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과수원에서 만난 반정현, 안순영 부부의 행복 스토리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사실이 있다. 홀로 아픔을 겪을 때 괴롭다는 것, 배고플 때 한 끼 밥에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 마음이 맞는 사람과 대화할 때 즐겁다는 것 등등. 최근 안동 깊은 산골 과수원에서 휠체어를 탄 남편과 아내가 잘 익은 사과 향기보다 더 진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부가 사이 좋게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산이 좋았던 우리

가을 냄새가 짙게 풍기는 11월 초, 반정현 안순영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빨강, 노랑 등 가을 색이 내려앉은 산을 감상하며 굴곡진 길을 한참 올라가니 첩첩산중의 절경이 펼쳐졌다. 신선이 나올 법한 산중에 위치한 부부의 집. 그 옆에는 계단식으로 펼쳐진 드넓은 사과밭이 있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잠시 들어온 기분이었다. 얼마 전, 마지막 사과 따기를 마친 부부는 내년 농사를 위해 사과나무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는 작업을 남겨놓고 있었다.

사과 과수원은 충북 태생인 남편 정현 씨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이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꿈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꿈은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싹이 나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리산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 순영 씨는 친구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간이 날 때마다 산을 다녔다고 한다. 정현 씨 또한 산을 좋아해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만 되면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한번은 지인의 부탁으로 지리산 산장을 관리하다가 혼자 지리산을 찾아온 아내를 만났고, 첫눈에 반했다.

“여자 혼자 큰 배낭을 메고 험한 산을 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산을 참 좋아하기에 아내의 대범하고 씩씩한 모습이 무척 예뻐 보였어요. 그래서 커피를 한 잔 주면서 같이 산행을 하자고 말했지요.”

산을 좋아한 두 사람의 최고 데이트 장소는 산이었다. 이 산 저 산 다니며 만난 지1년이 되던 날, 두 사람은 지리산 어느 평야에서 늠름한 신랑과 들풀로 만든 부케를 든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하객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에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경북 영천으로 이사를 했어요.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 교육도 잘 시키고, 얼른 좋은 집도 사고 싶었지요. 그런데 삶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잖아요. 남편이 과일 도매 일을 하다가 큰 빚을 졌고, 그 빚 때문에 다투는 날이 많았어요.”

삶에 지쳤을 때 두 사람은 다시 산을 떠올렸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안동으로 이사를 했고, 어려운 형편에도 이웃의 도움을 받아 2008년에 꿈에 그리던 사과 과수원을 샀다. 산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산에 집을 짓고, 산골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전혀 달라진 일상

남편 반정현 씨는 누구보다 아침 일찍 과수원에 갔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일했다. 순영 씨 또한 남편을 도우며 부지런히 살았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사과 농사가 잘 되었고 빚도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2년 가을, 사과 수확이 한창인 과수원에서 아내 순영 씨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동시 길안면 산골짝. 계명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보면 해발 500미터에 반정현 안순영 부부가 관리하고 있는 '차담원예농원 사과 과수원'이 나온다. 사계절 모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안동시 길안면 산골짝. 계명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보면 해발 500미터에 반정현 안순영 부부가 관리하고 있는 '차담원예농원 사과 과수원'이 나온다. 사계절 모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9월이었어요. 태풍 피해를 조사하러 사람들이 과수원에 온다고 해서 남편이 급히 경운기를 몰고 나갔는데, 오후에 낯선 사람들이 집을 찾아와 남편이 다쳤다고 하는 거예요. 급히 달려가 보니 가파른 길 옆에 경운기가 엎어져 있고, 남편은 길 위에 쓰러져 있었어요. 구급차가 왔고, 급히 병원으로 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남편의 상태를 보더니 “신경이 눌려 전신 마비가 되었는데 회복되는 건 신의 영역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어요. ‘사과 농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드는데, 처음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날 남편 정현 씨는 경운기에서 떨어진 직후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린 뒤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어요. 의식이라곤 얼굴밖에 없어서 표정으로 겨우 물을 달라는 표현이나 할 수 있었어요. 병원에서는 전신 마비 상태로 평생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야 제대로 좀 살아보려고 하는데…’ 하며 억울한 마음도 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생각일 뿐,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입원한 지 5개월 후 정현 씨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스스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남편 돌보기와 집안 살림은 물론 농사일까지 다 순영씨의 몫이 되었다.

“함께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니까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과수원 일은 일꾼을 써야 하기에, 그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려면 운전을 해야 했어요. 겁이 많아서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는데 살아야 하니까 ‘무섭다’ ‘못 한다’ 말할 수 없더라고요.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갔어요.”

남편 없이 혼자 일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하는 일, 기계가 갑자기 고장나는 일 등 하루에도 몇 번씩 난감한 상황을 만났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게다가 일하다가도 두 시간에 한 번씩 꼭 집에 들어가서 남편을 살펴야 했다. 과수원 일은 힘들 때 일꾼을 부를 수라도 있지만 집안 살림이나 남편을 보살피는 일은 도움을 구할 곳도 없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우리에게 찾아온 ‘감사’라는 빛

예기치 못한 사고로 두 사람의 인생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을 때, 따스한 빛이 희미하지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고 후 처음 맞는 봄이었어요. 우리 마당에 벚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그 해에 꽃잎이 유난히 많이 떨어진 거예요. ‘이렇게까지 많이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 거야?’라고 투덜거렸어요. 마당이 늘 깨끗했으니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남편이 마당의 꽃잎을 쓸었던 거였죠.”

사고가 있기 전 영천에서 안동으로 막 이사를 왔을 때, 순영 씨는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것을 싫어했지만, 남편과 크게 다툴 때면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교회로 향했다. 그때마다 목사님은 도리어 그에게 “남편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해요.”라고 했다. 그땐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홀로 집안일을 하고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문득문득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는지 느끼기 시작했다. 아내 순영 씨는 자신이 남편의 큰 그늘안에서 살아왔음을 발견했다.

가지치기 작업을 하다 연신 뒤를 돌아보며 남편에게 이것저것 묻는 순영 씨.두 사람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가지치기 작업을 하다 연신 뒤를 돌아보며 남편에게 이것저것 묻는 순영 씨.두 사람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빚도 지고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남편이 가장으로서 애를 많이 썼구나.’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어요. 사고 전에 남편이 과수원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장을 보는 것이나 청소 등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었거든요. 그런데 그땐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 정현 씨의 몸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입원 중에 생겼던 욕창이 심해졌어요. 그것도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몸에 힘이 점점 빠져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죠.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가도 진통제만 주더라고

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이게 인생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오랜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남편을 지켜보던 순영 씨는 어느 날 새벽, 남편을 씻기고 옷을 단정히 입혔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오늘 서울에 계신 목사님이 이 근처에 오신대요. 내가 가서 목사님을 집으로 모셔올게요. 우리 기도 받아요.”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그녀는 안동 근처 청송에서 반나절을 기다려, 특별 모임에 참석한 목사님에게 남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못난 나를 만나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 나를 버리지 않고 기도받게 해주려고 새벽부터 서두르는 아내가 그저 고마웠죠. 사실, 사고 전에는 아내가 교회에 가는 것이 싫어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날은 아내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날 목사님을 만났는데 ‘내가 뭐라고 이분이 이 깊은 산골까지 와서 나를 만날까’ 하고 감사했어요. 목사님이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반드시 도우실 겁니다’라고 기도하는데, 이상하게 ‘그렇다면 내가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정현 씨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은 아내 순영 씨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이후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남편이 밥맛이 없어서 안 먹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부터는 매끼 조금이라도 밥을 먹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몸이 점점 좋아졌어요. 지인으로부터 욕창에 좋다는 약을 받아 상처도 깨끗이 낫고, 몸에 힘이 생기면서 상체와 팔이 조금씩 움직였어요. 그때부터 전동휠체어도 탈 수 있었어요.”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휠체어를 타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다닐 수 있다는 것…. 정현 씨는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전에는 힘이 없어서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큰 소리로 이야기도 하고 전화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취재를 하던 중에도 그의 태블릿으로 전화가 왔고,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몇 사람과 통화하며 짓궂은 장난도 치고 웃기도 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이유

요즈음 두 사람의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아침을 함께 먹고 아내는 사과밭으로 나가 일을 시작하고, 남편은 탭을 활용해 전날 들어온 사과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할 곳을 정리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해 날씨는 어떤지, 어떤 비료를 주어야 하는지, 요즘에는 어떤 플랫폼으로 사과를 홍보하고 판매하는지 공부한다.

“제가 과수원에 나가 일하긴 하지만 사과에 대해서는 남편이 가장 잘 알고 있어요. 남편이 알려주는 대로 일을 하지요(웃음).”

화창한 날이면 정현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순영 씨와 함께 사과밭을 이리저리 살핀다. 정현 씨는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순영 씨는 남편이 자신을 보며 미안해 할까봐 더 씩씩하게 일한다. 작은 체구의 아내는 이제 사과 박스를 번쩍번쩍 들어 나를 만큼 힘이 세졌다.

순영 씨는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남편과 마음이 흐르는 기쁨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느끼며 살기에 힘들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이 웃으며 산다고 한다. 정현 씨 또한 같은 마음이다.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은 종종 이들 부부 집에 모여 일도 돕고, 함께 식사도 한다. 멀리 사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시죠? 언제 한번 과수원에 놀러 오세요!”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은 종종 이들 부부 집에 모여 일도 돕고, 함께 식사도 한다. 멀리 사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시죠? 언제 한번 과수원에 놀러 오세요!”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나잖아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있느냐’라고 생각해요. 제게 천사 같은 아내가 있고, 저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에요.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아내나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았어요.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이제야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정현 씨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며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면서 기자에게 소개했다.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곳에 살지만 두 사람은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스쳐가는 말 한마디, 표정 속에서도 행복이 배어 나왔다.

부부는 과수원을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누구든지 생각날 때 들를 수 있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 꿈이 생기면서 오래된 고목이 심겨 있던 과수원에 새로운 품종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더 달고 맛있는 사과가 열리고 과수원이 무척 좋아졌다. 정현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과수원을 만들고 싶어요. 얼른 다시 일어나서 아내와 함께 땀 흘리며 일할 날도 올 거라고 믿어요.”

안동 산골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기자는 환한 사과 꽃처럼 아름다운 두 사람을 만나고 돌아왔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실패를 만난다. 실패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고 힘이 빠질 때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그제야 문득 나와 함께 있어준 사람들이 고마워진다. 산골 과수원 부부는 많은 것에서 감사를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기자는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를 만날 때 그것이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구나. 도와주고 붙잡아줄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도 감사를 느끼며 행복해질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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