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신우영‧신동국 부자父子

신우영 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때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품질 ‘명장’이 되려면 산업 현장에서 최고의 숙련 기술 보유, 15년 이상 현장 종사,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 논문 작성 및 책 출판은 물론, ‘봉사활동’이라는 조건까지 갖추어야 한다. ‘명장’에 도전한 그는 자격 조건의 하나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에 대통령 명의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까지 계속 봉사를 하고 있다. 아들까지 데리고 말이다. 신우영.신동국 부자父子에게 함께 봉사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Q. 두 분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아버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게 “봉사활동을 한번 해보고 싶다.” 하더군요. 그래서 “중학교 입학해서 같이 시작해보자.” 했습니다. 당시 저는 토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아빠가 주말에 뭘 하는지 궁금했나 봅니다. 

제가 근무하는 현대제철(주) *기장단의 한누리봉사단 활동에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갔지요. 당진의 해창마을로 간 텃밭 정리가 2016년에 아들과 동행한 첫 번째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아들: 그때부터 6년째 아버지를 따라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따라갔고, 어떤 날은 아버지의 권유로 마지못해 갔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은 아버지가 시간이 안 되시는 날은 저 혼자 가거나 어머니와 같이 갑니다.

Q. 갈 때마다 생긴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들: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보면 아버지 친구분들을 많이 뵙는데요. 볼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챙겨주시고, 정말 예뻐해 주십니다. 처음에는 그 즐거움이 컸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온 가족이 같이 봉사활동 한다는 사실을 안 친구들이 점점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사실, 같이 봉사활동을 다니기 전까지 제게 아버지는 약간 무섭고 엄한 분이셨어요. 얼굴 보기도 어려울 만큼 바쁘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같이 있다 보니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였어요. 어르신들을 살뜰히 살피시고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도 솔선수범하시는 것을 자주 보니까 아버지를 점점 닮고 싶더라고요.

Q. 아들 못지 않게, 아버지께도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들과 봉사활동을 같이 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하하). 제 나이 마흔에 낳은 자식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합니다만, 세대 차이가 커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들어오다 보니,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아들이 어느새 훌쩍 커서 중학교에 입학할 때가 됐어요. 중학생이 되면 주중에는 더더욱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테니, 봉사활동을 같이 시작했지요. 매주 토, 일요일 아들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저 또한 아들의 새로운 면을 알아가서 즐겁습니다. 마냥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요즘 보니 스스로도 잘 하더라고요. 저 말고도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한다니 대견합니다.

Q. 두 분에게 기억에 가장 남는 봉사활동은 무엇인가요?

아들: 어느 여름에 집수리와 도배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와 수많은 바퀴벌레가 나와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구토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집이 엘리베이터 없는 5층이라서 1층까지 수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쓰레기를 옮겼는데, 아침 8시에 시작해 저녁 8시에 일이 마무리되었어요. 그날은 정말 중간에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집이 청소하면서 점점 깨끗하게 변하니까 힘들어도 버틸 만하더라고요. 그 집에 사는 분도 달라진 공간에서 맘 편히 쉴 수 있게 되어 좋았을 것 같아요.

당진시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에서 다양한 봉사 공적을 인정받아 당진의회의장상을 수상한 아들 신동국의 모습.
당진시 ‘자원봉사자의 날’ 기념식에서 다양한 봉사 공적을 인정받아 당진의회의장상을 수상한 아들 신동국의 모습.

Q. 고생이 많으셨네요…. 아버지께선 아들이 봉사하며 배웠으면 하는 점이 있는지요?

아버지: 봉사 현장에 가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걸 느낍니다. 우리가 찾아간 순간만큼은 그분들이 웃음을 짓고, 맛있는 밥을 먹고, 집도 깨끗해집니다. 이런 변화는 도움을 받는 분만 느끼는 게 아닙니다. 저 또한 그렇지요. 그날만큼은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감사를 느낍니다. 아들도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멘토링을 했던 제자들에게서 종종 연락이 올 때가 있습니다. 어느새 졸업하고  취업한 학생들이, “선생님 덕분에 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찾아뵙고 소주 한 잔 따라드리고 싶습니다.” 할 때면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 됩니다. 아들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보낸 많은 날들에서 누군가는 우리를 통해 고마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꿈을 갖고, 그래서 그때 참 고마웠다고 인사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Q. 아들에게도 그런 기쁜 순간이 올 것입니다. 앞으로 두 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버지: 저는 2007년에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4곳의 봉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중 3곳에서는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처럼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봉사자들이 많이 줄어서, 종종 봉사활동이 힘겨울 때도 있습디다. 하지만, 젊은 분들이 참여하고 싶다며 전화도 주고 찾아오면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평소 느끼기 어려운 기쁨을 얻어가고 싶습니다.

아들: 저는 2016년 처음 봉사를 갔던 해창마을에 며칠 전 다시 가서 올해의 첫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집수리를 하고 도배도 하면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올해 건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땀 흘리고, 울고 웃으며 같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웠기에 제가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봉사활동을 하며 제 꿈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고, 봉사왕이라는 상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땀 흘리며 배운 즐거움을 잊지 않고 계속 봉사활동을 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 봉사활동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신우영 씨는 2016년부터 당진시 관내 그리고 충청남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아버지 신우영 씨는 2016년부터 당진시 관내 그리고 충청남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루를 알차게 살고 있었다. 아버지 신우영 씨는 장인匠人이 되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현재는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가로 있다. 아들 신동국 군 역시 봉사활동을 하며 생긴 건축가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을 알기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는 부자父子가 멋있어 보였다. 더불어 사는 기쁨을 아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봉사활동을 하며 배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지혜’가 함께 구슬땀을 흘린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앞으로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 것이다. 잠시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 어른이 된 아들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하고, 거기에 “그때 봉사활동을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꿈이 생기고, 취업도 했습니다.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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