 했다. 선생님 앞에서 ‘그냥 이렇게 하니까 듣기에 좋아서요.’ 라는 근거 없는 설명을 했다가는 화를 부른다. 악보에 적힐 모든 것에 의미 있는 생각을 담는 것은 굉장히 머리 아픈 작업이었지만, 곡 하나를 완성한 후에 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초보 작곡가조차 음표 하나, 기호 하나에 의미를 담고 마음을 쓰는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작곡가들은 어떠했을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예전에 연주했던 곡의 악보들을 다시 펼쳐 보았다. 악보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단순히 흰 종이 위의 콩나물 그림이 아니라, 엄청난 사고 과정의 산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전혀 이해 가지 않았던 부분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부분들도 다르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마음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것이 무척 기뻤다.

이제부터는 작곡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차례

음표 하나하나에 작곡가들이 의미를 담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살필 차례다. 내가 주로 연주하는 음악은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클래식 작곡가들이 쓴 작품들이다. 이들은 같은 음악 기호들을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사용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사람마다 즐겨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고, 그 단어들을 이해하는 관점이 약간씩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누군가는 남녀 간의 이성적인 끌림으로, 누군가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으로, 또는 더 나아가 애국심이나 종교적 희생까지도 생각한다.

이처럼 각 작곡가들이 같은 음악 기호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다르게 사용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제일 쉬운 접근법은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살았던 시대는 철학이 왕성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철학자들이 당대 유명한 작가였고, 시인이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없던 시절, 사람들의 오락거리는 주로 이런 문학 작품들이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철학자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음악에도 반영이 되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철학과 함께 발전한 학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학문의 특징은 삶과 현상들에 대한 장기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즉,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 사고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현대인들이 멀게 느끼는 클래식 음악에 내가 빠져든 이유

작곡가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현대인들에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현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이다. 즉,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 어디를 봐도 사람들에게 소비가 가장 많이 되는 것들은 짧고, 강력한 효과가 있으며, 시각적으로 잘 보이는 것들이다.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사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비효율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나는 시대 흐름을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은 길이가 길고 오랜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연주자 입장에서 볼 때 타인들, 즉 작곡가와 청중의 마음을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의 조류와 잘 맞지 않는 학문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여기에 큰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클래식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나 자신과 내 삶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악보를 이해하는 과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공부하고 사고하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 또한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큰 행복을 주고 있다.

생각하는 ‘방법’이 아닌, 생각하는 ‘방향’을 배워야   

나는 지금껏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가르침의 내용들은 당연히 피아노 연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간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나는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평범한 선생님들은 내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막연히 지시하셨다. 하지만 훌륭한 선생님들은 달랐다. 내가 기술적인 어려움을 만나면, 해답을 알려주기에 앞서 ‘내가 어떤 요인들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이걸 어떻게 하면 쉽게 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하셨다. 나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지금 내 연주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하셨다.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악보가 습득이 되고 음악이 괜찮아질 때면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좋게 만들까’ 생각하라며 지금의 수준에 안주하지 않게 하셨다.

이처럼 ‘방법’이 아닌 ‘방향’을 배운 덕에 나는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을 때도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이 방향은 바로 생각의 방향이었다. 음악 공부를 넘어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할 때도 분석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어려움을 만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전에는 어려움 앞에 쉽게 넘어지거나 포기했다면,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무엇이 이 어려움의 주된 요소인가’를 분석하고, ‘어떻게’ 넘어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내 마음에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면 스스로 강하게 경계했다.

피아노를 공부하며 배운 생각의 방향들이 내 삶 곳곳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 중에도 떨칠 수 없는 아쉬움은 있다. 좀 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삶 전반적으로 말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할 기회를 얻는다면, 나는 꼭 그 기회를 붙잡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직업으로 삼든 아니든 말이다.

결과 중심의 세상에서 끈기를 잃어버린 청소년들    

요새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필요한 정보를 자주 얻는다. 음악 외에 타 분야에 대한 정보들도 쉽사리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다. 물론 여가시간 오락거리로도 더할 나위 없고 말이다.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있어, 내가 자주 보는 영상들을 토대로 인공로봇 AI가 나의 관심사를 분석해 계속 관련 영상들을 올려준다. 덕분에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피아노곡들도 많이 발견해 들으며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너무 편리하고 좋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10년, 20년 과정을 거쳐 얻은 것들을 너무 쉽게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내가 신뢰하게 된 유튜버가 잘못된 정보를 조금씩 섞기 시작한다면, 나도 모르게 오류들로 내 안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플랫폼들에 익숙해지며 드는 한 가지 두려움이 있다. ‘과정’이 결여된 것들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결과와 핵심만 전달하는 영상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길이가 긴 영상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만약 이것이 내 삶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일찍 포기해버릴 것이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려면 때로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넘어야 하는데, 그러한 끈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로는 끝까지 들어봐야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대화들도 있다. 하지만, 핵심 정보가 이야기 속에 빨리 나오지 않으면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거나 섣불리 단정 지어버려 올바른 대화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 클래식 음악은 삶의 단단한 받침이다

스무 살이 훌쩍 넘어 이런 플랫폼을 접한 내게도 위험성들이 존재하는데, 외부 요인들에 한창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십 대 이하의 아이들은 어떨까 싶다. 10년, 20년 후면 세대가 바뀔 것이고, 지금 십 대 아이들이 자라면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 문화적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 수위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빠르게 소비하는 문화에 젖어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반드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능력들은 절대 단기간에 훈련될 수 없다. 단순히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 등의 문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또한 별로 효과가 없다.

피아니스트로서 아이들이 클래식 음악을 어릴 때 자주 접하며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나는 늦게 피아노 전공을 시작했고, 이것이 피아노를 치면서도 계속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좀 더 어렸을 때 제대로 피아노 공부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순히 피아노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피아노를 통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고, 이로 인해 음악가로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발전한 것을 나 스스로가 느끼기 때문이다. 굳이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어릴 때 클래식 음악 공부를 하는 것은 그 아이로 하여금 삶을 살아갈 단단한 받침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유행하는 시대에, 사고력과 여러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과 경쟁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 공부는 그 누구보다도 앞서가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읽어내는 데도 큰 도움을 주는 음악   

특히 어릴 때부터 접하는 음악은 공감 능력을 기르는 데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 음악은 글자가 아니라 소리의 세기와 높낮이로 전달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 간의 대화에서 비언어적 요소들에 해당한다. 목소리의 높낮이나 세기를 통해 그 사람의 감정 및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의도를 읽어내는 능력이 크게 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아무리 단어를 고르고 호흡을 조절해도 결코 숨길 수 없는 비언어적 요소들이 있다. 표정에 미세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목소리 톤 속에 미미하게 녹아 있을 수도 있는데, 음악을 공부한 사람은 이런 부분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에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도 장점이 될 수 있다. 어릴 때 학습할수록, 오래 접할수록 그 민감도와 반응속도는 커질 것이다. 

내게 피아노는 삶 어떤 부분과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직업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음악을 통해 삶에 대해 배우고, 어려움이나 일들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지, 어떤 방향의 생각을 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내 삶의 자세가 되고, 나라는 사람이 된다. 비단 피아노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 전반이 그러하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은 사고할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 음악 공부를 시작할 때 이러한 점들을 몰랐지만, 공부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도,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이러한 공부가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들과 이 유익함을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적었다.

글쓴이 석승환

20살 되던 2009년 그라시아스 음악학교(현 새소리 음악고등학교)에 입학해 피아노 전공을 시작했다. 졸업 후 2012년에 뉴욕 마하나임 음악원 피아노과에 진학했다. 이듬해, 뉴욕에서 가장 큰 음악 기관인 메트로폴리탄 뮤직 커뮤니티에서 주최한 국제 콩쿠르 입상을 시작으로 Grand Prize Virtuoso 국제 콩쿠르(오스트리아 비엔나) 1위, Golden Classical Awards 국제 콩쿠르(미국 뉴욕) 1위 등 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였다. 전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피아니스트 강충모, 이고르 레비젭 등 세계적인 음악가를 사사하였고, 현재 이탈리아 벨리니 음악원 디렉터인 에피파니오 코미스를 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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