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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 그 사이에서
이한규 | 승인 2021.01.06 16:59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격, 자신의 장점, 자신의 단점, 자신의 능력 등 자신에 대해서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그리고 내 눈으로 본것, 내 귀로 들은 것, 내 상식으로 판단한 것을 믿고 살 때가 많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내가 틀림없이 옳다고 판단했던 것들이, 내가 맞다고 확신했던 것들이 너무 틀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승우 선수의 핑크빛 머리

몇 년 전이었다. 한번은 누가 우리나라 청소년 축구 대표 선수였던 이승우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스포츠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TV를 잘 보는 편도 아니어서 그날 이승우라는 축구 선수에 대해서 처음 들었다.

그런데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갔더니 마침 청소년팀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이발소에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승우 선수는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요, 장래가 촉망되는 아주 탁월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 저 선수가 말로만 들었던 이승우로구나.’ 하고 경기를 보는데, 듣던 대로 정말 축구를 잘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강렬한 핑크빛으로 물들인 그의 머리였다. 나는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가 되어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교과서적인 고정관념이 마음에 많이 깔려있었다.

그날 나는 종횡무진하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승우를 보면서 ‘그래, 축구는 참 잘한다만 머리는 왜 핑크빛으로 물을 들여가지고…? 저러니까 어린 학생들이 그걸 본받아 머리 색깔을 온갖 빛깔로 물들이고 다니지. 교육상 문제가 있어’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잘하는 것은 좋지만 핑크빛으로 물들인 머리는 마음에 영못마땅했다.

 

얼마 후 은행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번호표 순번을 기다리는 동안 잡지를 잠깐 보았는데, 거기에 이승우 선수가 머리를 염색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이승우 선수가 핑크빛 머리로 염색하고 나타나자 누리꾼을 비롯한 여러 매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너무 튄다” “과하다” “자제해라”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8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눈이 침침하여 손자를 잘 알아보지 못하자 할머니를 생각해서 염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두 그 효심을 칭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승우의 할머니는 손자가 18세 이하 대표팀으로 수원JS컵에 참가했을 당시, 손자를 보러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노안이라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중에서 손자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 얘기를 하자 이승우는 경기가 끝난 뒤 미용실로 달려가 할머니가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머리색을 바꾸었다. 그렇게 하면 할머니가 손자를 금방 알아보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색이 바뀌어서 들어온 손자에게 할머니가 이유를 묻자, “저번에 할머니께서 저를 제대로 못 보셨다면서요? 이제 경기장에서 핑크색 머리만 찾으세요. 그게 저예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를 위해 머리 염색을 했다는 대답에 할머니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리 스타일 때문에 손자가 따가운 눈총을 받을까봐 염려가 되었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승우에게 머리 색깔을 바꾸라고 할 것’이라며 “할머니 생각하는 건 기특한데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는가? 할머니 말은 거절 안 하겠지”라며 안쓰러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이승우의 부모가 맞벌이를 하던 시기에 손자를 두 살부터 열 살까지 직접 키운 할머니에게 이승우는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고,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승우에게 할머니는 특별한 분이었다. 그래서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고 할머니를 향한 효성은 지극하고 각별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이승우 선수를 함부로 판단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눈에 내가 속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보지 못하면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구나. 마음을 보는 눈이 뜨인 사람이 제대로 보는 사람이구나’ 하는 가르침을 얻었다.

아이티의 예쁜 아이들

내 아들은 아이티에 살고 있다. 몇 년 전 아들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금세 물이 고였고,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이 만들어 준 웅덩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내 춤을 추며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신나게 뛰어논다.

한참 뛰놀던 아이들은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나무 사이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아이가 나에게 뛰어오자 다른 아이들도 뛰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포위당했다. 갑자기 한 아이가 양손을 활짝 폈다.

나는 늘 그랬듯이 먹을 것이나 돈을 달라는 줄로 알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표시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가려주었다. 이내 다른 아이들도 손을 펴서 내 머리를 가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아이가 소리쳤다.

“비 맞으면 감기에 걸리니까 우리가 손으로 우산을 만들어 줄게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위해 우산을 만들어 주는 아이들 밑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를 못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이처럼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을 향해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늘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야.’

나는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볼 줄 몰랐다. 눈이 녹으면 땅이 보이듯, 편견이 녹아 없어지니 그제야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보인다. 아이티에 살면서 여전히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다. 오늘도 배우고 간다.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들이 되기를 꼭 기도할게. 미안하고 고맙다.

칭기즈칸을 살리려고 죽어간 매

몹시 더운 여름날, 사냥을 하던 칭기즈칸은 심한 갈증을 느꼈다. 어느 골짜기에 이르자 절벽 위에서 그의 머리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목이 말랐던 칭기즈칸은 평소 그가 아끼는 은잔을 꺼내 그곳에 들이대고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디어 몇 모금 모인 물을 마시려는 찰나, 그가 총애하는 매가 잽싸게 날아와 그 잔을 뒤집어버렸다. 다시 은잔에 물을 받았는데 또 매가 날아와 힘들게 구한 물을 엎질렀다. 매우 영리해서 평소에 칭기즈칸이 매를 아꼈는데 두 번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자 세 번째는 물을 받으면서 칼을 빼들었다.

아무리 아끼는 매이지만, 물을 마시려고 할 때마다 방해하니까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가 세 번째 물을 받아 마시려는 순간, 매는 아예 그 은잔을 낚아채 산비탈 아래로 떨어뜨렸다. 칭기즈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단칼에 매의 목을 베어버렸다. 매는 피를 흩뿌리며 공중에서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경고를 했는데도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 너는 죽어 마땅하다.”

그리고 더 이상 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절벽 위로 기어 올라가 직접 물을 마시기로 했다. 칭기즈칸은 거기서 웅크린 모습 그대로 죽어서 썩어가고 있는 거대한 한 마리의 뱀을 보았다. 맹독을 가진 뱀이었다. 칭기즈칸이 그토록 마시길 원했던 물은 바로 독사의 독을 머금은 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휘두른 칼에 죽어간 매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 생명을 구한 매를 내 손으로 죽여버리다니…. 너는 십 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나의 친구였는데…. 나는 오늘 큰 가르침을 배웠다. 화가 났을 때는 아무것도 결심하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났을 때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여 지도자의 덕을 갖추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그 매를 정성스럽게 묻어 주고 훗날 금동상으로 매를 만들었다. 그리고 양쪽 날개에 이렇게 썼다.

“분노로 행한 일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벗은 여전히 벗이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걸고 주인의 목숨을 살린 그 매를 높이 평가하여 몽골의 곳곳마다 매의 동상을 세워서 그 영리함과 충성심을 기리게 했다.

칭기즈칸의 매는 독이 든 물을 주인이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은잔을 낚아챘던 것이다. 매가 하늘 위에서 보고 있는 세계가 있는데, 칭기즈칸은 매가 보고 있는 세계를 보지 못하고 떨어지는 물방울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 목이 마른데 매가 매번 물을 마시지 못하게 방해하니까 그 매를 죽이고 말았다. 그 매가 죽음을 무릅쓰고 주인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칭기즈칸이 죽었을 것이었다. 매가 물을 못 마시게 행동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주인은 매의 마음을 모르고 매를 죽여버렸던 것이다.

칭기즈칸은 죽어 있는 독사를 보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판단이 어리석음을 알았다. 그리고 매가 자신의 생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칭기즈칸의 옳음이 충성스러운 매를 죽이고 말았다. 그는 그 일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고, 그로 인해 한평생 신중하게 처신할 수 있었다.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말했다. “명확한 사실만큼 기만적인 것은 없다.” 때로 우리는 명확한 사실에 기만당할 때가 있다. 사실과 진실은 다를 수 있다.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한규

고향이 경북 성주인 그는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뒤, 교단에서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과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고,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 및 개인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본지 외에 신문에도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다.

이한규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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