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그레이트 마스터 박광주

‘4월 15일, 장애가 있는 고객이 주문한 차가 하루 일찍 출고되었다. 쉬는 날임에도 나는 일을 나섰다. 고객분은 차를 나중에 갖다 줘도 괜찮다고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차를 타는 게 얼마나 좋을지를 알기에 지체하지 않았다. 그 길에 아내도 동행했다. 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이라 가는 내내 봄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새 차를 타고 아름다운 길을 달리니, 쉬는 날에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은 듯하다. 고객도 연신 고맙다며 행복해하셨다. 그분만 아니라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오랜만에 나들이를 다녀온 행복한 하루였다.’

선거일 다음 날 만난 박광주 씨. 그가 보낸 어제 하루의 행적을 적은 기록에서 고객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자동차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누가 너를 보고 수천만 원짜리 차를 사주겠냐. 고생하지 말고 집으로 내려와라.’고 이야기 하셨죠. 혼자 서울에서 고생할 아들이 눈앞에 선하셨을 거예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고생할 게 뻔하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차를 팔았습니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출근 첫날, 한 고객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출근길에 차 사고가 나서 새 차를 계약하겠다고 오신 분이었는데, 열심히 하려는 그의 노력과는 달리 계속 실수가 발생했다. 견적서 내용을 틀리기도 하고, 구매 조건이 변동되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수십 번씩 계약서를 주고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마흔여섯 번의 계약서 수정 작업을 거쳐 마침내 첫 계약을 할 수가 있었다.

“그때는 차를 정말 판매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수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내가 진짜 모자라구나.’ 하는 자책도 하면서 계속 고객을 찾아갔습니다. 서툰 신입사원이 열심히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모습에 고객도 마음이 움직였는지 차를 계약해 주시더라고요.”

열심만으론 부족했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차를 팔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고객들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아 새벽까지 기다리며 날밤을 새웠다. 밤 11시가 다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도 계약을 못하고 돌아올 때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자동차 자체가 귀한 시절이다 보니, 차 한 대를 파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가까스로 연결된 고객의 전화 한 통을 놓칠까 봐 잠을 설치기도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차를 팔아야 하나?’는 생각에 그만둬야겠다는 다짐을 수차례 했습니다.”

입사 후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도중, IMF가 터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수십 대를 계약했던 회사가 IMF로 부도가 나면서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왔다.

자동차를 팔고 사람을 얻고 이런 일들은 그가 앞으로 어떻게 영업을 할지 고민하게 했다. 특히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고, 수많은 반성을 통해 지혜를 하나 얻었다.

“저는 영업을 ‘몸으로 쓰는 반성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객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진솔하게 대했느냐에 따라 실적은 자연스레 따라오니까요. 차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지다 보면 고객이 왜 차를 사고 싶어 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차를 원하는지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다둥이를 둔 아버지가 가족들과 편하게 탈 수 있는 차를 갖는 게 로망인데, 제가 그분의 경제 사정을 고려한답시고 경차를 소개한다면 그 계약을 이뤄지지 않을 겁니다.”

그 이후부터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했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고객과는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었고, 판매에 연연하지 않으니 그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자동차는 한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차 한 대로 개인택시를 시작하며 생계를 꾸리는 분, 몸이 불편한 분들에겐 소중한 발이 되어주기도 하죠. 한평생 로망이었던 차를 사서 꿈을 이루는 분도 보았습니다. 차를 사서 기뻐하는 고객을 보면 저도 기쁘고, 괜히 제가 꿈을 이뤄드린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하하).”

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 가족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행복이 일을 하면서 오는 건 아니었다.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는 쑥스러워하며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요. 제 40대를 돌아보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처럼, 고객을 만나고 차를 판매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잘 버는 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란 생각에 정작 가정생활은 등한시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고등학교 1학년 동갑내기 친구로 만나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사이다. 그래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아내가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정말 뜻밖이었다. 우울해하는 아내를 차마 혼자 두고 출근을 할 수가 없어서 휴가를 내고 며칠 아내 곁을 지켰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에 쌓였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가려고 강릉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내가 펑펑 울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받은 상처들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아내가 쉰이 다 되도록 해외여행을 한번 못 갔어요. 항상 말만 하고 바쁘단 핑계로 미루기 바빴죠. 지금껏 나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이야말로 저를 위해 많은 걸 참고 양보하며 살아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때 그는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깨졌다. 이날 이후로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는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내와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눴다. 신기하게도 이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여유가 생기고 조급함이 사라졌다고 한다.

“삶의 각도를 가족에게로 조금 돌렸을 뿐인데, 가족 간의 사이가 더 밝아지고 끈끈해졌습니다. 지금은 멀리 사는 고객에게 차를 가져다줄 때 아내와 동행합니다. 차 안에서 제가 하는 일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참 자유롭고 편안하더라고요(웃음). 지금은 큰 아들이 다 커서 술 한 잔 같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즐겁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데, 그의 전화기에 문자가 왔다. 오랜 세월 인연을 맺은 고객이 ‘박 부장에게 산 차로 행복했다. 이게 내 마지막 차가 될 것 같은데, 차를 정리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는 흔쾌히 고객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차를 판매한 후에도 계속 고객들과 연락하며 인연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왜 그가 대한민국 최고의 영업맨이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올해 쉰 세 살, 인생의 절반을 자동차 영업에 매진해온 그는 어느 순간 삶의 정점을 지나 뒤를 돌아보는 위치에 서 있다. 뒤를 돌아보면 이제 회사를 들어온 후배들이 있고, 미래를 바라보면 선배들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가까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싶다는 박광주 씨. 이미 많은 과정을 거치며 배운 지혜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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