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상화

중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이상화 서양화가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를 찾았다. ‘완전한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이번 전시에 <From to>, <고립된 생각> 등 열네 점의 작품이 걸렸다. 작품을 둘러보는 동안 기자에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한 명이 작업한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재와 표현 방법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이 아닌,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표현법으로 작품을 한다는 이상화 작가. 그가 말하는 ‘완전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인터뷰를 청했다. 

Q. 한국에서 첫 개인전입니다. 이번 전시 주제가 ‘완전한 자유를 얻는 방법’인데요. 이 주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완전한 자유’는 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예요. 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제가 2015년도에 대학 졸업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8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낸 적이 있었어요.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딘다는 생각에 정말 잘하고 싶어서, 아이디어 단계에서 몇 번을 뒤집었는지 모르겠어요. 진부한 것 같다는 이유로, 깊이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디어를 엎다 보니, 8개월이 지나있더군요. 초등학생 때부터 늘 그려온 그림인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제일 힘들었어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이 얼마나 괴롭던지, ‘창작의 고통’이란 말을 뼈저리게 느꼈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숲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자연을 그릴 때 편안했던 기억이 났거든요. 숲을 그리니까 좋더라고요. 좀 회복된 듯 싶어서 다시 아이디어 구상을 시작했는데, 병 도지듯이 다시 고통이 이어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자유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아이들이 낙서하듯이, 신나게 미술을 하고 싶었거든요.

<구름을 찾아서>, 2016~2018년 작. 그의 발바닥을 본떠 스스로는 빛을 낼 수 없는 달 표면을 그렸다. 깜깜한 숲속에 자유를 뜻하는 구름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구름을 찾아서>, 2016~2018년 작. 그의 발바닥을 본떠 스스로는 빛을 낼 수 없는 달 표면을 그렸다. 깜깜한 숲속에 자유를 뜻하는 구름을 찾아가는 여정이 담겨 있다.

Q. 그 결과가 궁금하네요. 자유가 무엇인지 답을 얻으셨나요?

제 작품에는 ‘자유’를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어요. 예를 들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얻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불완전한 나를 검은색 물감으로, 완전한 자유를 흰색이라고 설정하고, ‘검은색 물감을 가지고 흰색을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검은색 물감으로 흰색을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 칠하는 게 답이잖아요. ‘내가 자유를 얻으려면 아무것도 건드리면 안 된다, 그래야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를 표현해보기도 했고요. 더불어 그 안에 ‘1-1=0’을 넣어서, 자유를 얻으려면 나한테서 나를 빼야 한다는 의미도 부여했어요. 자유를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할지 계속 고민하며 시도했는데, 사실 제가 찾던 답은 아니었어요. 삶과 전혀 연관을 시키지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성경 말씀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느꼈던 때가 떠올랐어요. 인간이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음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셨고, 그때 인간은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잖아요. 그처럼 우리 삶의 문제 역시 예수님이 대신 해결해주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완전한 자유를 얻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제가 겪는 문제들을 예수님께 맡겼고, 그 문제들이 해결되는 걸 경험했어요. 그 경험으로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됐죠.

<시도>, 2018년 작.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지혜를 담았다고 한다.
<시도>, 2018년 작.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지혜를 담았다고 한다.

Q.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2015년에는 이론적으로 ‘이게 자유일 것이다.’ 생각했다면, 2018년도부터는 제 문제를 내가 믿는 예수님께 맡기는, 그러니까 실제 자유를 경험했어요. 대학원 졸업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논문을 쓰는 것부터 졸업작품, 전시까지 해내기에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예요. 아무리 잠을 줄여도 전시 전까지 작품을 완성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때 너무 막막했고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어서 간절히 기도했어요.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 하는데, 저를 도와주세요.”라고요. 그런데 다음 날 친구가 제 작품을 보더니 “상화야,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 네 작품은 처음 했을 때가 훨씬 좋았다. 네가 볼 때도 그렇지 않냐?”라고 하는 거예요.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 제 작품을 자세히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고요. 그때부터 처음 스케치했던 부분을 지우지 않고 살리니까, 최소 1주일이 걸렸을 작업이 하루로 줄면서 작품을 제때 완성할 수 있었어요. 사실 한 그림 안에 두 가지 표현 방식을 혼합해 그려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제가 애초에 기획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나왔어요. 그 작품 덕분에 상해 개인전도 초청을 받았고요.

그렇듯 제가 겪는 문제를 하나씩 하나님께 맡겨보니까,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게 없더라고요. 그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떤 문제 앞에서도 어려워하지 않는 제 모습을 발견했죠.

<자유의 조건>, 2016년 작. 흑과 백으로 자유가 무엇인지 나타내고자 했다. 이론적으로 자유를 찾던 화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자유의 조건>, 2016년 작. 흑과 백으로 자유가 무엇인지 나타내고자 했다. 이론적으로 자유를 찾던 화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Q. 경험에서 찾은 ‘완전한 자유’네요. 이번 전시는 준비 과정이 어떠셨나요? 작품 표현 방식이 다양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다들 그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평상시 성경 말씀을 읽고 지내다 보면 아이디어도 많이 생기고, 어떻게 표현해야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도 떠오르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제일 잘하는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단, 다양한 스타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들의 경우, 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었어요. 영상과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것도, 나무를 잘라서 하는 것도, 조형물을 걸어두는 거나, 만화를 그린 것도 처음이에요.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하다 보니, 전시 준비를 하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Q. 보통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요.

그렇죠. 보통 작가만의 스타일과 독특한 표현 방식이 있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죠. 그런데 저는 제가 가장 잘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제가 가진 무기를 버렸어요. ‘왜 제일 잘하는 걸 버렸냐?’라고 물으신다면, 그림의 완성이 제가 가장 잘하는 표현 방식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표현한다고 한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실지는 전혀 모르잖아요. 나에게 최고의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최고의 방법이 아닐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떠오르는 그대로를 작품에 반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시 준비 과정이 수월했고, 편안하고 재밌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Q. 작가가 원하는 작업을 하신다니 좋습니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지금까지 중국에서 활동하다 보니, 오랜만에 뵙는 분들이 많았어요. 거의 20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하나같이 전시 주제를 보고 정말 오고 싶었다고 말하더군요. 지인들 외에 찾아주신 관객들과 대화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위치와 상관없이 자신을 둘러싼 짐들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어 하신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주제 그대로, 완전한 자유를 얻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그냥 ‘이럴 것이다’라는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겪고 실제로 이루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관객들도 단순히 작품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의 어려움이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SOLD OUT>, 2021년 작. 자신을 가두고 있던 틀과 경계가 없어졌다. 그렇게 완전한 자유를 얻음을 표현한 작품.
<SOLD OUT>, 2021년 작. 자신을 가두고 있던 틀과 경계가 없어졌다. 그렇게 완전한 자유를 얻음을 표현한 작품.
<고립된 생각>, 2021년 작. 너무 오래되어 녹이 슬어버린 4개의 자물쇠와 열쇠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고민, 숙제를 의미한다. 이 자물쇠를 풀기 위해선 하나의 열쇠만 빼면 된다.
<고립된 생각>, 2021년 작. 너무 오래되어 녹이 슬어버린 4개의 자물쇠와 열쇠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고민, 숙제를 의미한다. 이 자물쇠를 풀기 위해선 하나의 열쇠만 빼면 된다.
<기준선>, 2021년 작. 틀어져 있는 액자, 그림 안에 그려져 있는 수평계는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빨간 선만이 명확한 기준선이 된다.
<기준선>, 2021년 작. 틀어져 있는 액자, 그림 안에 그려져 있는 수평계는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빨간 선만이 명확한 기준선이 된다.

Q.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하실 계획이신데요.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현대미술작가로서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싶어요. 개인전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들을 만나 뵙고 싶어요. 올해 목표를 하나 꼽자면, 한국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키아프Kiaf 아트페어에 참여해보는 건데요. 올해 첫 개인전을 가진 제겐 아직 이른 목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활발히 작업하는 작가가 되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랍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관객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당신의 작품을 보고 마음이 변했습니다.”라는 평보다 더한 극찬은 없을 것 같아요.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고,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멋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마음에 감동을 주고, 나아가 변화를 일으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한번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각자의 삶을 의미하는 퍼즐 조각과 그 퍼즐 조각을 완성하는 방법, 좀처럼 풀리지 않아 녹슨 자물쇠, 여러 기준 중 진짜 기준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주는 작품들을 보며, 완전한 자유를 희구하는 작가의 시선이 보였다. 인간이 살면서 습득한 지식, 경험은 그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 완전한 정답이 될 순 없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혹은 맡겨 보는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에워싼 속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방법이다.

이상화

어릴 적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미술과를 졸업했다. 이후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해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북경을 중심으로 개인전과 단체전은 물론, 다양한 아트페어에 초청받아 전시했다. 현재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미술 작가로서 새롭게 발을 내딛는 중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