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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생 조각가
이한규 | 승인 2020.05.07 19:15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잘 키우고 싶어한다. 만약 지금 자녀가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면 자식농사 잘 지은 분들이 너무 부럽고 비결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소연하고, 안 된다고 호통을 쳐도 잠시뿐이기 때문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그릇된 길을 멈추려 할 때, 그런 행동을 유발시키는 마음을 먼저 바꾸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그 마음의 변화는 잘못된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고 사랑과 신뢰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아빠, 저 집 나갈게요

“집 나갈 거야, 마음 바꿀 거야? 네가 결정해. 아빠가 남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네가 이렇게 아빠 말을 안 들으면 아빠가 무슨 낯으로 남들 앞에 서겠나? 남들이 ‘제 새끼나 잘 가르치지 제 자식도 못 가르치면서 남을 어떻게 가르치나?’라고 하면 아빠가 이 일을 계속 하겠나?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들 한솔이가 당연히 “아빠,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마음 바꿀게요.”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작심한 듯 한솔이는 말을 내뱉었다.

“아빠, 저 집 나갈게요.”

나는 설마 내 자식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충격을 받고 화가 나서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가! 당장 나가 이놈아.”

한솔이는 정말 내게 등을 돌리고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안 들어와, 이 자식아?”

“아빠가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이놈아, 아빠가 집 나가라 한다고 집을 나가? 이놈아?”

한솔이는 인상을 푹 쓰고는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보니까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아니 내 아들이 가출을 하다니…!’

그때가 11월 말경이라서 날씨도 쌀쌀했는데 돈 한 푼 없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집을 나가서 더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안산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서 어디 갈 만한 데도 없을 텐데 싶어서, 학교 친구들에게 두루 연락하고 ‘혹시 PC방에 갔나?’ 해서 집 주변의 PC방이며 갈 만한 곳은 다 가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한솔이는 없었다. 그날 밤 온통 자식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린 놈이 어딜 갔겠나? 날씨도 추운데 춥고 배고프면 늦게라도 들어오겠지?’ 하는 실낱 같은 기대를 하며 기도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혹시 이 녀석이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들면 얼어죽을 수도 있는데?’ 하는 염려 때문에 집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손전등을 들고 집 근처 공원을 다니며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솔아, 솔아” 하면서 찾아다녔다. 그런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깊은 밤의 어둠만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하는 수없이 다시 집으로 왔다. 화가 나던 마음이 ‘내가 평소에 너무 무섭게 대했던 게 잘못이었어. 내 아내가 늘 나를 사무적인 사람이라고 했는데,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따뜻하게 대해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면서 제발 무사히 돌아만 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도 ‘이 녀석이 마음도 약한데 혹시 옥상에 올라가 뭔 일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전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고3 여학생 하나가 부모님이 너무 섭섭하다고 옥상에서 밧줄로 목을 매어 죽은 일이 있었는데, ‘혹시 한솔이도 그럴지 몰라.’ 하는 생각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면서 내 마음을 두려움과 불안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손전등을 들고 이번엔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방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우리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아실 텐데, 제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

그리고 나는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 대자보를 써붙였다. 우리 집은 9층 건물 중 7층에 있었는데, “한솔아, 아빠가 미안하다. 아빠가 너한테 너무 심하게 한 것 같다. 모든 걸 용서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집으로 들어오너라. 너를 기다리는 아빠.”라고 써서 붙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혹시 이 녀석이 밤 늦게라도 왔다가 집 문이 잠긴 것을 보면 ‘아, 아빠가 진짜 마음 문을 닫으셨구나.’라고 오해할까봐서였다. 대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면 ‘아빠가 말은 그렇게 하셔도 마음은 안 그러시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는 성경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집 나간 아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면서 깊이 와 닿았다. 한자로도 어버이 친親 자를 보면,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무木 위에 올라가 서서立 멀리 바라보고見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잠이 깨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들 방으로 갔다. 아들이 들어와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와 혹시 안 들어왔으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를 가지고. 그런데 조심스레 방문을 여는 순간 한 가닥 붙들고 있던 기대마저 끊어져버렸다. 집 나간 아들이 초저녁까지 안 들어올 때와 늦은 밤까지 안들어왔을 때, 그리고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안들어왔을 때의 내 마음은 아픔의 깊이가 각기 달랐다. 그동안 자식이 속 썩이면서 집에 있을 때는 이것저것 불편하고 속상해서 간섭할 것이 많았는데, 참 이상한 것은, 자식이 집을 나가고 나니까 잘잘못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 바라는 마음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후, 명훈이라는 아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솔이 아버님이시죠? 저 친구 명훈이인데요, 한솔이가 저희 집에 왔어요.” 내 마음의 모든 근심과 무거운 짐을 다 덜어주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래 고맙다. 한솔이한테 아무 걱정 하지말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해라.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고.”

“네, 한솔이한테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혼자는 못 들어가겠대요.”

“그러면 네가 같이 좀 데리고 와 줄래?”

“그럴게요.”

잠시 후 명훈이가 찾아왔다.

“한솔이는?”

“밖에 서 있어요.”

나는 막 달려 나갔다.

“어서 들어오지 않고 왜 거기 서 있어?”

나는 목구멍까지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라 꿀꺽 삼키고는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한솔이는 서러워서인지 미안해서인지 내 가슴에 안겨 엉엉 울었다. 나도 눈물이 왈칵 치미는데 꾸욱 누르고 아들의 등을 다독이며 들어왔다. 너무 감사했다. 그날은 정말 행복했다.

아내에게 얼른 밥부터 좀 차려 주라고 했더니, 아들은 쑥스럽고 고마운 듯 밥을 먹었다.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행복했다.

“그래 어디 갔더냐?”

“나는 왜 아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이 되어 속만 썩이고 맨날 혼만 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어요. 딱히 갈 곳도 없고, 건너편 아파트 꼭대기층 옥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고 계속 이 생각 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집에 들어오면 아빠한테 맞아 죽을 것 같고, 그래서 명훈이네 집으로 갔었어요.”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린 아들에게 잘해주지도 편안하게 대해주지도 못하면서 기준과 법으로만 대했던 내가 너무 미안스럽고 마음이 그렇게 짠하고 아렸다.

그의 가슴에는 이미 완성된 대나무가 있었다

나는 사춘기를 겪는 아들과 여러 차례 격돌했고, 서로가 고통스러운 고비를 넘고 절망의 골짜기를 몇 번이나 지나야 했다. 서로가 힘들어 울기도 했다. 그랬던 아들이 지금은 세계에서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아이티에 선교사로 가서 청춘을 바쳐 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 때때로 어려움과 위험도 있지만 참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독자들은 우리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방황하던 아들은 어느 날 한 목사님을 만났다. 거친 야생마를 명마로 길들이는 조련사 같고, 원석을 가공해 수백 배, 수천 배의 부가가치를 가진 보석을 만들어 내는 세공사와 같은 그 목사님은 문제투성이 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그분은 나와 전혀 다른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들의 허물과 문제를 바라보며 그것을 없애야 된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키웠고, 그분은 아들의 허물이나 문제를 보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새로운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반드시 변화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대해 주셨다.

그 목사님에게서 대나무를 사랑했던 문동文同의 마음이 느껴졌다. 중국 송나라 학자였던 문동은 인품이 고결하고 글과 그림에 두루 능하였다고 한다. 화초나 물고기, 날고 있는 새, 방금 솟은 해와 만조 등을 누구보다도 잘 그렸고, 특히 대나무를 무척 사랑하여 자기 집 앞 창가의 뜰에 푸른 대나무를 심어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

그리고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안개가 끼는 날에는 매일 창가에 기대어 유심히 대나무를 관찰하면서 그 잎과 가지가 계절과 기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관찰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대나무의 여러 모습들이 들어 있어서 눈을 감으면 대나무의 다양한 자태가 수없이 펼쳐졌다. 그러다 붓을 쥐고 그저 손을 몇 번 휘두르는가 싶으면, 화폭에 절묘한 대나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가 그린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사삭사삭 소리가 날 듯한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그의 묵죽화墨竹畵가 천하일품이라고 명성이 높아지자 전국 각지에서는 그 그림을 그려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 문동에게 조무구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조무구를 찾아와 문동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그의 그림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문동이 대나무를 그리고자 할 때, 그의 가슴에는 이미 완성된 대나무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흉유성죽胸有成竹’이란 말이 유래되었다.

그 목사님은 아들에게 “너도 마음의 세계를 알고, 마음 하나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야. 사람 마음은 좋게도 변할 수 있고 좋지 않게도 변할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살았지? 그렇게 살면 인생이 고통스럽고 불행해. 지식이나 기능도 배워야 하지만 마음 꺾는 걸 반드시 배워야 돼.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돼.” 하시면서 아들을 품고 가르치셨다.

아들은 어느 날 자기의 문제 많은 모습을 보지 않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는 목사님 가슴 안에 문동의 완성된 대나무 그림처럼, 자기의 미래에 대한 멋진 그림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나자, 자기 인생을 자기가 그리려던 붓을 내려놓고 그 목사님께 자기 인생의 붓을 드리면 가장 멋진 그림이 되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아들은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놀랍게도 그분 가슴 안에 있는 자기 인생의 멋진 그림이 선명히 보였다.

아들 마음의 빗장은 저절로 열렸고, 돌같이 굳었던 생각들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손에 잡히면서 길길이 날뛰던 아들의 야성이 다스려졌고, 그 사랑의 힘은 아들에게 꿈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다.

야생마가 명마가 되기까지

나는 자녀를 키울 때 ‘아버지가 한번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각인시켜 줄 요량으로 아들이 말을 안 들으면 호되게 야단을 치고 엄하게 다스렸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아들 입장에서는 규격화된 틀과 반듯한 기준으로 대하는 아버지 밑에서 숨이 막힐 듯 힘들었고, 부자간에 서로 원치 않는 부작용만 만들어냈다.

나는 아들을 타일러도 보고, 아들과 싸우기도 했다. 하는 짓이 지나치다 싶을 때는 진지하게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으나, 결국 야단을 치고 너무 속이 상할 때는 두들겨 패기도 했다. 그럴수록 아들의 마음은 더 꺾이지 않았고, 한때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도저히 걷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선지 자식 농사 잘 지은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다. 사실 나는 젊어서 교육에 뜻을 두고 사범대학을 나왔으며 교직에 오래 몸을 담았지만 자식 농사엔 실패한 사람이었다. 청소년기에 방황하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큰 사고뭉치였던 아들이 지금은 천지개벽을 했다고 할 만큼 변해서 많은 사람들을 절망적인 삶에서 건져주고,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 밝은 꿈과 행복을 심는 농부가 되었다.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다 망가진 인생을 다듬어서 아름답고 귀한 보석으로 만들기까지 긴 싸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그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보다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으며, 죽어가던 자식을 살려준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의 내 아들을 보면 ‘내가 키운 아들이 아니야.’라는 마음이 든다. 그 목사님은 지금도 어둠 속에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을 명품으로 빚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위대한 인생 조각가로 살고 계신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떤 쓰레기 같은 인간도 위대한 인생 조각가의 손에 잡히면 명품으로 변한다고.

글=이한규
링컨하우스원주스쿨 교장,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전 서울시지부장 국제마인드교육원 전문강사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다년간 중고교 교사로 근무했다.

이한규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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