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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변신’을 꿈꾸며카프카의 <변신>
심문자 | 승인 2020.09.08 15:43

어느 날 내가 벌레로 변해 가족에게마저 버림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버티고 버티다 인생의 무대에서 초연히 물러나는 것이 최선일까?

ⓒ Luis Scafati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어떨까? 말도 할 수 없고,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흉측한 벌레가 되어 있다면 끔찍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어느 날 갑자기 실직하거나 오랜 시간 마음을 쏟아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마치 벌레가 된 듯한 자괴감에 휩싸인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걱정도 해주지만, 점점 잊혀져가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간다. 그래도 가족들만큼은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마저도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간의 내면을 엑스레이로 찍은 것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Luis Scafati

의료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하던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출근해야 했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다음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 때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리들이 꿈틀거린다. 잠긴 방문 밖에서는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깨우고, 회사의 지배인도 집으로 찾아와서 근무 태만이라며 압박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면서 사장님에게 보고하겠다고 경고한다.

그 말에 그레고르는 안절부절못하며 곧 일하러 나가겠다고 소리쳐 말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너무 다급해 그는 열쇠를 입으로 간신히 돌려서 잠긴 문을 열고 나온다. 그 순간,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까무러치듯 놀라 도망친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위협하며 방으로 밀어넣은 뒤 문을 닫아버린다.

ⓒ Luis Scafati

그동안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그의 수입에 의존해서 살아왔다. 파산한 아버지의 빚을 갚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그레고르는 회사에서 가장 어려운 영업직판매사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갑자기 벌레가 되어 일도 할 수 없고, 이제는 상한 음식을 더 자연스럽게 먹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만 그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기절하고, 분노한 아버지는 사과를 마구 던져 사과 하나가 그의 등에 박히고 만다.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들은 하녀를 내보내고 일자리를 찾아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여동생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바빠지자 그레고르는 일하는 할멈에게 맡겨진다. 비어 있는 방 하나에 하숙생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레고르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가 된다. 짐으로 가득 찬 방 안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그레고르는 어느 날 하숙생들을 위해 연주하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방에서 나와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천천히 기어간다. 하숙생들은 집안에 있는 벌레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해명을 요구하며 즉시 방을 비우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동안 참고 있었던 여동생이 소리친다.

ⓒ Luis Scafati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 있지요?”

그날 밤, 아버지가 던져 등에 박힌 썩은 사과 때문에 힘겨워하던 그레고르는 자신의 죽음이 가족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며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다음날 가족들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 교외로 소풍을 떠나면서 가족의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운다.

<변신>을 읽다 보면 ‘인간의 불편한 진실들’이 나타나 눈살이 찌푸려지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가족이니까’ 혹은 ‘과거에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으니까’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가족들이 불쌍히 여기고 보살펴주려 하지만 결국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리고마는 장면을 읽고 있노라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이기적이고 악한 면모들이 떠오른다.

파산한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는 아들, 음악학교에 가고 싶은 여동생의 학비를 대주는 오빠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그레고르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흉측한 아들을 보고 기절하고,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를 던지며, 동생 그레테는 저건 오빠가 아니라고 소리친다. 책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가려져 있던 가족의 마음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더 징그럽게 느껴진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 그는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의 틀에서 벗어난 존재다. 그것은,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법관이 되지 못하고 보험재해국에서 일하며 밤에 원고를 쓰면서 근근이 살아가던 카프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그의 삶은 아버지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간다.

그런 카프카에게 어느 날 벌레가 된 자신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변신>은 카프카가 폐결핵에 걸린 후 쓴 원고였다. 그는 이 원고가 발표되지 않기를 원했지만 친구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카프카의 일기장과도 같다.

벌레가 된 순간에도 자신을 걱정하기보다 지배인에게 ‘사장님에게는 보고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며 외면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이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더 많은 실적을 내야 했기에 일하는 동안 직원들과는 한 사람과도 친해질 수 없었다는 고백도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다만 빚을 갚아야 했고, 어김없이 새벽 기차를 타고 출근해서 쉴 새 없이 일해야 했고, 그렇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회사에서는 물론 가족들에게마저 버림받는 그레고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열심히 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잘하고 싶지만 어느 날 자신의 약한 모습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지만 점점 불편해하고 외면한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레고르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며 산다. 나 또한 좋지 않은 모습들은 가리고 괜찮은 성품, 그럴 듯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 위치를 잃지 않으려고 버둥댔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손 쓸 새도 없이 벌레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때가 있다. 스스로 자신에게서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비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제2의 그레고르가 되는 것이다.

거기가 마지막일까? 나를 저버린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인생의 무대에서 초연히 물러나는 것이 최선일까? 벌레 같은 나를 밀쳐내지 않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 사람으로서 가치를 잃어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등을 돌리지만, 벌레 같은 나를 가치 있게 여기며 새롭게 변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 그러면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모두 꽃이 되고 싶지만 지렁이도 농부에게는 소중한 존재이듯, 형편없는 나를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서 힘을 얻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서부터 따뜻하고 행복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실존은 더 이상 서글픈 죽음을 맞이하는 그레고르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레고르 집에서 일하는 할멈이 아니라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면, 흉측한 모습으로 골방에 갇혀 지내면서도 노래하는 그레고르가 탄생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다시 벌레의 모습을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을지 모른다. 겉모습은 같지만 마음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채 말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면서 또 한 번의 변신이 그리운 이유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내가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되었을 그때에도 소망을 이야기하는 존재가 있어서 그 마음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랑을 만난 사람은 형편없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이번에는 멋지게 ‘변신’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쓸모없는 벌레처럼 변신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서글픈 일만이 아닌, 그런 자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넘어 ‘진정한 변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벌레 같은 모습이 드러날 때 감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순간임을 생각한다면, 우리 삶은 소망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변신>
1912년에 집필되어, 월간지 ‘디 바이센 블래터’에 처음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실존주의자로, 인간 존재의 불안과 운명 그리고 부조리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신>은 그의 작품 중 백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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