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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My Change Story
최지나 기자 | 승인 2021.05.21 19:07

굽은 허리, 손마디가 다 튀어나온 손가락, 흙이 잔뜩 묻은 장갑과 팔 토시, 가까이 다가가면 나는 땀이 섞인 흙냄새. 나는 우리 친할머니를 시골 할머니라고 부른다. 내가 할머니를 이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평생을 시골에서 사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명절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면 항상 손수 농사를 지은 쌀, 고춧가루, 고구마, 마늘, 딸기잼, 김장 김치 등을 차 트렁크가 꽉 찰 때까지 아낌없이 주셨다.

체감 온도가 40도에 다다르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할머니는 농기구가 든 바구니를 한 손에 챙겨 들고 논, 밭에 가셨다. 할머니는 여름이거나 겨울이거나 마다않고 늘 그러셨다. 여름에는 쿨 토시를 낀 채로 나가 더위를 막았고, 겨울에는 털이 달린 신을 신고 나가 추위를 막았다. 그렇게 해서 막아질 더위와 추위가 아니기 때문에 할머니는 항상 땀을 흘리고, 입김을 내뿜으면서도 농사일을 멈추시지 않았다. 땡볕 아래서나 꽁꽁 얼어붙은 흙바닥에서 몇 시간을 앉아 일하시는 할머니가 어린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몇 년 새에 큰 수술을 두 차례나 받으실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그렇게 농사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발령으로 인해 진주로 이사 온 뒤로는 할머니 댁에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농사를 지으시는 모습도 더 자주 보게 되고, 할머니와 대화하는 시간도 훨씬 늘어났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게 어색했지만, 종종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가 하시는 농사일을 도와드리면서 할머니와 나는 점점 가까워졌다.

한번은 나의 제안으로 방학 중 하루를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이튿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깼다. 벌써 논에 나가 한 바퀴 돌고 오시는 할머니였다. 비몽사몽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놀라서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아침 일찍 농사일을 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우리 똥강아지네 가족들 먹이려면 이렇게 해야지. 왜, 우리 공주가 할머니 걱정해주는 기가?”

“아니 뭐…, 네….”

부끄러워서 급히 마무리한 대화였지만, 새벽에 일찍 나가 일하시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함이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할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우리를 생각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 후에 나는 할머니가 투머로우 잡지에서 본 <행복한 왕자>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에게 찬미 받는 행복한 왕자 동상이 있었다. 제비가 행복한 왕자 동상 위에서 쉬고 있던 어느 날, 제비는 사람들을 돕지 못해 슬퍼하는 행복한 왕자의 눈물을 보게 된다. 행복한 왕자는 그런 제비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행복한 왕자는 제비를 통해 칼자루에 박힌 루비를 아픈 아이에게 주고,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금조각들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그것처럼 할머니는 몸이 안 좋은 뒷집 수녀님에게 손수 만든 과일청을 주시고,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마을회관에 가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셨다. 땀 흘리며 일해 거둔 농작물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정작 본인은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제대로 챙겨 드시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위해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셨다.

후에, 초라해진 행복한 왕자의 동상을 시의원들이 녹여버리기로 하는데, 이때 하늘에서 하나님이 천사에게 그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라고 시켜 천사가 행복한 왕자의 심장과 제비를 가져간다. 이후 행복한 왕자와 제비는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을 끝으로 이야기가 마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 불행한 사람들을 도운 행복한 왕자처럼,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건강과 시간을 내놓으며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행복한 왕자가 그 모습이 흉물스러워질 때조차도 행복을 느꼈던 것처럼, 할머니는 몸이 편찮으실 때도 우리를 위해 농사를 짓고 행복해하셨다. 그렇게 할머니가 농사지은 밥이나 김치 등을 내가 잘 먹을 때면 “그렇게 맛있나? 많이 묵으라” 하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서야 알게 된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나는 뒤늦게 감사를 느꼈다.

올해 들어 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한 달 사이에 입원을 두세 차례나 할 정도로 몸이 약해지신 할머니를 찾아뵈려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조차 자주 가지 못했다. 가까이 살면서도 뵙지 못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빠로부터 할머니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암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무서웠다. 또, 췌장암에 대해 알아 보다가 췌장암이 생존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았다. 할머니가 큰 충격을 받으실까 봐 일단 할머니에게 비밀로 부치고 있는 이 사실들이 나는 믿기지 않았다.

몸은 아프시지만 여전히 나를 보면 환하게 반겨주시는 우리 할머니.

그 일로 나는, 나에게 행복한 왕자인 할머니를 위해 제비가 되기로 결심했다.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던 내가 생명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도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처럼 암에 걸린 사람들을 돕고 싶기 때문이다. 내 최종 목표는 생명공학과에 진학한 다음 연구원이 되어서 암이 또 하나의 감기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암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암 환자들을 돕는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다.

나는 ‘행복한 왕자’ 덕분에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이어서 내 꿈도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가 비현실적이고 희망만 가득한 글에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삶의 방향을 가르쳐준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투머로우 잡지에서 ‘행복한 왕자’ 이야기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목표도 갖지 못한 채 공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할머니는 곧 행복한 왕자다. 그러니 할머니가 만약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할머니의 무한한 애정과 사랑은 행복한 왕자의 납으로 된 심장이 용광로 속에서도 녹지 않았던 것처럼 영원히 녹지 않을 것이다.

글 하채린

“투머로우를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제 진로에 대한 확신과 함께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기회로 잡지에 제 글이 실리게 되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할머니의 병간호로 지쳐 있던 저는 큰 힘을 얻습니다. 제 스스로 많은 위로를 받았던 이 글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위로를 전하길 바랍니다.” - 하채린 학생의 후기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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