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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 얼굴을 따라 걷다변호사 김재경
조현주 | 승인 2021.09.01 15:24

기본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뭔가 특출해야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본 메뉴보다 유니크한 것을 더 선호한다. 음식도, 디자인도, 수업도, 커피도 특별해야 더 열광한다. 하지만 고수의 세계는 결국 기본이다. 기본이 단단해야 변주도 멋진 법이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 가보면 지상에 있던 목조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를 지탱해준 초석만 남아 있다. 초석은 옛 건물의 구조를 추정·복원하는 데 기본이 되는 중요자료다.

인간 사회에도 초석 같은, 기본을 갖춘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다들 사라져도 그 시대를 아우르며 사상이나 신념을 이해하게 해주는 기준점 같은 사람 말이다. 김재경 변호사가 그런 인물이다. 삶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하는 그를 법조인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서초동에서 만났다.

김재경
1961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성장했다.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중앙· 부산· 청주지검 검사를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20년까지 진주시을 지역의 4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는 법무법인 KS&P변호사로 있다. 2019년에 대한민국소비자대상 입법부문,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좋은 정치인상을 수상했다.

Q 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곳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오래 하셨습니다. 거기서 청소년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 집은 진주시에서 지리산 쪽으로 제일 끝 동네였고,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중에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른쪽 다리에 관절염을 앓으면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병원을 오갔습니다. 아파서 혼자 지내는 시간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공부는 곧잘 해서, 중학교 3년 동안 전교 일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어요.  

변변히 대학 가는 사람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어른들이 판검사가 좋다고 이야기하시는 소리를 듣고 법관이라는 꿈이 제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진주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에 입학하면서 정말 명석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았고, 내가 별 존재가 아닌 걸 그때 알았습니다.

대입 시험을 치르던 해에, 경상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해 법대가 생겼습니다. 법대에 입학한 저는 자연스레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4학년 때 2차 시험까지 붙었습니다. 지방의 신생 법대에서 어떻게 1,2차 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는지 진주 시내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3차 면접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저는 물거품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은 온 마을의 경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이것이 살면서 그가 경험한 첫 실패였다. 손에 잡았다고 확신한 합격을 놓치고 하니, 힘이 다 빠졌다. 모래 한 움큼 쥔 손을 냇물에 넣었을 때 느낌이랄까? 꼭 쥐어도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 청년 김재경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탈은 버스 종점여행이었다. 멀리 외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양호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시험을 봐야 하나?’ ‘안 보면 내가 뭘 하지?’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수많은 장면들이 뇌리를 스치는데 공부 외에 다른 건 자신이 없었다. ‘내게 선택은 없구나.’ 마음을 정한 그는 다시 도전했고, 4년 뒤 1,2,3차 시험을 단번에 통과해 동시합격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그러면서 그의 꿈도 같이 자랐다. 법관이라는 직업에서 벗어나, 평생의 신념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는 꿈의 방향을 놓고 이런 고민을 했다. ‘진주를 떠나 서울로 오면서 나를 키운 고향에 감사했다. 앞으로 이곳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고향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물어보는 사람이 있도록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진주를 위하는 사람으로 끝까지 남고 싶었다.’ 이렇게 인생의 1막을 매듭짓고 사회로 진출한 그가 법조인으로, 국회의원으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따라가 보자.  

Q 사법연수를 마치고 희망했던 검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외부적 요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7년 뒤 스스로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로 갔습니다. 

솔직히 말해, 여러 여건 상 제가 검사장까지 가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출세한 것이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부장검사가 되어 어느 수준까지는 올라가겠지요.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이 선택에 대해선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아버지께선 “다들 검사를 못해서 안달인데 네가 왜 벌써 그만두려고 하냐.” 하며 아쉬워하셨어요. 사실 그만두고 나와도 더 좋은 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펼치기 위해 다른 세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가 있으니까요. 심사숙고 끝에 마흔 살이 되기 전 결단을 했습니다.

내면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엄정한 선택이었어요. 나의 모든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감수하면서 안주할 것이냐, 아니면 힘들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것이냐의 사이에서 갈등이 컸거든요.

Q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용기가 멋지십니다. 나에게 다른 직책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진주라는 공동체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이것도 사직의 이유 중 하나였습니까?

교과서에 실렸던 ‘큰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을 기억하세요? 주인공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갈망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가 그 사람이더라는 이야기잖아요. 가치를 추구하면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 생겨 결국은 목표에 가까이 가게 됩니다. 사회적 성공 여부를 떠나서, 제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그런 바람직한 진주 사람으로서 자리 잡고 싶었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대정부 질문 모습. 진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4선의원을 지냈다.

Q 드디어 진주시을 지역구로 17대 국회에 입성했고, 4선 의원으로 폭넓은 의정활동을 하셨습니다. 셧다운제를 처음 발의하셨는데요, 요즘 청소년들은 게임 없이 못 산다고 합니다. *셧다운제를 주장하신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법은 그 존재만으로 상징적 의미를 줄 수 있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게임을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억누르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못하게 막아도 부모 아이디로, 외국 서버로 들어갈 방법은 다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을 만든 이유는, 우리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마음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과몰입하는 자녀들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심정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게임에 빠진 자녀에게 “얘야, 셧다운제도 있는데 그만 자라” 할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부터 예상했던 부작용도 있고, 발의했을 때와 방향성이 달라져 저도 법안의 생명이 다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게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한 생태계 형성을 위해서 논의의 초점이 사행성 규제 쪽으로 옮겨 가야 합니다. 확률을 조작하는 사행성 게임이 문제인데, 이런 어두운 면이 완전히 사라지길 바랍니다.

*셧다운제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밤 12시부터 6시까지 심야게임을 못하도록 금지한 법안.  
2005년 처음 발의되어 2011년부터 실행중이다. 

Q 요즘은 홈트레이닝을 하시겠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매일 이른 아침 헬스장에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이른 시각에 운동을 시작하는데, 이 습관은 관절염을 오래 앓았던 다리 덕분입니다. 나 스스로는 다리가 불편하다고 인식을 잘 못 합니다. 단지 같은 양의 운동을 해도 남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빨리 달릴 수 없는 건 맞습니다. 그래서 남들과 도착시간을 맞추려고 출발을 일찍 하는 습관을 기른 것입니다. 우리 몸은 뭐든지 습관을 만들어주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 아닙니까?(하하)

사람들이 나를 부지런하다고 합니다만, 나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청년들이 있습니다. 내가 국제청소년연합 소속 대학생들을 만나고 너무 놀랐습니다. 스무 살이면 아침잠이 얼마나 많을 때입니까? ‘젊은이는 잠꾸러기’라는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사람들이었어요. 게으른 아이들도 정신이 바뀌면 가능하겠구나! 그 학생들을 만난 감동을 우리 아들들에게도 해주었습니다.

믿음직한 아들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밥을 안 먹어도 든든할 것 같은 아버지 표정과 어머니(사진 아래)의 미소가 행복 그 자체다.

Q 어떤 경험을 하셨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지 궁금해지네요.

2009년경으로 기억합니다.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온 학생들이 진주에서 열리는 굿뉴스코 귀국 발표회에 저를 초청했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겠는 거예요. 행사 시작하기 전에 일찍 가서 인사를 나누고 중간에 나와야 했습니다. 그게 미안해서, “언제 한번 학생들과 자리를 할게요.” 하며 의례적인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 뒤에 보좌관이, “그때 하신 약속을 언제로 잡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침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괜찮은지 학생들 의견을 묻고 날짜를 잡았습니다.

아침 일찍 약속 장소로 가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어요. ‘스무 명인가 온다 했다지만 다섯 명쯤 와 있겠지.’ 도착하니 웬걸, 모두 와서 착석해 있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프로그램도 준비해온 걸 보니 겉치레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똘망한 눈빛에서 아침잠의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더라고요. 다른 나라에 다녀오면서 느낀 경험들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요즘 만나보기 드문 학생들이구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만치 대견했습니다.

이 학생들을 보면 밝은 기운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자발적인 실력도 갖추고 있고 소명의식도 대단합니다. 그들의 정성과 배려, 실천하는 열정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회에 훌륭한 청소년 활동가들을 배출해내고 있는 이 단체에 저절로 관심이 갔습니다. 나중에 단체를 이끄는 분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슴에 사랑이 담겨 있으면 기죽지 않고, 모습도 밝아집니다. 밝은 성향은 자기 자신도 바꾸지만 전염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도 영향을 줍니다.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 학생들이 밝고 쾌활한 전파의 진원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굿뉴스코 페스터벌에서 축사하는 모습. 그는 해외봉사를 다녀온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젊은이는 아침잠이 많다’라는 편견을 지웠다.

Q,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해주실 조언이 있습니까?

정치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밝고 쾌활하면서 내면에 자신감이 있길 바랍니다. 거기에 신체적 기본을 갖추면 본인의 행복도가 높아지고 우리 사회도 훨씬 더 성숙해진다고 봅니다. 우선,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나 지향점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도달할 가장 좋은 과정을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은 도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내가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의미를 만들어갈 때, 멀리 세웠던 목표가 가까이 느껴집니다. 힘도 덜 들 수 있고요.

머리로 계획을 세워도 몸이 따라줘야 합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몸의 습관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내 몸을 내가 튼튼하게 해서 체력이 모자라 그만두거나 포기했다는 말을 할 수 없게 원천봉쇄를 해야 합니다.

제가 아들 셋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강조했던 말이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 생활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겁니다. ‘훌륭한 습관이 성공을 담보한다.’는 공자님을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하하) 다 아는 얘기가 곧 ‘기본’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생활철학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과 세우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차이가 나고 결과도 다릅니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반면에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내가 왜 이런 계획을 세웠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무모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세웁니다. 그러니까 계획대로 못하면 아쉬움이 남고,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자기성찰도 하게 됩니다. 흐트러져도, 실패해도, 어긋나도 돌아올 자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계획은 특히 뭐든지 하고 싶은 힘이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 준칙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 참석 차 한국을 방문한 각 나라 장관들과 국제청소년연합 관계자들을 국회에 초청해 기념촬영을 했다.

Q. 젊은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네요. 지금까지 걸어오신 궤적을 보면 사법부의 검사로, 입법부의 국회의원으로 일해 오셨습니다. 최근에는 행정부 진출을 놓고 인생의 3막을 계획 중이신 걸로 압니다. 지방자치단체 최고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그림을 구상하고 있습니까?

제가 청년 시절부터 막연하게 가져온 꿈을 지금 실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방 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합니다. 경쟁력 있는 정책을 펴서 사람들한테 보여줘야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경남에 글로벌 1등 분야를 다섯 개 정도 구축하려고 합니다. 조선사업은 이미 우리가 1등을 해오는 것이고, LG를 중심으로 한 가전제품과 원자력 설비도 세계 1등 영역에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이밖에 문화, 예술, 체육 부문에서도 가능성이 있지요.

물론 세계 1등이 중요하다고 해서 개발시대처럼 마구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긍심부터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저는 창조적 변화를 이끄는 리더로서 자리매김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경남이 원하는 안정감 있는 리더와, 공공경영 시스템 구축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안정과 창조적 변화라는 두 축을 기본으로 활동의 반경을 넓혀갈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행복을 뭐라고 정의하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그의 답변은 단순명료했다. “부대낌입니다.” 상호 교류로 빚어지는 결과물이라는 말인데, 사실 혼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처럼 고독한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대낌의 행복은 한쪽에서만 칼자루를 쥘 수 없으며 오르락내리락,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소통하는 평등 기반의 가치이다.  

늘 솔선한 그가 경남의 도지사가 된다면, 도민들의 행복지수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즐겁게 살도록 초석 깔아주는 일을 생각하고 실천해온 그는, 경남도민들을 위해 행복의 초석을 놓는 일에 아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그도 누군가가 준비한 기쁨의 초석 위에서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조현주  realantiq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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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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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cmaca 2021-09-02 10:31:24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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