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한다. 어릴 적 우리 집 거실에는 ‘정직하게 살자’는 가훈이 걸려 있었고 아버지께선 ‘진인사대천명’을 좌우명 삼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는 어떤가?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인 세상에 살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하기 보단 원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살자는 뜻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건 별종은 있는 법. 한번 사는 세상, 더 신중하게 고심하는 청년들이 있다. 시류를 거꾸로 헤쳐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는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했다. ‘국내에 사용자가 많지 않은 희귀언어인 만큼 배워두면 쓸모가 있겠다’는 기대감에, 아버지의 권유가 더해져 내린 선택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아랍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라면 부스러기처럼 희한한 글자를 사용하는 언어’ 정도가 전부였다.

입학 후 첫 수업을 들으며 느낀 아랍어의 첫인상은 뭐가 나올지 몰라 두려운 어둠의 숲 같았다. 긴장하며 걸어가다가 생전 처음 보는 생물체에 깜짝 놀라듯, 당시 내겐 아랍어가 딱 그랬다.

한국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쓰지만,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신기했다. 한국어는 자음이 14개지만, 아랍어는 28개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외울 수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순전히 나의 오판이었다. 이어서 자음이 놓이는 위치(앞, 뒤, 중간, 단독)에 따라 자음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104개의 자음을 외워야 했다.

여기서 좌절하기에는 더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104개나 되는 자음들을 다 외웠을지라도 아랍어를 읽을 수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랍어는 글을 쓸 때 자음만 쓰고 모음을 쓰지 않는다. ‘사랑해’라는 말을 ‘ㅅㄹㅎ’로 적는 식이다. 그러니 단어의 뜻과 발음, 문맥까지 정확히 알아야만 읽을 수 있다. 어느 친절한 교수님이 a(아), u(우), i(이) 등 3가지 모음부호를 따로 붙여주셔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아랍어의 실체(?)를 파악한 우리 과 동기들은 알파벳을 배우다 몇 명, 읽기 수업을 듣다가 몇 명, 동사변형을 배우다가 몇 명씩 포기했다. 지금 까지 살아남은 친구들은 거의 없다.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시작된 아랍어와의 인연은 어느새 8년째, 요르단 유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정도면 아랍어가 적성에 맞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적성에도 안맞고 재미도 없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했다. 그저 순간순간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해보자. 이걸 포기하면 다른 것들은 제대로 하겠냐?’며 마음을 다잡았을 뿐이다. 내게 아랍어는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다음 봉우리가 나오는 험준한 산 같았다. 멈춰서 보고 있자면 ‘저걸 어떻게 넘지?’ 하다가도 지금까지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걸어왔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싶을 때면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져 인스타그램을 둘러봤다. 여행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진, 예쁜 카페에 앉아 멋진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는 사진, 소소한 파티를 열고 즐거워하는 사진 등이 피드에 가득했다. ‘소확행’ ‘욜로YOLO’라는 해시태그도 보였다. 다들 재밌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한 번뿐인 인생을 너무 고민만 하며 지내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커졌고, 아랍어를 포기할 온갖 이유를 찾았다. ‘아랍어는 어렵다’ ‘나는 재능이 없다’ ‘투자 대비 실력이 늘지 않는다’ 등등.

그러다 처음으로 ‘아랍어 재미있다!’고 느낀 일이 생겼다. 요르단에 온 지 6개월 정도 지난어느 날, 그날도 평소처럼 단어 하나를 놓고 2시간 동안 씨름을 했다. 몇 번이고 봤지만, 알면 알수록 많은 뜻과 의미가 숨어 있는, 예외사항들도 참 많은 양파 같은 단어였다. 며칠 뒤 택시를 탔다가 기사아저씨와 대화를 하며 그 단어를 써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화 흐름에 맞게 단어와 문법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 말이 나왔다. 속으로 ‘오예~!’를 외쳤다. 그렇게 고민하며 정리한 단어가 완전히 내 것이 된 것이다. 그 성취감과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른 어려운 단어와 문법도 그렇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기쁨을 누가 알까! 그렇게 나는 나만의 욜로YOLO를 찾았다. 단어 하나를 붙잡고 1시간, 짧은 문장 하나를 해석하느라 1시간, 새 표현을 정리하느라 1시간… 그렇게 공 들이고 시간 들여 배운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내 것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렇게 내 것이 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할 때면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기뻐 날뛴다. ‘내가 이 단어 사용했어! 오, 이 문장 알아들었어!’ 이러고 있는 거다. 그제서야 알았다, 진정한 기쁨과 재미는 머리 아프게 고민한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진한 한 방울의 농축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 방울은 그 전의 어려움을 다 잊게 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더 진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더 생각하고 고민하며 내게서만 나올 수 있는 진한 아랍어, 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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