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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은 거부 반응을 이기고 태어난다Mind Essay
이상훈 | 승인 2021.09.23 09:18

우리 몸에는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신장이 있는데, 그 신장이 고장나면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기계로 피를 거르는 투석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환자들은 신장 이식을 받으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몸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질이 있다. 같은 혈액형의 신장을 이식 받아도 다른 것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몸이 알아차리고, 면역체계가 이식한 신장을 공격한다. 이를 ‘거부 반응’이라고 한다. 그대로 두면 새 신장이 공격을 받아 죽기 때문에 신장을 지키기 위해서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이런 반응은 우리 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성을 쏟아 만든 작품이나 계획이 다른 의견에 부딪힐 때에도 면역체계가 발동한다. 열심히 구상한 작품을 보여주었는데 상대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든지 “너무 칙칙한데요.”라고 하면, 마음에서 바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마음이 닫힌다.

일단 받아들인다는 것

한 패션 기업의 남성복 MD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보통 여성 디자이너들이 남성복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디자인한 샘플을 남자 MD에게 보여준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가지고 와서 “이거 어때요?”라고 물으면, 남자 MD들은 일단 좋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좋긴 한데 이 부분은 조금 부담스럽네요.”라고 한마디 덧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디자이너들이 안색이 변하며 “알겠습니다.” 하고 휙 돌아서 가버린다.

디자이너들의 반응이 대부분 비슷하다.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만큼, 확신을 가진 만큼 반응은 예민해진다. 상사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하고 싶은 말을 삼킨 뒤, ‘말한 대로 만들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자신의 생각과 달리 괜찮은 결과가 나온다. 종종 디자인에 감각이 없는 사람이 의견을 줄 때도 있는데, 그 의견도 반영해 보면 생각지 못한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나는 수 년 동안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일단 받아들이는 건 좋은 거다. 받아들여 반영하고 그 후에 비교해 보는 게 좋구나!’라고 말이다.

다른 의견에서 얻는 아이디어

패션 기업의 MD로 일하기 전까지 나는 내 취향이 아닌 옷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옷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소비자가 어떤 옷을 좋아하고 입는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은 옷을 다양하게 입는다. 독특한 옷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유행에 따라 옷을 입는 사람도 있고, 실용성과 품질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옷이 있는가 하면 소수의 사람들만 선택하는 옷도 있다.

판매되는 옷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사람도 다양하고 취향도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 모두 나의 고객이라는 사실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했다. 내 취향과 다른 의견을 수용하면, 내가 디자인한 옷이 더 대중적이게 되거나 혹은 더 개성 있는 옷으로 탄생했다. 그 사실을 아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거부하려고 한다. 다른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거부 반응만 잘 다스리면 신장 이식이 우리 몸에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주듯이,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거부하는 현상을 잘 다스리면 다른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들이 일에 큰 도움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파생되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잃어버린 객관성을 되찾는 방법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시작할 때 먼저 시안을 만든다. 최종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로 여러 개의 시안을 만든다. 그런데 오랜 시간 몰두해서 시안을 만들다 보면 객관적인 눈을 반드시 잃게 된다. 어떤 것이 더 괜찮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럴 때는 몰입하고 있는 작품에서 빠져나와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다음날 아침에 보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다시 작업한 시안을 본다. 그러면 제대로 보인다. 작업할 때는 괜찮게 보였던 것이 나중에 보면 이상할 때가 많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내가 그보다 부족한 사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거부 반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때 정확히 봐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작업할 땐 객관적인 눈을 잃는다. 그때는 물어보는 것이 일을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이거 어때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좋아한다. ‘나한테 묻는구나, 내 의견을 묻는구나’ 하면서 최대한 도와주려고 한다.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면 그때부터는 쉽게 디자인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들으면, 일에 몰두하면서 잃어버린 균형 감각과 객관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펼쳐놓은 뒤에 보이는 것

디자인에 있어서 다양한 시안을 만드는 것에 이어 중요한 것이 있다.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발휘할 때가 있는데, 바로 물건을 고를 때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 것 같지만, 자신이 가진 미묘하고 예리한 감각을 사용해서 최종적으로 하나를 선택한다. 이런 감각을 디자인할 때도 사용하려면 쇼핑할 때처럼 시안들이 펼쳐져 있어야 한다. 책상에 펼쳐놓든지 모니터에 펼쳐놓든지 한 번에 비교할 수 있게 펼쳐놓으면 우리가 가진 뛰어난 감각을 발휘할 수 있다.

시안들을 펼쳐놓은 다음에는 작업 의도나 의견들은 잊고 뭐가 제일 좋은지 느끼는 것이다. 그 시안만이 가지고 있는 향기와 느낌을 찾고 이것저것 비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느낌 괜찮은데?’라는 판단이 선다. 그렇게 느낌이 괜찮은 시안을 찾았으면, 이어서 장단점들을 찾는다. ‘느낌은 좋은데, 이 부분 때문에 복잡한 거 같아.’ ‘이런 부분은 조금 지저분해 보이네.’ 이처럼 좋은 느낌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개선하면 좋은 느낌이 더 빛이 난다. 그러면 반드시 좋은 작품으로 발전한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작품을 갈고 다듬어야 한다. ‘조금 더 키울까?’ ‘색을 좀 바꿀까?’ 이렇게 작업하면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 나온다.

방향이 잡힌 다음에 노를 젓자

디자인에서는 생산성도 중요하다. 일주일 안에 끝내야 하는 디자인을 한 달 동안 붙잡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도움이 안 된다. 즉, 에너지를 잘 써야 한다. 시작 단계에서는 에너지를 아끼고, 완성 단계에서는 집중해서 갈고닦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처음에는 방향만 잡아야 한다. 그런데 초보 디자이너들은 방향을 잡기도 전에 갈고 다듬는다. 그 일을 너무 열심히 하기에 옆에서 말도 해주지 못한다. 반면에, 어떤 디자이너는 시작 단계에서 일부러 거칠게 디자인한다.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이 ‘대충 방향만 잡은 거네. 그럼 무슨 이야기든 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해 쉽게 의견을 낸다. 이처럼 프로 디자이너는 주위 사람들이 의견을 쉽게 말할 수 있도록 한다.

디자인의 시작은 다양한 시안을 만드는 것이고, 방향을 잡는 것이다. 방향이 정해지기 전에는 깊게 들어가서는 안 된다. 조금 시도해보고, 또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보면서 비교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효율적인 시안은 ‘결정하기 좋은 상태’까지 작업하는 것이다. 그 후에 다양한 시안들을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가장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택한 뒤로는 그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된다. 그리고 완성으로 가는 단계에서 항상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 디자인의 목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지로 잘 가고 있는가?’를 계속 점검해야 한다. 실컷 일했는데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다.

거부 반응은 항상 생긴다. 삶 속에서 ‘이게 내 생각을 지키려는 반응, 다른 사람의 의견을 거부하려는 반응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 거부 반응을 이길 수 있다.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거부 반응을 그대로 두면 어렵게 이식받은 신장은 죽는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부 반응을 그대로 놔두면 나를 이롭게 하는 의견들이 죽는다.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면역억제제를 먹어 신장을 유용하게 쓰듯이, 우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부 반응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지혜롭고 뛰어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글쓴이 이상훈

아이덴티티와 공연홍보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코코넛 컴퍼니 대표이다. 디자이너의 감성과 남다른 분석력을 지녔고, 수년 동안 월간 <투머로우>에 유럽 기행문을 연재하며 필력을 길렀다. <처음 유럽 어디부터 갈까?> 책을 냈다.

이상훈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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