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머로우를 즐겨 읽는다. 내 손주들이 볼 잡지인데 내게도 필요한 내용들이 많다. 지난 호에서 ‘함께하는 맛을 아는 사람들’을 읽다가 이번엔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펜을 들었다.

2019년 가을,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폐암 4기였다고 한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많았고 아내와 이혼한 후 혼자 살던 친구였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이가 일흔에 가까울수록 병들고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의 소식이 자주 들렸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다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보다 더 두렵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혼자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병들어 외롭게 죽어갈 걸 생각하면 무섭고 두려웠다.

30년 전 나는 부족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당시 나는 일확천금을 벌어보려고 특허 공부에 매달려 세월을 보냈고, 어려운 형편에 시작했던 사업은 결국 실패했다. 나는 돈을 벌려고만 했지,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줄 몰랐다. 빚더미에 앉은 우리 가족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지칠 대로 지쳐서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혼을 택했다.

그렇게 홀로 사는 삶이 시작됐다. 외로움은 수십 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고통스러웠다. 그래서일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그가 떠나는 걸 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나도 기회가 오면 죽어야겠다고. 더 살아봤자 그 친구처럼 혼자 병들어 죽어갈 게 빤하다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내게 그런 기회가 바로 주어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십니까?” 아내와 이혼한 후 나는 한동안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그저 조용히 교회를 오가며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목사님은 가끔 안부 연락을 주셨기에 그날도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셨다. 맞선을 보면 어떻겠냐고.

내 나이 일흔둘, 누군가를 먹여 살릴 능력도 없으며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지 않나.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목사님과 아들딸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결국 그 자리에 나가 앉았다. ‘누군지 몰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만 좀 나누다 오자’라는 마음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살아온 삶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나처럼, 그분도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이 나이에 누군가를 부양할 능력이 없다는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의외였다.

“마음이 흐르면 되지요. 함께 살면서 굶으면 함께 굶고요. 다른 거 욕심 부리지 말고 말 그대로 함께 살면 어떨까요?” 그 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죽을 기회를 보며 살던 내게, 어떻게든 함께 살아 보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는 죽음이 더 가까운 나이에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새로운 출발을 택했다. 얼마 후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같이 찍고, 중매를 선 목사님께 축복 기도를 받는 것으로 조촐하게 식을 치렀다.

그렇게 5개월이 지났다. 우리는 어디 밖에 나갔다 오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다. 혼자 가던 교회를 아내와 함께 가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아들딸들에게 문자로 보내주는 게 우리의 낙이다. 별다를 게 없는 일상일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꼭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아내는 특히 내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 해주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감동하고 좋아한다. 그런 아내를 보고 있으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나를 좋아하는 걸까. 도무지 모르겠네.’

인생 저물녘에 만난 우리는 앞으로 잘 살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남은 시간을 둘이 함께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며칠 전 아내와 산책하러 나갔더니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매서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외로움만 가득했던 독거노인에게 따뜻한 봄을 선물해준 아내가 고맙고, 또 고맙다.

글 김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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