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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이지 않는 차이를 위해 오늘도 오보에를 쥔다뉴욕 필하모닉 오보에 수석 리앙 왕Liang Wang
김성훈 기자 | 승인 2019.08.19 17:11

‘음악가보다는 여행가 같다!’ 오보이스트 리앙 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입니다. 오보에 하나를 벗삼아 아무 욕심 없이, 그저 음악을 하는 기쁨만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그는 너무도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30년 넘게 오보이스트 외길을 걸어 온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깊이도 결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리앙 왕 Liang Wang
1980년 중국 칭다오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부터 오보에를 배웠다. 중국 최고의 음악교육기관인 중앙음악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2003년 커티스음악원을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2006년부터 뉴욕 필하모닉수석 오보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오보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리앙 왕’입니다. 한국인 여러분께 이렇게 지면으로 제 음악인생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저는 지난 6월말부터 7월 중순까지 3주 동안 서울, 부산, 대전, 광주, 인천 등 여러 도시를 다니며 연주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는 여러 번 와서 연주한 적이 있지만, 이번 방문은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참 수준 높은 관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 앞에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반응하는 한국인들은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저와 같이 음악을 했거나 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도 한국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더 큰 우주를 만나다

뉴욕 필하모닉은 물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 등 미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에는 10여 년 전부터 아시아 출신 음악가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자들입니다. 저처럼 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그래서 저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떻게 오보에를 시작하셨나요?’를 묻곤 합니다.

저는 1980년 중국 칭다오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클래식 음악회에 갔는데 마침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백조의 호수’ 1막 1장 ‘지크프리트 왕자의 무도회’에는 지크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암시하는 오보에 독주가 나오는데요. 길이는 짧지만, 그 독주가 제게 던지는 임팩트는 참으로 강렬했습니다. 듣는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넘어, 마치 오보에가 제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저 악기 한번 연주해 보고 싶다.’ 그것이 저와 오보에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오보에가 저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도 ‘음악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는 없다. 음악은 인생을 걸 만한 분야는 아니다’라고 생각하셨거든요.

미국에서 예술고등학교를다니던 시절, 연주회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하지만 저는 오보에 연주를 계속했고, 중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고 규모도 큰 베이징의 중앙음악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열다섯 살에는 혼자서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기숙학교에 다니며 공부했는데, 영어를 거의 몰랐기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금방 영어에도 익숙해졌고, 오보에 실력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열일곱 살 때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음악원에 진학했습니다. 커티스에 들어갈 당시만 해도 저는 제 실력에 꽤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위로부터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웬만한 곡은 척척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 착각은 리처드 우덤스, 존 댈런시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굉장히 엄격했던 두 분은 저를 혹독하게 단련시켰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 ‘하늘 너머에는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분들이 오보에를 연주하는 모습이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공부였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오보에를 연주할 때면, 제 솜씨를 상대방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제가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넘어, 연주하는 곡에 잠재된 의미와 주제에 깊이 몰입한 채 연주하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1년 반 동안 계속되는 뉴욕 필하모닉 오디션

2003년에 커티스를 졸업한 저는 지금까지 여러 악단에서 오보이스트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을 거쳐 지금은 뉴욕 필하모닉 소속으로 있습니다. 클래식 문외한인 분도 이름은 들어 알고 계실 만큼 뉴욕 필하모닉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관현악단 중 한 곳입니다.

지난 2006년, 저는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로 뉴욕 필하모닉에 수석 오보이스트로 입단하면서 클래식 음악가들 사이에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오디션에는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지원하는데, 최종합격자가 결정되기까지 장장 1년 반이 걸립니다. 우선 이력서를 토대로 1차 심사를 마친 뒤 블라인드 오디션을 치르는데요. 이 블라인드 오디션만 여섯 번을 거치고 나면 네댓 명 정도의 최종후보자가 남습니다. 이 최종후보자들이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과 함께 직접 연주를해 보는 것이 오디션의 마지막 관문입니다. 심사위원들이 투표를 해서 최다득표를 한 사람이 최종합격자의 영예를 안게 됩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장면. 오른쪽 아래로 리앙 왕의 모습이 보인다.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연주자라면 음악가로서 모든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 타이틀이 제 음악실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뉴욕 필하모닉은 한 주에 네 번 공연을 하는데, 그 레퍼토리는 매주 바뀝니다.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연습은 단순히 악보의 음표대로 손가락을 놀리는 기계적인 연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작곡자가 이 대목에서는 왜 이렇게 곡을 썼을까?’를 더듬고 생각하는 것 또한 연습입니다.

바하,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등 거장 작곡가들의 작품을 대할 때면 저는 저 자신이 한없이 보잘것없게 느껴집니다. 물론 클래식 연주자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지만, 작곡가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작품들은 ‘신이 그들에게 영감靈感을 내려 이 곡을 쓴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놀랍게 다가옵니다. 그런 작곡가들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에게 기억되며 널리 사랑받습니다. 저희 연주자들은 그 작곡가들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연주자는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을, 수백 년 전 작곡가들이 그리던 마음 속 세계로 데려갑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말합니다, ‘클래식 음악도 결국 음악이다. MP3나 DVD에 담아 듣거나 보면 결국 똑같은 거 아니냐?’라고요. 하지만 같은 곡도 어느 나라, 어느 공연장, 어떤 청중 앞에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클래식 음악가들은 자신의 연주에 청중들이 보내는 감탄, 환호, 에너지를 받아들여 그 힘으로 연주합니다. 일종의 시너지 같은 거죠. 같은 곡이라고 해도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창과 칼을 내려놓게 한 음악의 힘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저는 헨델의 ‘트리오 소나타 G장조’와 파스쿨리의 ‘라 파보리타 주제에 의한 오보에 협주곡’ 등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은 곡은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소프라노 최혜미 씨와 함께 연주한 ‘넬라 판타지아’였습니다.

방한 기간 동안 리앙 왕은 그라시아스합창단 소프라노 최혜미와 함께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해 한국의 음악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노래는 영화 ‘미션’의 OST인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미션’에서 주인공 가브리엘은 남미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오랜 여행 끝에 원주민 과 라니족 마을에 도착합니다. 원주민들은 하나둘 활과 창을 들고 가브리엘 주위로 모여들지요.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브리엘은 평화롭고 잔잔한 오보에 연주로 원주민들에게 말을 겁니다. ‘여러분을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그 메시지가 통했기 때문일까요. 원주민들은 경계심을 풀고 가브리엘의 주위로 모여듭니다.

음악은 어느 나라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는 만국 공통어입니다. 제가 뉴욕 필하모닉에 입단할 때 나이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이 국적이었습니다. ‘중국인이 어떻게 서양 음악을?’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음악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음악만 있으면 언어와 국경을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미션’ 속 가브리엘과 과라니족 원주민들처럼 말입니다.

베이징 국제음악제에서 칭다오 심포니와 협연한 리앙 왕.

저는 음악가를 연예인이 아닌, 문화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외교무대에서도 여러 번 공연했습니다. 2014년에는 중-프 수교 50주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파리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 자리에 초청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지요.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의 일원으로 평양에서 공연했는데, ‘아리랑’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눈물을 훔치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절대 평탄할 수 없다

오보에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31년이 흘렀습니다. 되짚어보면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음악이 있었기에 저로서는 갈 수 없는 곳을 다녀왔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으며,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기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잖아요?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제 음악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오보에
그가 오보에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31년이 흘렀다. 오보에를 손에서 놓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오보에를 처음 만나 가슴 설레던 일곱 살 때 기억이 떠오르며 새 힘이 솟았다고 한다.

31년 전 제가 오보에를 막 시작했을 때 함께 오보에를 배우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은 오보에를 그만두었습니다. 음악을 잘하려면 재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재능만으로 대성大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재능으로만 올라간 사람은 금방 성장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연습을 해도 해도 답보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계속하면 언젠가 이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신념이 필요하지만,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다 보니 결국 음악을 그만두고 맙니다. 뛰어난 재능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를 저는 숱하게 봤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절대 평탄할 수 없습니다.

커티스 음악원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학교이다. 1924년 설립되었으며,미국 주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25%가 이 학교 출신이다. 재학생 모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재정적 지원도 탄탄하다.

저도 오보에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 ‘돈방석에 앉게 해 주겠다’ 등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제가 처음 오보에를 만난 일곱 살 때로 돌아갑니다. 가슴 뛰던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저는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보에를 계속해 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음악가로서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그 재능을 끌어내 줄 수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 커티스 시절 은사인 리처드 우덤스교수(사진 오른쪽)는 그를 음악이라는 우주속으로 이끌어준, 잊지 못할 스승이다.

저는 앞으로도 오보에를 계속할 것입니다. 음악은 끝이 없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와인에 자주 비유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전에 없던 맛과 향이 솟아나잖아요? 같은 곡도 10년 전에 연주할 때와 지금 연주할 때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더 그렇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다시 여러분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때 제 음악은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겁니다. 물론 몰라보게 달라져 있지는 않을 거예요. 날마다 조금씩 키가 자라듯, 음악도 제가 모를 만큼 조금씩 성장하거든요. 그 ‘작은 변화’를 위해 오늘도 저는 오보에를 쥡니다.

김성훈 기자  kimkija@ito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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