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감독 신보석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글과 사진 중심의 정보를 전달하는 블로거들이 한창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일상을 영상에 담아 공유하는 유튜버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튜버 스타 크리에이터들은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들이 제작한 영상의 파급력이 상당하다. 그런 그들과 함께 영상을 제작하며 ‘누구나’ 자신의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알리는 영상 감독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신보석 영상 감독을 만났다.

31살에 그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며, 아내 그리고 세 딸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오붓하게 살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알고 있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무슨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그는 2004년에 일본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겪은 일들과 봉사단원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시나리오를 짜고 무대를 연출하는 게 아주 재미있었다. 그렇게 50편에 가까운 시나리오를 쓰면서 밤을 새울 때도 많았지만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눈동자와 감정선이 움직이는 걸 볼 때면 피곤한 것쯤은 아무 문제가 안됐다.

하루는 아내에게 “나는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에 맞춰 기획하고 감독하는 걸 좋아하는데, 영화감독을 해보면 어떨까?”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오는 대답은 “미쳤어?” 한마디였다.

“그 후 가까운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고 하니 다들 피식피식 웃더라고요. 저는 진지했는데 말이죠. 그냥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개인’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인에게 그 어떤 영화보다 가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사진 앨범을 소장하듯 자신의 삶을 담은 영화를 가질 수 있는 시대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표를 던지고 영상을 시작하다

그는 결국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영상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인지 불문하고 찾아다녔다. 대학교수부터 방송국 PD,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나 영상을 배우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빠르게 영상을 배워나갔다.

“저는 촬영, 편집, 조명, 연출 등 영상에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부산의 한 프로덕션을 알게 됐습니다. 소규모라 기획부터 편집까지 영상과 관련된 업무를 전반적으로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프로덕션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조건은 영상 전공자 출신의 2년 이상의 방송 관련 경력을 가진 자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에겐 자격 조건이 없었다. 그는 프로덕션에 전화해서 한 번만 만나달라고 부탁했다. “이력서를 써서 내세요!”라는 거절을 몇 번 받고 난 뒤, ‘직접 촬영한 영상을 가져와보라’는 답을 얻어냈다. 부랴부랴 영상을 찍어서 편집한 뒤 부산으로 갔다.

“프로덕션의 이사님과 PD님 앞에서 제가 찍은 영상을 보여드렸습니다. 영상이 다 끝났는데, 두 분 다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서로 먼저 이야기해주길 기다리는 눈빛인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영상을 시작하게 됐는지, 내 꿈은 무엇인지 쭉 이야기했죠.”

그 당시 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고 한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고, 죽을 각오로 사표를 던졌고, 꿈 하나만을 향해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영상 감독으로 비상

출근 첫날, 그를 면접했던 이사가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보석아, 나는 평생 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많은 영상 감독들을 배출했어. 프로덕션에서 경력을 쌓아 독립하는 사람도 있고, 다큐멘터리 팀을 꾸리는 사람도 있고, 유명한 영화감독, CF 감독이 된 사람들도 있지. 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키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남았는데, 실력은 부족하더라도 됨됨이가 된 사람을 뽑고 싶었다. 네가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될지는 내가 잘 모르지만, 가르쳐줄 수 있는 데까지 가르쳐줄 테니 우리 같이 해보자.”

그렇게 그는 카메라 잡는 법, 다양한 영상 장비를 다루는 법, 기획부터 편집, 촬영장에서 감독이 가져야 할 태도까지 교육받았다.

“저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행복합니다. 그분께서 항상 이야기하신 게 ‘모든 장비는 장난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촬영 장비가 아닌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조작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카메라를 집으로 가져와서 만지면서 배웠습니다. 조립하면 8m가 넘는 지미집 장비를 차에 싣고 집에 올 때면 제가 생각해도 미쳤다 싶었지만, 언제 마음껏 만져볼 수 있겠어요?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지만 정말 즐거웠죠.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저는 진짜 영상 감독의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영상 감독이 된 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호주 출신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총괄 감독이 그를 지목해 SHELL KOREA 홍보영상을 찍었고, 모두투어 현지 로케이션, 각종 CF, 제주항공과 부산시 홍보영상 등등의 작업을 하며 커리어를 쌓았고 경상남도 내에서 실력 있는 촬영 감독으로 인정을 받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촬영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들. 지금도 그들과 인연을 이어가며 다양한 영상을 찍고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촬영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들. 지금도 그들과 인연을 이어가며 다양한 영상을 찍고 있다.

 

새로운 네트워크 플랫폼을 만들다

그는 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져갔지만,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광고주가 요구하는 사항에 맞춰 기획하고,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촬영했다.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때, 그는 프로덕션 회사를 나왔다.

“대부분의 프로덕션은 기업을 상대로 영상을 제작하다 보니 규모도 크고 제작 비용도 비쌉니다. 그래서 한 개인이 자신의 영상을 찍고 싶다고 프로덕션을 찾진 않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촬영 감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의 영화를 제작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프로덕션을 나와서 새로운 회사를 차렸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입니다.”

그가 만든 ‘오마이필름 Oh My Film’은 국내 영상 촬영 감독들을 한 네트워크에 모아 클라이언트와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다. 클라이언트들은 감독들의 촬영 영상을 보고 원하는 감독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현재 ‘오마이필름’에 참여하고 있는 감독은 920명에 이르는데, 앞으로 영상 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오마이필름’에 접속하게 될 것이라는 게 신 감독의 설명이다.

“더 많은 감독들을 유입하기 위해 영상 공모전,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홍보영상 조회 수가 84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공식 사이트에는 하루에 3천 명이 들어왔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상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영상 디렉터들이 모이는 가장 큰 네트워크를 만들어, 영상 제작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원하는 디렉터를 만나고 자기만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죠.”

크리에이터들과 협업

신 감독은 현재 공대생, 민경하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튜브 스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현재까지 그들과 함께 작업한 영상은 74편. 이중 가장 높은 조회 수는 3,000만 뷰를 기록했다. 그들은 좋은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오마이필름’은 수백만 명의 구독자들에게 회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 또한, 크리에이터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이나 지자체들을 연결하며 영상 시장에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이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인기는 연예인못지않습니다. 유튜브의 발전은 개인 영상의 시대가 열렸다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일 정도로, 개인이 단순히 영상을 소비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신만의 영상을 제작하고 기획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덕분에 저의 꿈은 더 빠르게 이뤄질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촬영장에 갔다. 신 감독의 세 딸들이 출연하는데,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4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 2시간이나 촬영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감독이자 아빠의 지시를 따라 계속 연기하는 아이들은 그 어떤 아이들보다 즐거워 보였다. 아마 그 시간들이 한 편 한 편 그들에겐 소중한 영화 한 편이 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며 웃을 수 있는 추억 소환 장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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