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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이 가르쳐준 성경 바로 읽기신의 마음을 읽다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10.25 08:46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워 쉽게 읽기 힘든 책이기도 하다. 성경에는 인간의 사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을 정말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성경을 바로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어떤 사람을 구원해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잘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예전에 나는 이 이야기를,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를 희생해서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굉장히 부담스런 이야기로 다가왔다.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이웃을 그와 같이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밝고 아름답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 마음에 큰 전환이 일어난 적이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전혀 다른 각도로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 내가 성경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았고, 성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기반을 배울 수 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데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되물으셨다. 율법사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이 옳다고 하며 그렇게 행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자 율법사가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다. 내 몸처럼 사랑할 이웃이 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해주신 대답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심하게 때린 뒤 버려두고 갔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았지만 피해 갔고, 한 레위인도 그 길에서 그를 보고 피하여 갔다. 그런데 어떤 여행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려가서 돌보 아주고,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했다.

예수님이 여기까지 이야기하신 뒤 율법사에게 물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아무리 봐도,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너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을 사랑해서 구원해라’라고 하신 것 같다.

그런데 그날, 전혀 다르게 설명을 들으며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성경 내용을 요약한다면, ‘죄에 빠져 멸망 당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죄를 씻어 주셨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죄를 지어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다. 다른 하나는,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자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그와 같았다. 누군가 구원해 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고, 그를 구원해 주는 구원자가 있다. 예수님은 구원받아야 할 인간과 구원해 주는 구원자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이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자는 죄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인간을 나타내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렇구나!’ 하고 마음의 무릎을 쳤다. 그동안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를 희생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줄로 알았는데, 예수님이 죄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가 첫 대목부터 다시 이해가 되었다. 율법사도 인간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해줄 구원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예수님은 그에게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네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빠져 죽어가는 너의 진정한 이웃인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해서 너를 구원해주어야 한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평소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고 만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한 사람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실제로 이웃을 사랑해서 자신의 것을 다 쏟아 누군가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인뿐이다. 죄로 죽어가는 인간을 이웃으로 여겨 자신의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인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내가 선하게 살아야 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죄를 지으며 사는 나를 예수님이 구원해 주시는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시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는 성경이 실천하기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의 참 뜻을 알고 나니 성경이 말하는 바가 너무 쉽고 재미도 있었다.

그 후로 내가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전에는 어떤 성경을 읽든지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읽었다. 그런데 전혀 다르게 읽혔다. 성경은 내가 선을 행할 수 없는 악한 사람, 죽어가고 있는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구원자가 나타나 그를 병에서, 문제에서, 고통에서, 죄에서 건져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행동의 주체가 나 자신이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성경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이 주체라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를 씻음 받아 내가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씻음 받은 사람 마음에 들어온 성령의 인도로 선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성경을 읽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도 재미가 있지만, 성경에는 그런 것들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깊고 순전한 사랑과 희생을 읽을 수 있어서 가슴이 바닥부터 뭉클해진다. 그리고 그 사랑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크고 놀라운 하늘의 선물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행복을 맛본다.

성경이 어려운 책이었던 것은, 인간의 시각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내 시각을 버리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성경을 읽으며 그 세계를 여행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글 박민수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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