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로 야간 근무까지 해가며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이번에 졸업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야 했지만 가족, 직장 동료, 대학원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제 나는 내가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자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기관사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요즘은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한 무인열차도 운행되고 있지만, 나는 20년째 2호선에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하철 기관사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끝없는 암흑을 달리는데, 나는 서울을 한 바퀴 도는 내부순환선이라서 구의역이나 강변역처럼 지상 구간도 운행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많은 승객들을 태우고 2분여 간격으로 달리다 서기를 반복해야 하고, 안전 운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

어느 날, 나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내가 사는 안양시의 한 봉사단체에 가입했다. 중년에 들어선 뒤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일이다. ‘꿈키움후원회’라는 단체에 들어가 생전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았다. 나는 이 기회에 사회복지에 관해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2세의 늦은 나이에 서울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내 인생에 없던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되었다.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화상 수업을 제때 듣는 것이었다. 화상 수업은 보통 수업 전에 과제를 내고 수업 때는 과제를 발표하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수업이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 있었다. 일반 직장인들에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일정이었으나, 나는 늘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근무 시간이 화상 수업과 겹칠 때가 많았다. 학생 한 명 때문에 수업 시간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가 알아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또한 이과 출신의 내가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특히 대학원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수업이 많고, 수식이나 도표가 아닌 문장만으로 매번 리포트를 쓰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여러 논문이나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는 동안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발표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워갔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없었다면

2년 간의 대학원 과정은 나에게 ‘도전’과 ‘기회’였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져서, 나도 공부하면서 종종 ‘할 수 있을까?’ ‘왜 하려고 하지?’ ‘그만둘까?’ 하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도 해주고 실제로 도움을 많이 주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한편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 대학원 동료들, 실습에서 만난 분들을 알았는데, 이것이 내겐 새로운 소통의 기회가 되었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일 외에도 사회복지 시설에서 현업을 하고 계셔서 실질적인 사회복지 현장 경험을 많이 알려 주셨다.

대학원 동료들 또한 현직에서 사회복지기관을 운영하시는 분들부터 시작해 다양한 직업군이 있어서 함께 사회복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나눌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함께 교류하기로 했다.

현장실습했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뇌체조를 가르쳐드렸다. 쉽지 않은 동작이었지만 열심히 따라하셨다.
현장실습했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뇌체조를 가르쳐드렸다. 쉽지 않은 동작이었지만 열심히 따라하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청개구리’ 어르신

실제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기억은 현장실습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습 과목이 필수 과목인데, 코로나로 인해 실습생을 모집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실습 장소가 생겼다 하더라도 직장생활을 병용하는 일이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힘든 기억으로 있는 현장실습이 다른 한편으로 보면 가장 행복한 기억이 많았던 과목이기도 하다. 내가 실습한 곳은 주간보호센터로, 매일 방문하시는 어르신들을 내가 집에 가서 모시고 오거나 집으로 모셔다 드려야 했고, 식사와 간식을 시간 맞춰 드리고, 운동이나 인지발달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옆에서 돌봐드려야 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걸 좋아한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매일 똑같이, 매번 즐겁게 이야기한다. 별명이 ‘청개구리’인 한 어르신은 보호센터에 오자마자 집에 가겠다고 하고, 프로그램도 따라하지 않고, 뭐든지 말씀드리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분이었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센터장님에게 들으면서 관심이 갔고, 그 어르신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어르신은 치매가 있어서 어눌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보통 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은 아주 오랜 과거의 일부 기억만 있고, 최근의 기억은 거의 없다.

기억이 나는 시절에 한이 맺혔거나 가슴 아팠던 이야기를 하면서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청개구리 어르신도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하면서 마음을 열었고, 나중엔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율동도 따라하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행복하다.

졸업을 앞두고 느끼는 감사와 감회

올 2월에 나는 드디어 졸업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냐하면 나 혼자서 공부했으면 절대 못 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배려해 주었다. 내가 과제를 할 때 대학생 딸들이 자료를 찾아 주고, PPT 발표 자료도 만들어 주었다. 직장 동료들은 내가 화상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근무 순서도 바꿔 주고 여러 가지 협조도 해 주었다.

160시간이나 되는 현장실습을 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실습 8시간을 끝내고 나면, 다시 회사에 야근 근무를 하러 갔다가 다음날에 퇴근하고 곧바로 실습 현장으로 다시 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때도 내 곁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기억이 있다. 모든 실습 과정을 세심하게 이끌어 주고 가르쳐 주셨던 센터장님, 나와 함께 어르신들을 돌보았던 사회복지사님과 요양보호사님들, 그리고 함께 수고했던 실습생 선생님들도 생각이 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으로 하고 싶은 것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 여러 분야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우울증을 앓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고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 고통을 당하는 분들도 많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살려고 탈북한 분들이 이곳의 삶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으며, 이런 탈북자가 700명에 달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점점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의 아동들이 적응하는 데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화될수록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나는 졸업 후 그런 분들에게 희망과 감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서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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