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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화를 주저하면 1등은 없다LG생활건강 권혁경 상무
김성훈 기자 | 승인 2020.01.03 12:25

신입사원 때는 양복을 입고 비를 맞아가며 거래처를 찾아가는 열정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물류 업무를 맡으면서 지금껏 30년 넘게 ‘어떻게 하면 물류 운용을 최적화할까?’를 화두로 삼고 있다. LG생활건강 권혁경 상무 이야기다. ‘경영에 있어서는 영원한 1등도, 100% 정답도 없기에 늘 배우는 자세로 오늘을 산다’는 그를 만났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12월 초, 권혁경 상무를 만나러 경기도 안양의 코카콜라 물류센터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니 근로자들이 추운 날씨에도 입김을 토해내며 산처럼 쌓인 콜라 상자들을 바삐 옮기고 있었다.

상자 1개에 담긴 콜라 개수에 상자 수를 곱해 보면 콜라병이 어림잡아 수만 개는 될 듯했다. 어쩌면 기자가 평생 본 콜라병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약속시간이 되어 사무실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권혁경입니다.”

인사를 나누며 받은 명함에 ‘LG생활건강·코카콜라음료·더페이스샵·해태음료 물류총괄 상무’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 경영학 등 전문분야는 물론,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물류’란 무엇일까? 자리에 앉자마자 이 질문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권혁경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주)럭키(현 LG생활건강)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89년 사내 물류팀 창설멤버로 물류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코카콜라음료 물류부문장을 역임하는 등 지금까지 이 분야만 매진해 온 전문 임원이다.

‘물류’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인가요?

물류物流란 말 그대로 ‘물건의 흐름’이죠. 경영학에서는 물류를 ‘원재료의 구입부터 생산된 제품을 소비자에게까지 전달하는 데 필요한 운송·하역·보관·포장 등의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면 물류센터에 보관해 두었다가 도·소매점, 백화점, 유통업체까지 전달하잖아요? 요즘은 온라인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제품이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물류센터에서 소비자에게 바로 발송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택배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액이 흘러 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듯, 저희가 생산한 제품이 제때 전달되지 않으면 소비자들도 삶에 불편을 겪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도 경영에 차질이 생기죠. 드러나진 않지만 실질적으로 회사를 움직이는, 굉장히 중요한 업무입니다.

대학 졸업 후, 1986년 (주)럭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셨는데요. 그때부터 물류를 담당하셨습니까?

아뇨, 입사하고 처음 배치된 곳은 영업부서였어요. 고향이 대구라서 대구지점에 발령받았는데, 동네 슈퍼마켓이나 구멍가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치약, 비누, 세제류 등을 팔고 수금하는 게 일이었죠. 물론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도 하고요. 비가 오는 어느 날, 제가 양복이 비에 젖은 채 어깨에 박스를 메고 영업을 하러 찾아온 모습을 보고 감동한 어느 가게 주인이 ‘앞으로 거래하겠다’며 고객이 된 적도 있습니다.

대구물류센터 센터장 시절, 동료들과 함께(맨 왼쪽이 권혁경 상무).

그러다 3년 뒤인 1989년, 사내에 물류팀이 창설되면서 지역별로 직원들을 차출했는데 저도 뽑혀 물류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물류 업무를 한 지도 30년이 훨씬 넘었네요, 허허허.

3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뭔가 특별한 보람이나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배워가는 재미가 커요. 제가 물류팀에 합류하던 1980년대 말만 해도 우리나라는 물류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영학 교과서에도 물류는 말미에 짧게 나올 만큼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보다 산업, 문화, 트렌드 등에서 앞서가던 일본에서는 이미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해외 현장, 특히 일본을 자주 오가면서 물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번은 회사에서 일본 최고의 물류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분 말씀이 ‘물류를 하는 사람은 모든 분야에 박식해야 한다. 경영학, 통계학, 심리학, 건축, 법률 등을 두루 꿰어야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일해 보니 맞는 이야기였어요. 물류는 경영학의 한 분야입니다. 조직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관리하려면 경영학을,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심리학을 알아야죠. 제품을 보관할 창고를 지으려면 건축을, 최적의 입지를 찾으려면 부동산과 법률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둘 배울수록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지니까 물류가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멈추고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던 중 한쪽 벽에 큼지막하게 붙은 ‘전국행정도로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권 상무는 “틈날 때면 들여다보며 운송 개선책을 연구하고 물류센터 입지를 찾다보니 이젠 저 지도가 머릿속에 몽땅 들어있다”며 웃었다. 사실 일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른 면이 있다.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그의 눈길은 저절로 샴푸, 치약, 비누 등이 진열된 생활용품 코너로 향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자사 제품들이 잘 비치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길에서도 자사에서 만든 음료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심 흐뭇해진단다.

그렇게까지 늘 신경 쓰실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렇게 해서 하나라도 더 팔리면 그만큼 회사에 보탬이 되니까요, 하하. 물류를 담당하면서 얻는 가장 큰 보람이라면 역시 고객들이 가장 신선하게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일입니다. 이런 프로세스 합리화는 고객들에게도 가치를 제공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비효율적인 비용을 개선하여 수익성에 기여하게 됩니다. 수익성을 높이는 데는 매출을 늘리는 것과 비용을 줄이는 것 등 2가지 방법이 있죠.

가령 저희 회사에서 1년 동안 재고관리비·물류센터 운영비 등 물류에 쓰는 비용이 1천억이라고 해 봅시다. 그런데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해 비용을 10% 절감하면 연간 100억을 아낄 수 있습니다. 매출을 늘려서 그만큼 이익을 보려면 수천억 원어치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매년 100억씩’ 절감된 비용이 누적되면… 어마어마한 차이죠.

LG생활건강 하면 생활용품과 화장품으로 유명한데, 음료를 생산한다니 좀 의외입니다.

2007년 말에 한국에서 코카콜라를 생산·판매하는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하고, 2010년에는 해태음료를 인수했습니다. 특히 4년 연속 적자였던 코카콜라는 인수하면서 물류 프로세스를 꼼꼼히 검토했어요. ‘어, 이건 이렇게 개선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는데’ 싶은 점들이 눈에 띄더군요. 결국 인수한 이듬해인 2008년 도에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영업부서 등 전사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물류 담당자들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데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코카콜라는 지난해 5위에 올랐다. 코카콜라보다 순위가 높은 브랜드는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IT업체뿐이다. 세계 200여 개국에서 하루에 19억 잔이 팔리는 코카콜라는 음료업계에서 명실상부한 세계최고 브랜드다. 그럼에도 권혁경 상무는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시장상황에서는 어떤 브랜드도 영원한 1위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코카콜라는 매년 국내에서 1천억 넘게 이익을 내는, LG생활건강의 효자상품인데요.

물론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제품이고, 고객들의 충성도 또한 높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는 경쟁사들의 도전이 만만찮지요. 게다가 건강하고 활기찬 삶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료에 대한 욕구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코닥도 디지털시대에 대처가 늦어 순식간에 파산했는데, 코카콜라라고 코닥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미국 코카콜라 본사에서는 콜라 외에 탄산수, 차, 커피, 비타민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며 끊임없이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건 영원한 1위는 없다’고 하셨군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뿐만 아니라 소비패턴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욜로YOLO족이란 말도 있잖아요? 제 동료직원 딸은 20대인데 한 달 카드비가 1만 원밖에 안 나오고, 월급을 받으면 버스비만 빼고 모조리 저축할 정도로 알뜰하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샀다더군요. 자기만족을 위해 큰돈을 아낌없이 지출하는 이런 소비행태는 기성세대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술도 속속 등장하면서 세상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2026년이면 무인자동차가 완전히 상용화된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되면 물류업계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가전제품 회사에서는 판매한 제품의 A/S를 위해 과거 20년 동안 생산한 제품들의 부속들을 모두 보관해야 하는데요. 3D프린터가 등장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만들어내면 되니까요.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군요.

어떤 분야든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하고, 새로운 기술은 적극 받아들여야 합니다. 잠시만 한눈팔아도 다른 회사들은 금세 앞서가니까요. 특히 외국은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고 물류분야의 트렌드도 더 빨리 바뀝니다. 저만 해도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등으로 자주 출장을 가서 앞서가는 회사를 벤치마킹하는 등 선진기술을 습득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려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 역시 바뀌어야 합니다.

기업 벤치마킹 차 유럽을 방문했을 때
대학에서 강연하는 권 상무의 모습. 물류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그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애플의 창업주였던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구하고 늘 우직하라’라는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내가 뭔가 잘했다.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자만하고 여유를 부리게 됩니다. 바로 퇴보가 시작되는 거죠. ‘나는 부족한 사람,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 마음의 초점이 가 있어야 배우려고 애쓰게 됩니다.

물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물류 업무를 획기적으로 최적화했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답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와 생각을 거듭하는 겁니다.

‘특별한 새해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혁경 상무는 ‘새해에는 에이본 일을 하느라 더 바빠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에이본Avon은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화장품 회사다. 지난해 8월, LG생활건강은 미국,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등 에이본의 북미 3개국 사업권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3개국의 물류 프로세스를 검토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조만간 그의 사무실 벽에는 미국지도가 걸리지 않을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답이 결코 100% 정답이 될 수 없기에 언제든 배우고 변화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모습에서 ‘겸손과 열정은 결국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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