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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와 그리운 사람Mind Lecture
박옥수 | 승인 2021.09.01 15:20

말과 행동이 거칠지만 마음이 따뜻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예전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으며 나에게 잊지 못할 사랑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목사님, 나는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소원이 뭔데?”

“목사님이 교도소에 가는 거요.”

“내가 교도소를 얼마나 자주 갔는데? 자네보다 훨씬 많이 갔잖아.”

“성경 들고 교화하러 가는 것 말고 나처럼 은팔찌 차고요. 목사님은 수갑 차고 교도소에 안 가봐서 우리 마음을 몰라요.”

제가 대전에 살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에 나오던 한 형제가 우리 집 현관문을 확 열고 들어와서 나를 공격하는 듯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마음이 고와서 평소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상해서 살펴보니 술을 마신 것 같았습니다.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술 냄새도 조금 났습니다. 그가 한참이나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서 내 주위를 왔다갔다하더니, 주머니에서 무얼 꺼내 소파에 탁 던지고는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소파에 가서 보니 검정 비닐봉지였습니다. 고무줄로 꽁꽁 묶은 비닐봉지를 열어 보니, 안에 볶은 메뚜기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이름을 물으니 ‘구기태’라고 했습니다

김영택,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제가 교화위원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위해 일할 때였습니다. 그는 인상이 험상궂었습니다. 이름을 물으니 ‘구기태’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이 ‘구’ 씨에 이름이 ‘기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국민학교 2학년 중퇴했다고 자기 이름을 ‘국이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한때 우리나라 권투 국가대표 선수였습니다. 권투를 하면서 그가 제일 힘들었던 것이, 사람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결국 권투를 그만두었습니다. 주먹이 세니까 점점 어두운 세계로 흘러가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죄를 저질러 10년 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제가 그를 만났을 때는 형기가 거의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얼굴도 험상궂고 성격도 괴팍해 교도소에서 누구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에서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고민이 있습니다.”

“뭔가?”

“제가 교도소에서 10년을 지내 세상을 전혀 모릅니다. 이제 두 달 후면 교도소에서 나가는데요….”

10년 동안 못 본 세상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교도소에서 나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부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교도소에 오기 전에 부모님을 많이 괴롭혔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들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가 ‘출소하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가족들이 저렇다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저를 찾아와 어려운 마음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부모님이 싫어하셔? 그럼 우리 교회에 와 있어. 교회에 빈 방이 있으니 거기서 지내면 돼.”

“목사님, 교회에 들어가도 됩니까?”

“그럼, 괜찮아.”

“정말요? 약속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장가 못 가겠습니까?

교도소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던 날, 그는 우리 교회의 조그마한 구석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취직하는 것이 쉽지 않아 장사를 했습니다. 금산에 가서 인삼을 사다가 작은 승합차에 싣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고생했지만 그래도 교회에서 지냈습니다.

1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하루는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제가 올해 나이가 마흔입니다. 저는 장가 못 가겠습니까?”

교도소에서 10년을 지내고 나와 마흔이 되었으니 얼마나 결혼하고 싶겠습니까?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해 주니 좋았습니다.

“아, 그렇지. 안 그래도 내가 자네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어.”

“목사님이 제 결혼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마침 교회에 나이 많은 노처녀 자매가 있어서 두 사람이 결혼했습니다. 결혼식 때 그의 옛날 친구들이 다 온 것 같았습니다. 검은색 승용차들이 교회 마당에 가득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대전에 있었지만, 그는 어려워도 더 이상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밝게 살려고 했습니다. 결혼한 뒤에는 부부가 아주 잘 살았습니다. 그는 아내를 정말 귀하게 여겼습니다.

비닐봉지를 여는 순간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가 술을 마시고 우리 집에 찾아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다가 검정 비닐봉지를 소파에 던져놓고 간 것입니다. 비닐봉지를 열어 볶은 메뚜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먹을 게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들에 메뚜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요즘은 농약 때문에 메뚜기 보기가 힘들지만 그때는 벼가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 들에 메뚜기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메뚜기 날개가 이슬에 젖어 잘 날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마치고 오후에 친구들과 메뚜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오후에는 메뚜기가 얼마나 힘 있게 날아다니는지 모릅니다. 잡기가 쉽지 않지만 열심히 따라다니며 잡아서 간식으로 구워 먹기도 하고, 볶아서 밥반찬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메뚜기가 아주 맛있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제가 옛날에 메뚜기 잡던 이야기를 하며 “메뚜기를 좋아했는데 먹어본 지 오래되었네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지나갔는데, 이 사람은 그날부터 메뚜기를 구하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성격상 들에 나가 잡았을 리는 없고, 시장에서 샀는지 누구에게 뺏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볶은 메뚜기를 한 움큼 구했습니다.

그걸 이제 저에게 가져다 주어야 했습니다. 봉지 안에 있는 메뚜기들을 자세히 보니, 다리가 다 떨어졌고 몸뚱이도 많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메뚜기들이 그의 주머니에서 며칠은 지낸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메뚜기를 주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목사라고 교회 성도들이 선물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주지 않고 예쁘게 포장해서 줍니다. 그런데 시커먼 비닐봉지에 넣은 메뚜기를 주려고 하니 도저히 들고 올 수 없었던 겁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술을 한 잔 마시고 용기를 내서 우리 집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집에 와서도 메뚜기를 바로 내놓지 못해, 한동안 엉뚱한 소리로 떠들다가 봉지째 던져놓고는 후다닥 도망간 것입니다.

메뚜기를 좋아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메뚜기를 구한 그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저에게 메뚜기를 주기 위해 술을 마신 마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메뚜기를 주머니 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나에게 전해주지 못해 안타까웠을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느껴지니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거칠지만 마음이 따뜻한 그를, 그 후로는 만나면 더 자유로웠습니다.

그의 소박한 마음, 순수한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그 부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아내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혼자 차를 타고 가면 아주 거칠게 몰았지만 아내와 아들을 태우면 살살 기어가듯 운전 했습니다. 아들이 누구에게 맞아 울기라도 하면 그날은 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는 고물장사를 했고,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옛날의 어두운 삶과는 등을 졌습니다.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이 죄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가르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범이 재범이 되고, 3범이 되고, 4범이 되고…. 그렇게 인생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는 출소한 후 옛날 친구들과 한 번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면 돈을 쉽게 만질 수 있지만,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내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해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밝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목사가 된 후, 죄를 이긴 전과자들이 제 곁에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죄에 빠지지 않고 순수하고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신앙이 뒷받침이 된 것 같아서 저를 더욱 행복하게 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얼마 전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장례식을 했습니다. 그가 출소한 뒤 살았던 날들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소박한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어 제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서 느끼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음정이 전혀 맞지 않아도 “주의 이름 귀하다, 주의 이름 귀하다”라고 부르던 그의 노랫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구나.’

시간을 내어 그가 살았던 대전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죄를 이기고 깨끗이 살다가 간 그와의 추억에 잠기고 싶습니다. 그의 소박한 마음, 순수한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글쓴이 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성경에 그려진 마음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찾아내, 이 내용을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비롯해 5권의 마인드북과 <마인드교육 원론 >을 집필했고, 60권의 신앙서적을 출간하였다.

박옥수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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