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네 것도 잘 못하면서 남을 왜 도와줘?” “손해만 보잖아.” “너 호구야?”

대학 시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사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피피티 작업에 서툴다며 내게 도움을 청한 친구를 돕느라 정작 내 과제는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고, 대외활동을 할 때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역할을 양보하다보니 늘 행사 뒤편에서 스탭으로 일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좋아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그런 나를 이용하고, 더러 악용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내가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잘 어울리는 책이라며 <Give&Take>라는 책을 선물했다. 저자는 세계적인 조직심리학 박사 애덤 그랜트였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기를 좋아하는 ‘Giver기버’,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바라는 ‘Taker테이커’, 받는 만큼 되돌려주는 ‘Matcher매처’, 그는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를 설명하고 있었다. 먼저, 기버는 테이커나 매처보다 수입이 평균 14% 적었고, 사기 당할 확률은 2배나 높았다. 하지만 동시에 성공한 리더들 대부분이 기버이며, 이들은 평균적으로 50% 더 높은 실적을 올린다는 결과도 나왔다. 실패와 성공 모두 기버가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애덤 그랜트는 성공한 기버가 되는 전략을 제시했다.

“남을 돕는다면, 테이커보다 매처나 기버를 도와야 한다.”

“필요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남에게 베풀 때는 찔끔찔끔 하기보다 왕창 봉사하는 불 지피기 식으로 해라.”

책을 읽은 후 처음 든 생각은 ‘내 주변의 몇몇 테이커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관념을 가진 나를 놀리는 말에 내가 괜히 상처를 받았구나’였다. ‘지금처럼 손해 보고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나는, 가끔 애덤 그랜트가 말한 ‘성공하는 기버 전략’을 떠올리며 살았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부산의 한 대안학교 교사가 되었고, 주말이면 스승의 권유로 시작한 봉사활동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살면서 누가 ‘매처’이고 ‘기버’이고 ‘테이커’인지 엄밀히 구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내가 도울 여력이 되지 않는데 돕겠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라는 사실은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때면 내가 도울 수 있는 사안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밝혔고, 누군가를 돕게 된다면 내 일처럼 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를 돕는 행위에서 얻는 만족감은 잠시였다. 그것보다는 누군가를 위하려는 내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그가 내 친구가 될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지난 해 11월은, 역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시기였다. 그 시기는 내게 가장 행복한 달이자, 어깨가 무척 무거웠던 때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모아둔 돈이 부족했고 결혼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걱정’은 ‘감사’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주변에 결혼 소식을 알렸는데, 그때부터 우리 사정을 아는 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내주시기도 하고, 예식장을 구하는 것부터 신혼집을 구하는 모든 문제들을 자신의 일처럼 알아보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애덤 그랜트의 말처럼, 내가 기버로 살았기에 나를 도와주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대가도 없이 우리를 정말 축복해주고 도와주시려는 분들도 많았다. 나는 결혼식을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연결되며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종종 나와 같은 ‘호구’ 성격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네가 네 것을 챙기지 않고 살면 솔직히 피곤할 때도 많아. 때론 바보 같아 보이지. 하지만 난 그게 엄청난 달란트라고 생각해.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 큰 달란트를 가진 거야”라고 말한다. 그래서 좀 바보같이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고 말이다.

글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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