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진심을 마주하다

누구나 삶을 살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배강욱 주미하 부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9년 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택했고, 2년 후 재결합했다. 같은 사람과 두 번 결혼한 셈이다. 그렇게 다시 15년을 사는 동안 두 사람은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을 둔 중년 부부가 되었다.  최근엔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낸다는데, 그래서 더 귀한 주말 시간을 취재기자가 비집고 들어가 두 사람를 만났다.

장소협찬 | 카페 헤이믈He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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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로 지내신다고요.

주미하: 제가 지금 대전에 있는 새소리음악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거든요. 벌써 2년이 넘었네요. 남편이 제 뜻을 지지해준 덕분에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서울에 살아서, 제가 평일에는 대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제가 다 늦게 기숙사 생활하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남편이 어느 날 집을 학교 가까이로 옮기자고 했어요. 본인은 오피스텔에서 살겠다고요. 덕분에 남편이 주말에 집으로 내려오면 맛집 찾아다니는 재미로 둘이 살아요.

배강욱: 한 주간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묻는 게 두 가지 있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데, 아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집에서 힘들게 요리하는 것보다 단둘이 외식하는 걸 더 좋아할 것 같더라고요(하하).

사이가 무척 좋아 보입니다. 이전에 헤어지려 하셨다는 게 잘 믿기지 않네요. 

주미하: 사실, 남편은 결혼 초에도 가정적이고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크게 다투는 일도 거의 없었고요. 다만, 저랑 성향이 조금 달랐어요. 신혼 때 TV를 보다가 “여보, 나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캐럴을 들으면서 거리를 막 걸어다니고 싶어” 하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남편이 진지하게 “왜 이유도 없이 밖에 돌아다녀?”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음악 전공자라서 감성적인 편인데, 남편은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건데, 그때는 남편이 저를 이해해주지 못하면 그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고요. 어쩔 땐 상처가 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그래도 살다 보면 맞춰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삭였어요. 그런데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시간이 갈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져버렸죠. ‘이 사람은 나랑 안 맞아.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제 마음에서 확실한 사실이 되었어요.

제 성격상 남편에게 제 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결혼한 지 9년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크게 싸웠는데, 그때 이혼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배강욱: 저는 나름대로 아내에게 잘해주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아내의 어려움을 잘 몰랐어요. 재결합하고 나서 아내가 “여보, 크리스마스 때 기억나? 내가 참 섭섭했었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더라고요. 그제야 아내의 고충을 조금 알게 되었죠. 저희가 결혼 9년 차에 서로 크게 싸웠을 때 제가 먼저 이혼하자는 말을 했어요. 그러고는 바로 후회했는데, 아내가 이혼을 결심하더니 확고하게 밀어붙이더라고요. 저도 홧김에 “그래 하자!” 그랬던 것 같아요.

주미하: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이 나랑 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제 감정이나 생각을 좀 더 차근차근 말했다면 남편이 저를 충분히 이해해줬을 거예요. 그때는 남편이랑 저, 누구도 먼저 양보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려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올 6월이면, 결혼 28주년을 맞는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이 벌써 자라 아들은 군을 제대하고, 딸아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올 6월이면, 결혼 28주년을 맞는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이 벌써 자라 아들은 군을 제대하고, 딸아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자녀들이 어린 나이었다고요.

주미하: 아들이 8살, 딸이 5살이었어요. 어리고, 엄마가 한창 필요할 나이었죠. 그런데 당시의 제 마음을 떠올려 보면 ‘이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굳어져버렸고, 어떻게 해도 다시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그보다 제가 우선이 되더라고요.

배강욱: 그때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했어요. 아이들도 소중한 가족 구성원인데, 아이들 의견과 상관없이 저희가 헤어졌으니까요. 부모 때문에 큰 충격을 받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엄마를 꼭 만나고, 아이들에게 부모가 필요한 순간에는 그 역할을 하자고 서로 약속했죠.

이혼 후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주미하: 이혼해도 저는 제가 하는 일 하면서 잘 살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원 없이 제 일에 열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쯤 지나자 그런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함이 커지고, 잠이 들기 전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나중에 아이들이 다 커도 나 같은 엄마에게는 찾아와주지 않겠지…’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세상에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이어지곤 했어요. 꼭 망망대해에 돛도 없고 닻도 없이 혼자 떠 있는 기분이었죠. 불면증이 찾아왔고, 수면제를 먹어야만 얼핏 잠자리에 들었어요.

배강욱: 아내가 그 시절을 무척 힘들게 보냈더라고요. 저는 이혼 후 아이들을 기르는 데에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일하러 가야 하니까 주로 여동생이나 어머님께 번갈아 맡겨 키웠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엄마랑 떨어져 많이 불안해했는데 몇 개월 지나고 나니까 조금 차분해지더라고요. 저도 아이들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갔어요. 이혼한 지 1년이 넘어가니까 주변에서는 선을 보라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런데 어렵게 안정을 찾은 아이들에게 또다시 낯선 사람을 소개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적어도 아이들이 다 크면 다시 의견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심정으로 택한 ‘헤어짐’의 대가는 혹독했다. 두 사람뿐 아니라 아이들, 그리고 서로의 가족에게도 상처를 남겼다. 1년 후 남편이 아내에게 재결합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내는 단호히 거절했다. 다시 잘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이 다시 흘렀고, 서로에게 마음을 접은 듯했다. 그런데 그즈음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같이 만나보자고 했다. 그날 두 사람은 2년 만에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아내 분께서 먼저 연락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주미하: 제가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 친구의 소개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참 따뜻한 목사님을 만났어요. 어느 날 상담하다가 저도 모르게 이혼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목사님이 남편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전화했는데 선뜻 알겠다며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급작스럽게 재회하게 된 거예요.

배강욱: 저희가 2년 만에 처음으로 둘이 나란히 앉아 목사님을 뵈었어요. 15년이 지나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시고 “두 분이 대화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제가 “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하겠습니다.” 하고 밖에 나가서 아내랑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먼저 재결합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제가 괜찮다면, 재결합하고 싶다고요.

주미하: 남편이랑 같이 목사님을 뵙기 전, 상담하면서 남편과 성격이 너무 안 맞아서 이혼했다고 말씀드리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크면 고장났다고 버리지 않고 볼륨을 조절하지요? 사람의 마음은 기계보다 더 세밀해서 마음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어요.” 이혼을 결심할 때는 앞으로 남편과 사이가 좋아질 방도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게 끝이 아니구나. 조율하며 살 수도 있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이후 며칠 간 깊이 생각했어요. 스스로 ‘내가 가진 나름의 잣대로 남편이 틀렸다고 판단했는데 그 잣대가 정말 정확했던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무엇보다, 늘 제 생각대로 살아왔는데 그 결과가 너무 힘들었잖아요. 그땐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시의 내 생각이나 지금까지의 기준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한번 가보자.’ 그런 생각으로 어렵게 남편에게 재결합을 이야기했어요.

남편은 아내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두 사람은 새롭게,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때 양가 부모님도 기뻐하셨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배강욱 씨는 그날, 부부가 아이들 방으로 가서 엄마 아빠 아이들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웠던 그 순간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오랫동안 헤어졌기에 가족이 더 소중했을 것 같아요.

배강욱: 재결합하고 나선 아내랑 아이들이랑 거의 매주 여행을 다녔어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같이 놀러간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지금은 딸 아들이 다 커서 저희 품을 떠나 있을 때가 많은데, 가끔 연락하면 ‘엄마 아빠 같이 밥 먹는 모습, 산책하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해요. 그게 좋은가 봐요.

주미하: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것, 저녁이면 다 같이 근처 초등학교에 산책하러 나가는 것, 함께 TV를 보며 웃는 것….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행복한 일, 감사한 일이라고 느꼈던 적이 없는데 재결합하고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소소한 일상들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전에는 마음에 ‘나’라는 존재가 너무 커서 제 삶에 주어진 감사나 행복들을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배강욱: 저도 전에는 제가 잘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아갈수록 제가 지금 누리는 것,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 아내와 마주보며 차를 마신다는 것, 이 모든 일상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느껴요.

다시 마음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주미하: 처음에는 ‘잘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에 살갑게 다가가 대화해 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그동안 이야기를 워낙 안 하고 살아서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좀 어색하고 서툴지만 가끔 남편 입장에서 생각해 봐요. ‘내가 내 일 하느라 바빠서 남편 밥도 잘 챙겨주지 못하고 가정 일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남편은 그게 섭섭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매일 그런 생각을 하진 않고요. 예전처럼 짜증낼 때도 있어요(하하).

배강욱: 저희가 살아가는 겉모습은 거의 비슷해요.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희끼리 의논해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을 때면 저희를 다시 만나게 해주셨던 목사님을 찾아가는 거예요. 자주 가지는 않지만, 살다가 어려울 때 우리 가정이 정말 행복하기를 바라는 어른을 찾아가서 묻고, 또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저희가 잘못해도 바르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편하고 든든해요.

주미하: ‘내 인생은 내가 만든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그런데 인생을 살아갈수록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껴요. 남편과 아내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게 맞지만, 저희 부부가 헤어졌을 때 다시 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분이 없었다면 어쩌면 저희는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죠. 인생은 나에게도 달려 있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후, 주말을 보내고 있는 부부에게 다음 일정을 물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군에서 제대할 아들을 위해 집도 정리하고, 필요한 음식과 물건들을 사며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했다. 아들 이야기에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가족이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자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이들이 스스로 했던 선택을 되물리고 다시 알량한 간섭과 구속의 세계를 즐겁게 맞아들이기로 마음을 바꾼 그 날이 없었더라면, 제대하는 아들을 두고 서로 눈치만 봤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위대한 번복이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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