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이기주 저

-말하기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상대의 마음을 얻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며-

우리는 평소에 특별한 생각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나름대로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서 대화하기도 하지만, 사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말’은 의사소통하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감정,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다. 오늘날은 과거보다 한마디 말이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요즘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장황하거나 길지 않다.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의미를 쉽고 단순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 뒤에 숨은 의미를 헤아리기보다 즉흥적으로 반응하기 바쁜 세태를 보며 말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옛말에도 온당한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고, 부당한 말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했다. 말은 이처럼 개인의 인생과 공동체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

나의 ‘말’과 ‘세계관’에 질문을 던지게 하다

저자인 이기주는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는 ‘언품’이 있다고 했다. 수준, 등급을 의미하는 한자인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모인 글자로,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만들어지며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나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말’이 가진 의미와 영향력을 발견하며 이를 사고하고 세분화하여 소개했는데, 책을 통해 내가 하는 말과 나의 세계관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또한 저자는 화려한 어휘나 화술을 넘어 상대의 마음을 얻고, 나의 진심을 표현하여 사람과 사람이 화합하는 장을 열어주었다. 말을 잘하기 위한 기술이나 방법도 언급했지만 책의 절반을 할애해 먼저 말을 듣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말’은 주고받아야 의미가 있다. 상호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사람들의 의견과 감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면 인정받는데 집중하게 되어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기 생각만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일방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상대의 마음을 얻기 어려워지므로 우선 존중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공감이 되었다. 서로 마음이 열려야 비로소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운주당’이 있는가

경청의 경傾은 ‘상대에게 귀와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청聽은 ‘임금님처럼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뜬 상태에서 사람을 바라보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가장 품격 있고 고차원적인 대화의 행위이다.

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을 예로 들어 경청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순신은 참모진과 일반 병사를 가리지 않고 운주당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 그들과 토론하고 의견을 물었다.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해안의 물길과 지형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민간인들을 불러들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지혜를 믿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입으로 하는 대화가 아닌 귀를 내어주는 대화를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이순신은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원균은 부임하자마자 운주당 주변에 대나무 울타리를 치고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듣기보다 자신이 말하는 데만 치중했는데, 결국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은 아는 것, 가진 것이 많을수록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말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빠진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뇌공학 전문가에 의하면 사람은 1분에 약 200 단어를 말할 수 있고, 고등한 뇌의 경우 800 단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뇌가 가진 능력의 4분의 1만 사용해도 상대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우리는 경청의 필요성을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나만의 운주당이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어 준 사례였다.

공감하는 말이 아니라면 침묵이 낫다

경청을 했다면 이제 말을 해야 할 차례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못한 말은 침묵만 못하며 자칫 역효과를 가져올 때가 많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그가 체포되어 예루살렘 전범 재판정에 섰을 때 죄의식을 느끼거나 뉘우치는 기색 없이 ‘나는 성실히 의무를 준수했고 상급자의 명령에 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는데, 그의 말은 타인의 고통을 전혀 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성찰 못지않게 타인과의 공감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상황에 따라 우리도 얼마든지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형식적인 말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타인과 공감하는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평범한 듯 하지만 나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내가 하는 한마디 말이 생명력과 온기를 품고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그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는 것을 생각해본다. 말이 전해준 힘으로 넓어지고 따뜻해진 마음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최근 사랑하는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말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독립해 어머니와 죽 떨어져 살았다. 가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때마다 “어머니, 일을 줄이세요. 쉬세요”라고만 말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전화하신 게 아니구나. 당신의 힘든 속내를 아들에게 털어놓고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으셨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대화를 하면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그리워졌다. 예전과 별다를 것이 없는 말을 주고받지만 전혀 다른 대화임이 분명했다. 수준 높은 어휘나 막힘없이 유창한 언변보다 서툴러도 말 한마디에 담긴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일, 말의 품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글=하건수(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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