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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내 기억 속의 아버지, 그리고 나를 사랑한 아버지
차유경 | 승인 2020.05.12 10:33

우리 아빠는 365일 빠짐없이 술을 마실 만큼 술을 좋아하셨다. 마시는 것에서 끝나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 세상의 많은 문제가 술 때문에 일어나듯이 우리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술에 취한 아빠 때문에 일어났다. 특히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에는 반발심이 쌓여갔다.

하루는 술에 취한 아빠한테 대들다가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았다. 엄마가 아빠를 말리지 않았다면 뼈가 부러지도록 맞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는 집을 떠났다.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난 게임에 빠져 살았다. 게임이 재밌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낮부터 밤까지 게임을 하다 아침이 오면 이불을 덮고 자는 척했다. 줄곧 다니던 학교에 가는 것도 지쳤다. 나중에는 아침이 오는 게 너무 싫고 죽고 싶은 마음에 주방에서 칼을 꺼냈다. 그런 내가 무서워서 눈물이 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고 있는데 아빠가 방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너 요즘 왜 이래! 학교 안 갈 거야?”

그 순간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집을 나와 엄마에게 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 아빠는 몇 번이나 엄마를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나는 도망치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 소송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드디어 아빠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빠를 다시 받아주기로 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예전부터 아빠는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괴로움이 너무 커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거라고 하며, 법대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막노동과 새우잡이를 하며 살아온 아빠에게 희망이라곤 우리 가족뿐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집에서 만난 아빠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고, 술에 취해 붉어진 눈을 볼 때마다 날 때리던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빠는 더 이상 무섭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아빠가 못마땅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때 널 때려서 미안하다’는 사과인데, 그때의 일을 싹 잊은 듯이 행동하는 아빠가 이중인격자 같았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질을 내며 아빠를 밀어냈다.

학교에서 아빠 문제로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항상 똑같은 얘기를 들었다. “네가 아빠 마음을 몰라서 그래. 아빠는 널 사랑해. 네가 자식을 낳아보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아빠는 날 사랑한다, 그 말을 듣기가 그렇게 싫었다. 아빠의 사랑 같은 것도 모르겠고, 차라리 아빠와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빠만 빠지면 우리 가족이 완벽하게 행복해질 것 같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일부러 집에서 먼 지역에 있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운좋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말로만 듣던 타향살이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적응하기 어려웠다. 누가 “대학 생활 어때?”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학과 공부는 재밌어요.” 학과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게 재미없다는 뜻이었다. 사실은 학과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닌데 자꾸 엉망으로 흘러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학사경고에 1년이 지나 있었고, 나는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집으로 왔다. 그리곤 전부터 알고 있었던 굿뉴스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찾았다. 주위에 있는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해외봉사를 다녀오면 뭔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막연히 품고 있었는데, 지금이 기회다 싶어 키리바시로 해외봉사를 왔다.

키리바시에 온 뒤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당연히 엄마한테만 연락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코로나19 때문에 아빠가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빠와도 얘기를 해야 했다. 엄마 아빠 둘이서 동시에 “사랑한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떨떠름히 웃기만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지부장님이 자주 시간을 내서 상담해 주셨다.

지부장님도 술을 마시는 아버지 때문에 오랜 시간 고통을 받으셨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하셨다. 지부장님은 아버지의 겉모습에 싸여 보이지 않는, 변치 않는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처음엔 아빠와의 관계를 풀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는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니 내 마음에도 아빠와의 관계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아버지한테 먼저 전화해봐.”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 마음에 있는 얘기를 다 해봐.”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의 아빠를 향해, 아빠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아빠는 아주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아빠는 너한테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떤 원망도 불평도 없었다. 사랑한다.”

그 대답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를 기대했는데, 사랑한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아빠에게 화가 났다.

‘역시 아빠는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거야. 아빠는 그냥 표면적으로만 잘 지내면 되는 거야. 아빠가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야. 내가 받은 상처는 아빠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빠랑은 말도 안 통하고 마음도 안 통해.’

아빠와의 통화가 흐지부지 끝나고, 이어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근데, 아빠가 너 그렇게 때리고 나서 이틀 동안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잖아. 화 풀릴 때까지 때리라면서. 그런데 너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벌벌 떨면서 울기만 했지. 네가 한마디도 안 하니까 아빠도 결국 나가버렸는데, 그때 네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난 절대로 용서 못 해. 아니 절대로 안 할거야.’ 그랬었잖아. 정말 기억 안 나?”

전화를 끊은 뒤 지부장님께 통화 내용을 죽 말씀드렸더니 지부장님이 생각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셨다.

“넌 지금까지 진짜 아빠랑 산 게 아니야. 네 생각과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아버지와 같이 산 거야.”

내가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기억들이 모두 틀린 것이었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사실이었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내 눈을 가려왔던 무엇인가가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키리바시로 해외봉사를 간 차유경 굿뉴스코 단원. 현지 아이와 행복하게 사진을 찍었다.

‘나에게 고통만을 준 아빠,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아빠.’ 나는 줄곧 그게 진짜 아빠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건 진짜가 아닌 허상이었다. 술에 취한 아빠의 얼굴 위로 겹쳐 보이던 과거의 아빠, 날 때리던 아빠. 그 허상을 벗겨낸 자리에, 술에 의지해야만 쌀쌀맞은 딸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마음 여린 진짜 아빠가 있었다. 그 아빠는 날 한 번 때린 뒤로 내게 손도 댄 적 없었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딸을 기다려주며,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계속 사랑한다 말해주던 아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사랑을 믿지 않으며, 생각에 갇혀 아빠의 마음을 수없이 짓밟았던 나의 어리석은 모습이 보였다.

지금껏 쌓아올렸던 오해의 벽이 무너지면서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이 내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비단 아빠뿐 아니라 엄마와 관계에서도, 선배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내 생각이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왔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도 볼 수 있고,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준 수많은 분들의 마음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부장님은 봉사단원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부모님과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다. 나는 지금 설레는 마음으로 아버지와의 통화를 기다리고 있다. 내 마음에는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정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빠, 사랑해요!!’ 내가 평생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말,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할 때 가장 부러웠던 그 한 마디, 나도 이제 그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글=차유경(굿뉴스코 키리바시 단원)

차유경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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