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축산 대표 박창현

주로 대형 식당에 육류를 납품해주는 ‘본가축산’은 5명의 직원으로 움직이는 작은 회사이다. 외식문화가 타격을 받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도 이 납품업체의 매출이 몇 배나 증가해 주위에서 ‘대체 어떤 비결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박창현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하는 내내 박 대표는 “저는 배운 것도 많지 않고, 성격도 다혈질에, 모난 부분이 많습니다. 저에게 인터뷰할 만한 점이 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지만, 사업하며 찾아온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직원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세 아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다 털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그가 특별한 인생 수업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 인생 수업이 그의 사업도, 가정도 모두 성공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 특별한 수업을 독자들과 함께 나눈다.

Q. 몇 년 전만 해도 사업이 힘들어서 그만둘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따로 배워서 한 게 아니라 친구를 따라 시작했습니다. 식당에 육류를 납품하는 일로, 거래처들을 확보한 뒤 사업을 잘 해보려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장사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요즘 ‘코로나 상황’처럼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이전에도 아프리카 열병이나 광우병 사태가 터졌을 때 납품할 고기가 없거나 고기값이 너무 올라서 장사하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월말이면 납품 대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배운 게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지요. 이런 일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대금이 원활하게 돌지 못해 결국 소송 자리에 서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적자만 나고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Q. 사업이란 게 변수도 많고 어려움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감당하기엔 제 그릇이 너무 작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었고요. 마음이 너무 답답해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 이전에 제게 큰 도움을 주신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저를 잘 아시고, 생각이 깊은 분입니다. 사정을 말씀 드리자 다 듣곤 “자네는 칼로 고기를 다루는 기술이 있으니 벌집 삼겹살을 해보면 어떻겠는가?” 하셨습니다. 생각 없이 산다고 저를 나무라시거나, 앞으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조언해 주실 줄 알았는데, 벌집 삼겹살이라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벌집 삼겹살은 칼집을 내는 작업이 추가되므로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더 걸려서 인건비를 따지면 이윤을 남길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너무 힘들다 보니 제가 무엇을 따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못해 시작했습니다. 벌집 삼겹살과 일반 삼겹살을 똑같은 가격에 납품을 했습니다. 그러자 벌집 삼겹살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벌집 삼겹살로 소문이 나자, 나중에는 고기 수요량이 아주 큰 거래처가 생겼습니다.

Q.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큰 거래처를 구하려고 오랫동안 열심히 뛰어다녔던 터라, 이번엔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처럼 하면 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곤, “그 거래처가 다른 곳보다 많이 큰가? 그렇다면 조금 더 신경써주고 조금 더 잘해주게.”라고 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그 거래처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신경쓰고 잘해주라’는 선생님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뭘 더 신경쓸 수 있을까?’ 하며 거래처에 보낼 물건을 살피다 보니,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담아놓은 고기가 볼품이 없어 보였습니다. 고기를 먹을 손님이 보면 ‘이거 맛있는 고기 맞아?’라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보기 좋게, 맛있어 보이게 고기를 담을 수 있을까?’ 하며 접시를 바꾸기도 하고, 대패 삼겹살은 인절미를 가지런히 담듯이 하나하나 예쁘게 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배송되는 동안 고기가 녹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송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고, 거래처 음식점에 가서는 고기가 손님에게 나가기까지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냉동고도 직접 점검해 주었습니다. ‘조금 더 잘해줄’ 생각으로 돌아보니 챙겨야 할 게 많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거래처 사장님이 알아보면서 신뢰가 쌓이고, 다른 가게에 입소문도 많이 내주셨습니다(하하). 자연히 거래처가 점점 많아졌지요.

Q. 조금 더 잘해주려고 이것저것 깊이 생각한 것이 사업 성장의 발판이 됐네요. 보통은 사업을 하면 이윤의 폭을 늘리려 할 텐데요.

전에는 늘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정도 남겨야 생활이 되고, 빚까지 갚으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때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여전히 빚더미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니 거래처가 늘고, 거래처에서 장사가 잘 되니 저 또한 잘 되었습니다. 300원 남길 것을 100원만 남겨도, 이전보다 더 많이 파니까 회사가 계속 성장했습니다. ‘이걸 왜 이제야 알았나?’ 싶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조언을 듣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도 빚더미 위에서 살고 있었을 겁니다.

Q. 들은 조언을 토대로 다시 생각해서 사업에 놀라운 변화가 왔네요. 그런 변화가 일상생활에도 있었습니까?

저는 성격이 다혈질에 성급한 편이라서 괜한 문제를 만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운전하면서 문제가 많이 생겼습니다. 상대 차가 잘못 운전한다 싶으면 운전자에게 화를 내고, 시시비비를 가렸습니다. 저도 싸우지 않고 넘어가고 싶은데, 이미 자동차 창문은 내려졌고 저는 상대방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가 숱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운전 시비로 또 싸움이 생겼습니다. 매번 싸움을 말리던 아내가 그날은 제 편을 들며 상대방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너무 미안했습니다. 시비는 내가 걸었는데 아내가 상대방과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며칠 뒤, 선생님을 찾아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그 일을 말씀드리자 이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네. 자네도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화가 날 때 감정대로 행동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게. 그러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도움이 많이 되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고 바뀔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선생님 말대로 해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한 뒤로 싸우는 일이 80%는 줄었습니다. 싸움이 줄어드니까 제 삶이 달라지더군요. 아내와도 자주 다투곤 했는데, 지금은 부부싸움을 안 한 지가 오래됐습니다(하하).

Q. 선생님이 또 어떤 조언을 해주셨는지요.

예전에는 단 둘이 일하다가 거래처가 늘어나 지금은 직원이 5명입니다. 직원 관리에 대해서 묻자, 아침마다 회의를 하면 좋다고 하셔서 매일 30분씩 회의를 합니다. 1년 정도 되었네요. 회의 땐 업무뿐 아니라 직원들이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개인적인 일들도 말하고, 저도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들을 말합니다. 당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으며 조금씩 바꿔갑니다.

매일 회의를 하다 보니 직원들의 요구가 반영되고, 일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높아지더군요. 일도 점점 최적화되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저는 아들이 셋입니다. 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 녀석들을 거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퇴근해 집에 가면 보통 자정이고, 늦으면 새벽 4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오전 9시까지 출근하다 보니 아들들이 자는 모습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매정하고 무심한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다 보니, 선생님은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시는 걸 알았습니다. 사업에 조언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삶도 배우고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아들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했습니다. 한 명이라도 서운하지 않게 똑같이 안아주고요. 처음엔 저나 아들들이나 서먹하고 어색했는데, 표현도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지금은 매일 저녁 시간에 맞춰 퇴근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이 표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박창현 씨 부부와 세 아들은 매일 저녁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나온다.
박창현 씨 부부와 세 아들은 매일 저녁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나온다.

Q. 매정한 아버지에서 다정한 아버지로 변하셨네요. 앞으로도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가실 생각입니까?

인터뷰하면서 답을 이미 다 말한 것 같네요. 저는 살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것도 해결할 방법을 몰랐죠. 깊이 고민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고칠 해결책을 생각해낼 힘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복인지,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선생님이 제 옆에 계셔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생각이 못 미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이 한 말을 마음에 담고 깊이 생각하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삶이 새로워지고 행복해졌습니다. 지금은 저도 어떤 일이든 즉흥적으로 하지 않고 이런 면 저런 면을 생각하는 자세가 조금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여전히 선생님이 멘토로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무능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사고가 깊은 분들에게 묻고,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배우면 내 능력보다 훨씬 멋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문제가 찾아오든 함께 이야기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분이 곁에 계셔서 든든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족들과도 이야기하고, 직원들과도 상의하면서 하나씩 헤쳐나갈 겁니다.

박창현 씨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능력이 없다고 해서 무능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가 받은 특별한 인생 수업은, 누군가 깊이 사고해서 내놓은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받아들이니 생각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그의 생각이 점점 주밀해졌다. 그 또한 사고하는 사람으로 변해간 것이다. 나중에는 직접 가르쳐주지 않아도 보고 배울 수 있는 생각의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빚더미 위에 앉아 인생을 한탄하며 고통을 씹던 그가 지금은 감사를 마음에 품고 행복을 누리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밝은 세상을 그리며 산다.

취재 최지나 기자   사진 박종도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