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 없다 ④ 마음의 양식, 책

스마트폰이나 전용 리더기로 읽는 전자책엔 나름의 좋은 점이 많다. 그런데 아쉬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감동의 전달과 공감 확산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자책은 나밖에 볼 수 없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후배에게 물려줄 수도 없고,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없다. 즉 읽은 책의 공감 공유 및 확산이 어렵다.

우리는 좋은 것을 알고, 가지고 있을 때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나눠주고 싶어한다. 혼자서만 좋은 것을 알고 가지려는 태도는 기쁨을 반으로 줄여 사는 어리석은 일이다. 누가 추천해준 책, 선물로 받은 책, 저자의 친필 사인을 받은 책은 더 소중하고 더 관심을 갖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종이책 읽기를 주변에 권장한다.

인생의 책 스피치 대회에서 이미선 참가자의 사연은 선물 받은 책을 읽고 자신의 오랜 고민을 해결한 이야기라서 더욱 뭉클하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마흔이 되도록 혼자 살다가 어느 날 아들 둘을 얻으며 새엄마가 된 이미선입니다. 제 인생에서 새엄마의 삶을 빼면 설탕 없는 아이스크림과 같습니다.

우연히 선물 받은 책을 읽으면서 응어리진 내 마음을 쓰다듬고 의문을 풀어진 일이 있는데 바로 이순원 작가의 <오목눈이의 사랑>입니다. 뱁새인 오목눈이가 알을 낳으면 그 둥지에 뻐꾸기가 자기 알을 몰래 둡니다. 그리고 뻐꾸기 알은 하루이틀 먼저 부화해서 오목눈이의 알을 모두 밀어 떨어뜨리지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 오목눈이는 몸이 부서져라 큰 새끼를 먹여 살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뻐꾸기 새끼가 제 어미의 소리를 듣자 한치의 미련도 없이 ‘뻐꾹’ 하며 떠나가버리는 겁니다.

저는 새엄마로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나만 잘하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라고 막연한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새엄마의 삶은 녹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계모라서 그래.” “네까짓 게 뭔데 분란을 일으켜!” “엄마는 무슨 엄마야. 남의 아들을 왜 혼내!” 상상 못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책의 주인공 오목눈이 ‘육분이’는 정성을 다해 키운 뻐꾸기 새끼 ‘앵두’가 말도 없이 떠나버리자 그리움과 원망으로 고뇌하는 모습이 제 인생과 오버랩되면서 육분이가 어떻게 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육분이는 어느 날, 결심을 합니다. 품은 새끼 ‘앵두’를 찾아 떠나기로요. 먼 길 1만9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힘든 여행을 하며 육분이는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왜 뻐꾸기들은 남의 둥지에 알을 몰래 넣고 부화시켰다가 나중에 데려가는 건지, 왜 오목눈이들은 봄에는 자기 새끼를 품지만 여름에는 뻐꾸기 새끼를 품어 키울 수밖에 없는지…. 육분이가 품었던 고뇌들이 육분이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듯, 나의 고민도 모든 새엄마들의 고민일 것 같아 다음 글이 기대되었습니다.

그때 철학을 하는 오목눈이가 말합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도 알지 못할 어떤 무엇이 우리 오목눈이에게 맡긴 뻐꾸기 어미로서의 몫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봐라, 지난여름 품었던 그 큰 새끼들이 사랑스럽지 않았는지….”

육분이가 생각해보니 뻐꾸기 새끼가 사랑스러웠습니다. 저도 우리 두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씩 아이들의 반항적인 말과 행동은 제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육분이는 처음으로 뻐꾸기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저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힘들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고 살고 있는 것이었어요.

먼 여행길에서 육분이는 시클리드와 메기 알의 관계에 대해, 감돌고기에 대해서도 듣습니다. 바다에 자기와 똑같은 입장의 물고기가 있는 것을 보며 자기만 억울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자연의 조화라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 큰 사랑과 꿈을 마음에 품습니다.

저도 종종 제 삶이 버겁고 때로는 억울한 마음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 속에 나타난 창조자의 섭리, 책에서 말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나만 억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요. 살면서 ‘왜 하필 나만?’ 이라는 생각은 나를 더욱 억울하고 불행한 늪으로 끌어갈 뿐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인간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신의 섭리, 초월성을 인정할 때 질서와 지혜가 보이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선물 받은 책을 읽다가 책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체험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혹시 내가 친구에게 선물해준 책이나 다 읽고 자선단체에 기증한 책을 누군가 읽어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문장 한 줄을 발견했다면, 그 이상의 가치와 보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종이책은 감동의 순환고리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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