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성병원 원장 김소은

병원에서 촬영을 하던 날, 마침 한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실로 간 김소은 원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았다. 항상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곳, 산부인과에서 우리는 인생의 첫출발을 시작한다. 그는 병원에서 종일 여성 환자들을 진찰하지만, 가운을 벗고 나면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로도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그를 만나 생명의 숭고함과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들어본다.

신생아 탄생이 원장님께는 매일 있는 일이겠네요. 임산부들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십니까?  

임신해서 출산까지 평균 열 번 정도 만납니다. 그런데 출산 후엔 부인과婦人科 환자로서 저와 평생 함께 가는 친구가 됩니다. 1998년에 개원해 해마다 1000명씩 태어났으니 2만 명이 넘는 신생아들과 가족을 만나왔어요. 개원 첫해 태어난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엔 성년식도 해줬지요.

제 환자들 중에는 예쁜 신혼부부들이 있어요. 임신을 확인하러 오면 초음파 검사를 받는데, 모니터에 나타나는 태아는 사실 이렇게 점 하나거든요. (그는 볼펜으로 손바닥에 점 하나를 찍어 보여 주었다.) 이 점에 사운드를 연결시키면 깜빡깜빡 뛰면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임산부들이 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게 아기예요. 건강하네요.”라고 말해주면 울어요. 흐느끼는 그 소리에 저도 울컥합니다. 아이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은 여자 안의 모성이 터뜨려지는 시간이지요. 저 임산부가 그동안은 말괄량이로 자신만 위해서 살았을 텐데, 자기가 생명을 가졌다는 걸 알고부터는 뜨거운 모성으로 살아가겠구나 싶어 기대가 됩니다.

한 달 뒤 다시 와서 검사를 하면 머리와 몸이 생겨 눈사람 같아요. 그다음엔 팔다리가 나오고…. 이런 아이의 변화를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죠. 출산하면 제게 “너무 감사해요!”라는 문자들을 보내와요. 저도 감격스럽고 한편 걱정도 돼요. 기저귀 갈며 밤잠 못자고 키울 생각하면 힘들 텐데, 그 시작을 저와 함께 해준 게 고맙지요. 요즘은 03년생 산모들이 찾아오는데 예나 지금이나 산모는 아름답고 아이에 대한 반응 양상도 늘 같아요. 그게 산모의 일생 같아요.

수만 명의 환자들 가운데 언뜻 떠오르는 한 분이 있다면요?

아, 주마등처럼 많은데요. 한번은 우리 병원에서 아이 넷을 모두 출산한 엄마가 또 임신을 해서 찾아왔어요. 딸만 낳은 분이었는데 검사해보니까 다섯째도 딸이었어요. 시부모님한테 아들 타박을 듣는 종갓집 며느리인 걸 알기에 사실대로 말해줘야 할까 망설였어요. 하지만 끝까지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선생님, 뭐예요?” 물어보면 “엉덩이에 가려서 안 보이네요.”하며 피했어요. 시간이 흘렀고 다섯째 딸을 낳았지요.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그 엄마가 저를 먼저 알아보고 막 달려오더라고요. 다섯째 딸의 손을 잡고요. 이렇게 예쁜 딸을 선생님이 선물해 주셨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그분이 여섯 번째 임신을 해서  바라던 아들을 낳았지요. 지금은 성인이 된 큰딸도 제 환자가 되었어요. 

그 산모는 원장님 말을 그대로 듣고 따라갔네요. 단순히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넘어 끈끈한 신뢰와 정이 느껴집니다. 원장님은 병원 밖에서 성교육 전문가로도 활동하시지요?

제가 진료 후에 기회만 되면 중고등학교에 직접 가서 특강을 합니다. 현장에 나가 보면, 중학생만 되어도 성교육은 이미 늦은 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유해 영상물을 접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세태를 부모님들께 알려드리면 솜털이 보송보송한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보는 영상물이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성 개념을 보여주는 가짜 연극으로, 어른들이 돈을 벌려고 만든 상술에 불과합니다. 동성애에 관심을 갖는 남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처음 본 영상이 그런 내용이어서 그걸 정도正道로 알았다는 겁니다. 이제, 제대로 가르치는 성교육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성교육을 하시나요?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사랑이 곧 성관계’이며, 이렇게 살아야 ‘쿨’하다는 사상이 팽배해 있어요. 순결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한 꼰대라고 가스라이팅이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학생들한테 강하게 말해요. “너희들이 여학생에게 사귀자고 하는 말은 범죄인 거야.” 사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설레는 일이고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나와서 삶의 원동력이 되는 좋은 일이잖아요.

하지만 청소년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어린 여자의 자궁은 완숙되지 않은 세포로 이뤄져 있어서 성행위 자체가 치명적인 상처라는 것을 의학적으로 풀어줍니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나면 여지껏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었대요. 덩치 큰 남학생들은 “정말 사랑한다면 지금 성관계를 하면 안 되는 것이네요.” 하며 자신의 사고방식을 그 자리에서 바꿔요.

부모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의 개념을 잘 몰라서 ‘반에서 누구랑 사귀고 있니?’하며 쉽게 질문하시는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사귄다’는 의미를 알면 이런 말씀을 다시는 못 하실 거예요. 요즘 사귄다는 말은 성관계를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귀는 사람이 있냐’고 계속 물어보시면 아이들이 헷갈린대요.

두 번째 부탁은 휴대폰을 가급적 늦게 사주세요.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하니까 필요하긴 한데, 개인 휴대폰이 생기면 그때는 제어불가입니다. 아무리 엄마가 차단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저는 성교육을 하면서 희망을 보았어요. 아이들이 몰라서 그랬지 알면 변합니다. 생각을 바꿉니다. 소감문이나 피드백을 받아보면, 성에 대해 가치관이 달라진 남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솔직하고 정확한 성교육을 해준다. 그래서 강의를 듣고 나면 잘못 알고 있었다며 감사를 표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는 조기 성교육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솔직하고 정확한 성교육을 해준다. 그래서 강의를 듣고 나면 잘못 알고 있었다며 감사를 표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는 조기 성교육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역시 교육이 희망이네요. 실제 여성들은 자기 몸에 대해 잘 모릅니다. 대표적인 여성 질환은 무엇이며 예방을 위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자궁근종이 가장 많습니다. 지나친 육식 위주의 식습관은 비만으로 이어지고 자궁도 살이 쪄서 뚱뚱해져요. 그것이 근종으로 연결될 수 있고요. 근종 발생을 줄이려면 야채를 많이 드셔야 하고 환경 호르몬이 들어간 일회용기 사용을 자제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혈루증에 걸린 여자도 자궁근종일 확률이 높아요. 근종이 있으면 계속 출혈이 되고 나중엔 심장 협심증이 옵니다.

미혼여성들과 청소년들에게도 부탁이 있어요. 산부인과에 오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요즘에는 성조숙증이 많아져서 8살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산부인과에 와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우리 몸을 보면 외부와 직결된 곳이 호흡기와 성기인데 그곳을 통해 바이러스가 들어와요. 성관계 없이도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이 많아진 세상이니까 이상한 증상이 보이면 바로 찾아와야 해요. 제때 약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불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여성들이 육아의 어려움과 경력단절을 이유로 자꾸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데요.

평균 수명이 늘어나니까 결혼도 늦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래도 결혼에 좋은 신체 적령기가 있습니다. 저는 남자 29세, 여자 27세가 적합한 연령이라고 봅니다. 누가 그러대요, 큰일이 생겼을 때 금방 달려와 줄 사람이 열 명이면 성공한 인생이라고요. 사실 그 대부분은 가족일 텐데 그 가족을 아예 안 만들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제 환자들 중에 35세부터 40세 미혼여성들도 제법 있어요. 돈을 잘 벌어서 ‘골드미스’라 불리는 이들은 온갖 검진을 다 하고 건강에 좋은 것만 골라 먹지요. 진찰받으러 왔을 때 제가 일부러 결혼의 중요성을 피력해요. 용케도 결혼까지는 마음을 여는데, 임신과 출산은 받아들이질 않아요. 그 이유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엄마가 자기한테 너무 정성을 쏟아 키웠대요. 자기는 엄마처럼 못 해줄 것 같아서 아이를 낳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바로 말을 받아쳐요. “그게 바로 좋은 엄마가 될 자질 아니에요? 자기가 아이에게 잘 못 해줄 것 같아 걱정을 하는 게 이미 사랑 아닌가요?” 그러면 또 훌쩍거려요. 이미 엄마가 될 자질을 갖고 있는데도 본인은 모르는 거죠.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 불쌍한 마음이 바로 엄마의 자질이에요.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 같지만 엄마가 되고 나면 다 알아요. 그 아이들 덕분에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을요.

공감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자기계발 특강도 하시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어떤가요?  

제가 강의를 하고 나면 “선생님,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후회 없이 ‘뜨겁게’ 살라고 제가 얘길 하거든요. 의학적으로 청소년기의 뇌는 최고 정점이에요. MRI를 찍어보면 그때 뇌는 LTE급 5G예요. 그렇게 습득력이 좋을 때엔 공부를 해줘야 해요. 연애만 하다가 나중에 공부하려면 효율이 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얘기가, 청소년기에 학습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라는 거예요.

앞에서 언급했지만, 청소년기에는 휴대폰이 없어야 좋아요. 학생들 머리에 휴대폰으로 본 스팸 정보들이 꽉 차 있어서 정말 필요한 지식이 들어갈 틈이 없어요. 사실 저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의사일 뿐이에요. 그런데 학생들은 아줌마가 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들어줘요. 소감문을 보면 제가 롤 모델이라고 해요. (웃음) 제가 개인적으로 이성문제 상담도 하는데, “이제 헤어져.” 그러면 헤어지고, “그만 끊어” 하면 ‘아, 사귀면 안 되는구나’ 하며 관계를 정리해요. 대화를 통해 행동에 변화가 온다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죠.

원장님은 청소년 시절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공부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할아버지, 아버지 대대로 의사 집안에서 2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어요. 전라남도 순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 때문에 서울로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자란 환경이 자연스레 의사와 병원을 떠날 수 없었어요. 대문 앞에 아버지 진료실이 있고 그다음 건물이 입원실, 마당 끝이 우리 집이었거든요. 등하교를 하며 입원실, 진료실을 지나다녔죠.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해요. 아버지와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환자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아침에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왔는데 배를 열어보니 회충이 286마리가 있었다면서, 핀셋으로 다 집어내고 꿰맸더니 환자 얼굴이 펴지면서 살아났다고 하셨어요. 상추쌈을 먹으면서 담담하게 말하셨어요. 솔직히 밥상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잖아요. 보통 때 같으면 ‘아빠, 밥 먹는데 무슨 기생충 소리예요? 밥맛 떨어져요!’ 그랬을 텐데, 그땐 뭉클하게 들렸어요. 생명에 관한 이야기엔 더러운 게 없구나, 생명엔 감정이 실리는 게 아니구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숭고한 것이구나, 이런 정의定義들을 가슴에 새기면서 의사의 꿈을 정한 것 같아요. 물론 꿈만 꾼다고 되는 건 아니겠죠. 저는 공부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다행히 공부는 잘했어요.

피아노를 배워보려고 학원에 가면 ‘소은아, 그만 와라. 가르쳐도 진전이 없다.’며 선생님이 돌려보냈어요. 테니스를 배워도, 수영을 배워도 모든 선생님들이 그만 오라고 했어요. 

2008년부터는 의료봉사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에 계속 진료를 다니신 걸로 압니다.

처음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좋다’는 봉사단체의 이념에 잘 공감하지 못했는데, 직접 가서 보고 놀랐습니다. 그때만큼 의사라는 내 가치가 큰 의미로 와 닿은 적이 없었거든요. 의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 돈으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일부러 시간을 할애해서 필요한 약들과 의료 기구까지 챙겨 가는 일이라 의료봉사는 100% 무료거든요. 그렇게 다 주면서도 내가 더 받았다고 느낀 이유는 단순해요. 나를 진정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만났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는 내가 아니어도 다른 의사들이 많고, 우리 병원을 대체할 의료시설도 수두룩하잖아요.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병원도 별로 없고 의사도 적어요. 한국 의사들이 왔다는 소문이 나면 아픈 데가 없어도 의사 구경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요. 의사한테 진료 한번 받아보려고 새벽부터 줄 서는 것은 기본이구요. 그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국제 구호단체인 굿뉴스월드 소속으로 2008년부터 매년 아프리카, 중남미 등 해외 의료 사각지대에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인 굿뉴스월드 소속으로 2008년부터 매년 아프리카, 중남미 등 해외 의료 사각지대에 찾아가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 의료봉사에서 많은 여성 환자들을 만나셨겠지요?

네, 아프리카에는 뚱뚱한 여성들이 많은데 크게 세 부류입니다. 첫째 부류는 임신해서 배가 나온 분들이고, 둘째 부류는 자궁근종으로 배가 나온 경우죠. 마지막 부류는 살이 쪄서 비만인 분들이에요. 제가 진찰을 하고 결과를 알려드리면 자궁근종 환자는 아기를 못 갖게 될까봐 울고, 임신한 여성은 환호하며 좋아해요.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아프리카 진료실의 풍경이지요.

제가 아프리카에 가보니, 옥수수가루가 주식이에요. 통계적으로 그런 나라에 자궁근종 환자들이 많습니다. 옥수수는 몸에서 지방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비만을 유발시키죠. 쉽진 않겠지만, 옥수수보다 콩을 먹는 쪽으로 아프리카 여성들의 식습관이 바뀌면 좋겠어요.

의료봉사를 하며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라이베리아와 잠비아에서 각기 만났던 두 여성이 생각납니다. 모두 심각한 자궁근종 환자였어요. 자궁 외곽에 있는 근종은 평생 놔두어도 큰 문제가 안 되긴 해요. 하지만 자궁 중앙에 자리한 근종은 자라면서 출혈이 심해지죠. 곧 빈혈로 이어지고 나중엔 생명과 직결됩니다. 두 환자의 상태가 매우 심각했는데 제가 현지에서 수술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보고도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고요. 제가 항공권을 사서 한국으로 오게 했고,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해드렸지요. 수술 후 건강을 되찾고 돌아갔는데, 두 분 모두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 환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묻자 “아, 수술만 신경 쓰느라 사진  생각은 못했네요.”라고 답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남기지도 않는 사랑, 그래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더 담백하고 순수하다. 아이가 태어나는 산부인과는 울고 웃는 가족사家族史가 시작되는 현장이다. 그곳에서 사반세기 동안 임산부들과 같이 지내는 그는 생명 탄생의 숭고함을 날마다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방금 전 세상에 나온 신생아를 다소곳이 껴안은 김소은 원장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맨 처음’이란 제목으로 쓴 시가 오늘 저 모습을 미리 예언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시로 끝을 맺는다.   

네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신비로움에 숨이 멎을 것 같구나.

만물에 속하는 네가 나의 것이 되었다니.

너를 잃을까 두려워 나는 너를 가슴에 꼭 껴안는다.

도대체 어떤 마술이 세상의 보물을 내 가냘픈 두 팔에 안겨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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